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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에 있는 서원.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학문과 덕행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85에 위치한다. 대구 팔조령에서 청도 방향으로 난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을 따라 오다 이서면사무소를 지나 약 1,250m 직진한다. 여기서 이서교를 건너기 전에 우회전하여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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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권일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청도 군수로 재직할 때 『오산지(鰲山誌)』를 편찬, 청도 지역의 제도와 문물을 잘 정리하였다. 재임 중 통치를 잘하여 숙종으로부터 표리를 받았는데, 청도에 세웠던 청덕비가 지금까지 전한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만(子萬). 거주지는 한양이다.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정선 군수(旌善郡守) 권담(權紞)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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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이윤은 1486년(성종 17)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정원 가주서를 거쳐 사헌부 지평·사간원 대사간이 되었다. 무오사화 때 거제로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다시 관직에 들어와 홍문관 응교·전한 등을 거쳤다. 부제학으로 있을 때에는 13조목의 국가 시책을 올려 아첨하는 무리를 멀리하고 학풍을 바로잡을 것을 진언하였다. 본관은 고성(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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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복(子復), 호는 괴정(槐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이며, 용연(龍淵) 박경인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참봉 송경(宋璟)의 딸 여산 송씨이다. 처는 군수 김극유(金克裕)의 딸 정부인 청도 김씨이며, 아들은 박동흠(朴東欽)과 박동온(朴東溫)이 있다. 박선(朴瑄)[1571∼1614]은 천성적으로 총명하고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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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이찬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청도 군수와 삼척 부사, 사헌부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자소(子昭), 호는 계동(溪東). 증조할아버지는 이헌(李憲)이고, 할아버지는 이주도(李周道)이며, 아버지는 이명(李㟰)이다. 이찬한(李燦漢)[1610∼1680]은 1646년(인조 24)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2년 후인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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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주민들의 생활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총체적 자연환경. 경상북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청도군은 동쪽으로는 경상북도 경주시와 경상남도 울산시, 서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달성군·경상남도 창녕군, 남쪽으로는 경상남도 밀양시·울산광역시 울주군,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경산시·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상북도 영천시와 접한다. 청도군의 수리적 범위는 동경 128°31′36″[풍각면 수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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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발생하는 기상, 지변 등의 급격한 자연 현상으로 입는 재난. 경상북도 청도군은 지역적으로 여름에 집중된 강우로 인하여 풍각면과 각남면 일대 저지대에 수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계절적으로 7∼8월 태풍이 1∼2개씩 지나가고 있다. 또한 2010년 이후에는 기상 이변에 따른 집중 호우와 우박 등의 피해가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외에도 주변이 산지인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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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자진(子進). 청도 사인촌(舍人村)[현 각남면 칠성리]에 살았다. 아버지는 김극일(金克一)이며, 어머니는 한성 부윤 이간(李暕)의 딸이다. 김준손(金駿孫)·김기손(金驥孫)·김일손(金馹孫) 등 세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 꿈에 용마(龍馬)를 보았기 때문에 아들 이름을 모두 마(馬)변 글자로 지었다 전한다. 김맹(金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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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을 뜻하는 명절. 동지는 겨울을 대표하는 명절로, 24절기 중 하나이다. 동지를 기점으로 낮이 점차 길어지므로 옛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날로 여겨 ‘작은설’이라 하였고 동지를 쇠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하였다. 우리나라는 신라에 이어 고려 때에도 당나라의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을 그대로 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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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의 산업 중 누에를 사육하여 고치를 생산하는 업종. 우리나라 잠업의 역사는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미 이때부터 양잠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농업과 제조업의 한축을 담당했던 잠사 산업이 산업의 구조 조정을 겪으면서 사양화되었다. 청도군 또한 1960년대까지 잠업이 성행하였지만 1970년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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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정월 대보름에 중요한 곡식 다섯 가지로 지어 먹는 밥. 오곡밥은 주로 음력 정월 열 나흗날이나 대보름날에 지어서 집안의 여러 가신(家神)에게 올린 다음 식구나 이웃 간에 나누어 먹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찰밥, 잡곡밥, 오곡잡밥 등으로 부른다. 경상북도 청도군에서는 오곡밥을 보름밥, 혹은 농사밥이라고도 부른다. 오곡밥의 시원에 해당하는 형태로 볼 수 있는 밥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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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물품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 시장이란 소비자와 생산자가 모여 여러 가지 상품을 거래하는 장소라는 개념으로 전통적으로 시장을 장(場) 또는 장시(場市)·시상(市上) 등으로 불러왔다. 장시는 15세기 후반 전라도 지방에서 성립된 후 16세기에 들어서 전국적으로 개설되었으며 17세기 중엽 이후 장시는 수적인 면에서 크게 증가하였다. 18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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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장득원은 1897년(광무 1)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천리(楡川里)에서 거주하다가 1973년 사망하였다. 정읍을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 결사인 신인 동맹(神人同盟)에서 활동하였다. 장득원(張得遠)[1897∼1973]은 1938년 4월부터 정읍을 활동 무대로 하여 조직된 신인 동맹에 가담하여, 종교적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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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망자를 염습할 때 입히는 옷. 수의는 망자를 염습할 때 망자에게 입히는 복식이다. 청도군에서는 수의를 절석옷, 절수옷, 저승옷, 장래옷, 미래옷, 수예옷, 예수옷이라고도 한다. 청도군에서 수의는 주로 환갑을 전후로 윤달이 든 해에 준비를 하고, 하루 내에 다 제작해야 좋다고 하여 친지들과 함께 제작한다. 수의를 장만하면 자식들에게 장례 부담을 주지 않을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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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와 경주시 산내면 신원리의 경계에 있는 산. 장륙산(將六山)[686m]은 신라 때 여섯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라고 해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며, 장육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장륙산에는 육장굴이라는 곳이 있는데 신라 장수 여섯 명이 수련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굴 천정이 유달리 높고 들어가는 암괴 통문이 별도로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절벽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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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물품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 시장이란 소비자와 생산자가 모여 여러 가지 상품을 거래하는 장소라는 개념으로 전통적으로 시장을 장(場) 또는 장시(場市)·시상(市上) 등으로 불러왔다. 장시는 15세기 후반 전라도 지방에서 성립된 후 16세기에 들어서 전국적으로 개설되었으며 17세기 중엽 이후 장시는 수적인 면에서 크게 증가하였다. 18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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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라 때 절인 장연사 터에 마을이 형성되어 장연리라 하였다. 신라 때의 큰 사찰이었던 장연사가 있었던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서 마을 이름을 장연리라고 한다. 또는 운문천[동창천] 가운데 장연이라는 넓고 깊은 소가 있어서 장연(長淵)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때 구만산 골짜기마다 암자가 있어서 절골이라고도 한다. 본래 청도군 상남면의 지역으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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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 있는 당간 지주. 당간 지주란 사찰을 표시하는 깃발을 거는 막대기를 받치기 위한 돌기둥으로, 깃발을 거는 막대라는 의미의 당간과 이 당간을 세우는 기둥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형태는 두 기둥을 60∼100㎝의 간격으로 양쪽에 세운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면이 평평하고 수직인데 반하여 뒷면은 올라갈수록 둥글며, 옆에는 당간을 받치기 위해서 2개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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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 있는 배례석. 배례석이란 불교 행사 시 향을 피우거나 음식을 차려 놓고 예를 올릴 때 사용된 석조물이다. 주로 법당 앞, 석등이나 석탑 앞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장연리 배례석은 장연사지(長淵寺址)에 있었던 것으로 전하므로 장연사(長淵寺) 혹은 흥경사(興景寺)로 추정되는 유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연사지는 장연리 장수골 계당들목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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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산성. 축조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의 축조 양상으로 보아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 있는 해발 567m의 능선 정상부에 축조된 석성이다. 남쪽의 내리 산성과는 1.3㎞ 정도 떨어져 있으며, 두 산성의 사이에 위치하는 해발 674.9m의 육화산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400m 지점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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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 있는 석조물. 장연리 석조물 중에는 당간 지주와 석조(石槽) 등의 유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유물은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장연사지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간 지주란 사찰을 표시하는 깃발을 거는 막대기를 받치기 위한 돌기둥으로, 깃발을 거는 막대라는 의미의 당간과 이 당간을 세우는 기둥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형태는 두 기둥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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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남천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헌부 장령·대사간 등을 거쳐 승지를 지냈다. 호조 참의로 있을 때 경신대출척이 일어나 벼슬을 박탈당하였다. 예론에 밝아 예송에 깊이 참여하였으며, 봉암 서원에 배향되었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장우(章宇), 호는 고암(孤巖). 안동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남응원(南應元)이고 할아버지는 남융달(南隆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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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와 경주시 산내면 신원리의 경계에 있는 산. 장륙산(將六山)[686m]은 신라 때 여섯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라고 해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며, 장육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장륙산에는 육장굴이라는 곳이 있는데 신라 장수 여섯 명이 수련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굴 천정이 유달리 높고 들어가는 암괴 통문이 별도로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절벽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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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전해 오는 장육산과 육장굴에 관한 이야기. 「장육산과 육장굴」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와 경주시 산내면 내칠리 경계에 있는 장육산과 육장굴과 관련된 전설이다. 청도군에서 1981년에 발간한 『내 고장 전통문화』에 「장육산과 육장굴」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와 경주시 산내면 내칠리 경계에 장육산[약 600m]이 있다. 장육산 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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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전해 오는 장육산과 육장굴에 관한 이야기. 「장육산과 육장굴」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와 경주시 산내면 내칠리 경계에 있는 장육산과 육장굴과 관련된 전설이다. 청도군에서 1981년에 발간한 『내 고장 전통문화』에 「장육산과 육장굴」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와 경주시 산내면 내칠리 경계에 장육산[약 600m]이 있다. 장육산 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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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나무 막대를 이용해 공을 치는 놀이. 장치기는 소년이나 나무꾼들이 새끼줄을 둘둘 말아 공을 만들어 평평한 풀밭이나 산언덕에서 지게 작대기로 공을 치면서 골대에 넣는 놀이이다. 옛 문헌에는 타구(打毬), 격구(擊毬)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봉희(棒戱)로 기록되어 있다. 격구가 고려 시대 이후 성행한 것으로 미루어 장치기도 크게 발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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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유학자. 장화식은 회산(晦山) 반동락(潘東雒)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김흥락(金興洛)·이종기(李種杞) 등을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았다. 1922년 경성 유림 총부(京城儒林總部)에서 강사로 추천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오직 학문 연구에만 열중하였다.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효중(孝重), 호는 복암(復菴). 아버지는 장하수(蔣夏秀)이며, 어머니는 거제 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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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의 읍면 내, 읍면 간, 또는 주변의 다른 시군 간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산지를 넘는 산등성이 부분. 청도군은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의 최상류 지역이며 대부분 산지로 되어 있다. 동창천은 동부의 운문면·금천면·매전면을 흐르고, 청도천은 서부의 청도읍·화양읍, 이서면·각남면·각북면·풍각면을 적시고 있다. 동창천과 청도천은 청도읍 유호리에서 합류하여 밀양강으로 유입한다. 따라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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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칭(李禹偁)을 시조로 하고 이계손(李繼孫)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재령 이씨(載寧李氏)는 경주 이씨(慶州李氏)에서 분적하였다. 경주 이씨 중시조인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의 후손 이우칭(李禹偁)은 고려 때 보조공신(補祚功臣)에 녹훈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후 재령군(載寧君)에 봉해졌는데, 후손들이 이우칭(李禹偁)을 시조로 받들고 재령을 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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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인공 저수 시설. 청도군의 총 269개의 저수지 중 189개는 1945년 축조된 저수지이다. 이들 대부분은 근대적인 기술로 축조된 토언제 중심 점토형으로 균일형 댐으로도 불리는 제당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댐은 기존 농업용수를 위하여 지역에서 만들어진 댐을 1945년대 대대적으로 보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46년에서 1970년 사이 73개의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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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망자를 염습할 때 입히는 옷. 수의는 망자를 염습할 때 망자에게 입히는 복식이다. 청도군에서는 수의를 절석옷, 절수옷, 저승옷, 장래옷, 미래옷, 수예옷, 예수옷이라고도 한다. 청도군에서 수의는 주로 환갑을 전후로 윤달이 든 해에 준비를 하고, 하루 내에 다 제작해야 좋다고 하여 친지들과 함께 제작한다. 수의를 장만하면 자식들에게 장례 부담을 주지 않을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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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천년 고찰로서 664년에 원효 대사가 수도하기 위해 토굴을 세운 것에서 시작된 사찰이다. 산세가 빼어난 청도군의 주산 남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적천사는 664년(문무왕 4) 원효 대사가 토굴로 창건한 이래 828년(신라 헌덕 3)에 헌덕왕의 셋째 아들인 심지 왕사가 중창하여 산내에 백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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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천년 고찰로서 664년에 원효 대사가 수도하기 위해 토굴을 세운 것에서 시작된 사찰이다. 산세가 빼어난 청도군의 주산 남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적천사는 664년(문무왕 4) 원효 대사가 토굴로 창건한 이래 828년(신라 헌덕 3)에 헌덕왕의 셋째 아들인 심지 왕사가 중창하여 산내에 백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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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괘불탱 및 지주. 적천사(磧川寺)는 664년(신라 문무왕 4)에 원효 대사가 창건하고, 828년(흥덕왕 3)년에 흥덕왕의 셋째 아들인 심지 왕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1175년(고려 명종 5)에 보조 국사가 중창하고 자련암, 옥련암, 목탁암, 운주암 등의 여러 암자를 세웠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어 1664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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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적천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적천사는 664년(신라 문무왕 4)에 원효 대사가 창건하고, 828년(흥덕왕 3)에 심지 왕사가 중건하였다고 알려진 사찰이다. 적천사 대웅전은 천왕문과 조계문을 지나 사찰의 중앙에 남향으로 있다. 좌우에는 적묵당과 명부전이 있고, 뒤에는 좌우로 조사전과 영산전이 있다. 청도읍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방면 국도를 타고 내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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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적천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목조 사천왕 의좌상. 사천왕은 동방 지국천, 서방 광목천, 남방 증장천, 북방 다문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불교 세계의 중심에 솟아 있는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석존의 열반 후 석존으로부터 불법 수호의 임무를 부여받아 범천 및 제석천과 함께 호법신으로 확립되었다. 이러한 사천왕상이 널리 믿어지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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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있는 적천사 사천왕각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 적천사 사천왕상 복장 유물은 1981년에 적천사 사천왕각(四天王閣)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천왕 목상 안에서 발견되었다. 사리, 경판, 다라니경, 곡식, 향료 등과 함께 철릭, 장삼, 창옷, 적삼, 중치막, 직령 등 의류 23점이 발견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복식 유물은 7점으로 철릭 3점, 장삼 1점, 중치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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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의 청도 소싸움 축제와 연계한 미술 공모전. 경상북도 청도군의 대표적인 축제인 청도 소싸움 축제와 연계하여 소 이미지 미술 작품과 조형물을 공모하는 미술 대전이다. 경상북도 청도군의 소싸움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놀이 문화로 전국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또한 2007년 1월 청도 소싸움 경기장 준공으로 소싸움 대회가 더 활성화되어 박진감과 즐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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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마일리와 경주시 산내면 우라리, 영천시 북안면 당리의 경계에 있는 산. 용 네 마리가 승천한 산이라고 하여 사룡산(四龍山)[677m]으로 불린다. 『조선 지도(朝鮮地圖)』의 영천과 경주 지도에 사룡산이 표시되어 있으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도 기재되어 있는 산이다. 삼국 시대에는 서쪽의 구룡산과 함께 군사적 요충지였다. 신라의 병사들이 이 산을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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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마일리와 경주시 산내면 우라리, 영천시 북안면 당리의 경계에 있는 산. 용 네 마리가 승천한 산이라고 하여 사룡산(四龍山)[677m]으로 불린다. 『조선 지도(朝鮮地圖)』의 영천과 경주 지도에 사룡산이 표시되어 있으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도 기재되어 있는 산이다. 삼국 시대에는 서쪽의 구룡산과 함께 군사적 요충지였다. 신라의 병사들이 이 산을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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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에서 발굴·조사된 청동기 시대 고인돌 유적 특별 전시회. 2008년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 694-2번지 일원에서 발굴·조사된 청동기 시대 고인돌 유적에 대한 발굴 성과와 청도 지역의 전쟁과 전사(戰士)를 주제로 하는 기획 전시회이다. 청도군 신당리의 경작지 조사 과정에서 청도 신당리 전사(戰士)의 무덤이 확인되어 2008년 5월 6일부터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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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과 관련하여 1945년 이전에 작성된 문서.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작성된 고문서와 관련된 지역은 조선 시대 경상도 청도군(淸道郡), 17세기 후반 대구부(大邱府)에 예속되었다가 1906년 환속된 풍각현(豊角縣)[지금의 청도군 각북면·각남면·풍각면], 밀양부 고미면(古弥面)[지금의 청도군 운문면 일대] 등이 있다. 대상 고문서는 1945년 이전에 관부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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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이경행(李敬行)·이석·이난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시조는 신라 시대에 사공(司功)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다. 전주 이씨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왕자대군(王子大君)과 왕자군(王子君)을 파조로 하고 있으며, 시대 구분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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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전통적 형태의 가옥. 우리나라의 전통 가옥을 통칭하여 한옥이라고 한다. 한옥은 가족 구조를 포함하는 사회 구조와 종교·세계관·생업 방식·건축 기술·계층과 계급과 같은 문화 요소와 기후와 식생과 같은 자연 생태 환경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 가옥은 같은 한반도 내에서도 다양한 외형과 공간 구성을 가진 유형들이 전승되고 있다. 전통 가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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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염료를 사용하여 실이나 옷감 등에 물을 들이는 기법. 청도군에서는 직물을 짜서 완성된 피륙의 색, 즉 소색(素色)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옷감에 염색을 할 경우에는 주변에서 쉽게 취할 수 있는 식물 등을 이용하였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홍화나 자초 등을 조정에 공납할 정도로 좋은 재질의 천연염료를 생산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옷을 염색해서 입을 정도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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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팔룡은 1911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高樹里)에서 출생하여 1963년 사망하였다. 전팔룡은 1931년 11월 19일 군용 열차 전복 의거에 참여하였다. 전팔룡(全八龍)[1911∼1963]은 본적이 청도군 각남면(角南面) 화동(華洞) 358번지이며, 주소는 청도군 대성면 고수동 384번지로, 김기근(金基根)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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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망자를 염습할 때 입히는 옷. 수의는 망자를 염습할 때 망자에게 입히는 복식이다. 청도군에서는 수의를 절석옷, 절수옷, 저승옷, 장래옷, 미래옷, 수예옷, 예수옷이라고도 한다. 청도군에서 수의는 주로 환갑을 전후로 윤달이 든 해에 준비를 하고, 하루 내에 다 제작해야 좋다고 하여 친지들과 함께 제작한다. 수의를 장만하면 자식들에게 장례 부담을 주지 않을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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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망자를 염습할 때 입히는 옷. 수의는 망자를 염습할 때 망자에게 입히는 복식이다. 청도군에서는 수의를 절석옷, 절수옷, 저승옷, 장래옷, 미래옷, 수예옷, 예수옷이라고도 한다. 청도군에서 수의는 주로 환갑을 전후로 윤달이 든 해에 준비를 하고, 하루 내에 다 제작해야 좋다고 하여 친지들과 함께 제작한다. 수의를 장만하면 자식들에게 장례 부담을 주지 않을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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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고유의 명절에 만들어 먹는 음식. 명절은 생산 주기에 따라 생산을 미리 예측하거나 점을 치고, 생산을 축원하는 날이다. 또한 수확에 감사해 신에게 의례를 행하고,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뒤풀이 형식으로 음식을 바치고 노는 기간이다. 농경 사회에서는 농업 생산의 주기에 따라 명절을 삽입했고, 어로 사회에서는 어업 생산 주기에 따라 일정한 명절을 삽입했다. 명절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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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도 감무를 지낸 문신. 금의(琴儀)[1153∼1230]는 고려 후기 문신으로, 성품이 강직하였으며 글을 잘 지었다. 과거에 장원 급제한 뒤 최충헌의 문사로 발탁되어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벽상공신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본관은 봉화(奉化), 초명은 극의(克儀), 자는 절지(節之)이다. 삼한공신(三韓功臣) 금용식(琴容式)의 후손이다. 금의는 생김새가 훤칠하고 도량이 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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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사찰이 없어지고 그 터전만 남은 곳. 절터는 사찰이 없어지고 옛 사찰의 흔적을 보여주는 기단, 초석, 유물 등이 남아 있는 곳이다. 청도군의 절터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남아 있는 유물이나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친 여러 시기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가슬갑사지나 천문갑사지 등 이름이 남아 있는 절터도 있지만 대부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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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사찰이 없어지고 그 터전만 남은 곳. 절터는 사찰이 없어지고 옛 사찰의 흔적을 보여주는 기단, 초석, 유물 등이 남아 있는 곳이다. 청도군의 절터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남아 있는 유물이나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친 여러 시기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가슬갑사지나 천문갑사지 등 이름이 남아 있는 절터도 있지만 대부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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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출신인 조선 전기 문신인 모암 김극일의 시문집 판목. 『절효 선생 실기(節孝 先生 實紀)』 판목은 모암(慕庵) 김극일(金克一)[1382∼1456]의 시문집판이다. 김극일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용협(用協), 호는 모암(慕庵)이며, 시호는 절효(節孝)이다. 판목은 원래 33장이 완판이지만 권하의 장차 17, 21이 결락되어 총 32장이 남아 있다. 판목 중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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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북지리에 있는 비각. 정내헌(鄭乃憲)의 효행을 칭송하기 위해 오천 정씨 문중에서 건립한 효자각이다. 내헌(乃憲)은 정환주(鄭煥冑)의 자이다. 호는 양심재(養心齋)이며, 포은 정몽주의 후예이다. 정동채(鄭東采)의 아들로 기품이 순수하고 재지가 총명하여 학문에 전력하고 가훈을 이어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였다. 어머니가 병환이 들자 주야로 간호하고 정성을 다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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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서 빨치산에 항거한 반공 투사. 정두표는 1949년 울주군 길천 초등학교[제20회]를 졸업했으며 육군 헌병대를 제대하였다. 그 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서 빨치산에 항거하다가 순국하였다. 본관은 동래(東萊). 1935년 경상남도 울주군 상북면 산전리 정판수(鄭判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정두표(鄭斗杓)[1935∼1967]는 육군 헌병으로 제대하여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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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9월에 인간된 경상북도 청도군의 향안. 『청도 향안 정명록(淸道 鄕案 正名錄)』은 1911년 9월에 인간(印刊)된 향안이다. 일제 강점기에 인간되었지만 1599년(선조 32)부터 1700년(숙종 26)까지 조선 시대 경상도 청도군의 유향소 향원(鄕員) 393명의 명단을 수록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청도 향안 정명록』은 ‘좌목, 정명록’으로도 불린다. 『청도 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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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소(德邵), 호는 눌연(訥淵). 할아버지 정세경(丁世卿) 때 청도에 처음 거주하였다. 아버지 정복(丁復)과 어머니 월성 이씨(月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민도(丁敏道)[1553∼1635]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운문의 눌연(訥淵)에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삼족당 김대유와 소요당 박하담을 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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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남거(南擧), 초명(初名)은 정붕(廷鵬). 아버지는 박희태(朴熙泰), 할아버지는 박취광(朴就光), 증조할아버지는 박민좌(朴敏佐)이다. 어머니는 이익무(李益茂)의 딸이고, 부인은 박경보(朴敬甫)의 딸이다. 박유붕(朴有鵬)[1806∼?]은 1844년(헌종 10) 증광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이 되었고, 경상도 중군(中軍)을 거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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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에 있는 약수터. 정상 마을의 뒷산 구룡산에서 승천하던 아홉 마리의 용이 지상과의 이별이 슬퍼 흘러내린 눈물이 떨어져 약수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상 약수라고도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용천 약수이다. 1982년 청도군에서 주변을 정비하고 약수가 나오는 입구를 정화하는 한편, 주변에 오염되지 않도록 기와집을 세워서 관리하고 있다. 현재 운문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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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경상북도 경산시와의 경계선에 위치한다. 구룡 마을, 비석 마을, 질머리 마을[길머리 마을], 삼당 마을, 심곡 마을, 새말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정상리(頂上里, 亭上里)는 경주 최씨 소유의 정자인 구은정(九隱亭) 위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정상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오로동(吾老洞)이라고 하였다는데 이것은 오리(奧里), 즉 후미진 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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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올리는 마을 공동 제의.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의 새말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이 되면 아침 7시에 마을 계곡 주변에 있는 느티나무인 당산나무 아래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동제를 올린다. 정상리 새말 동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새말 주민들은 동제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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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올리는 마을 공동 제의.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의 새말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이 되면 아침 7시에 마을 계곡 주변에 있는 느티나무인 당산나무 아래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동제를 올린다. 정상리 새말 동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새말 주민들은 동제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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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에 있는 유물 산포지. 운문면 정상리 새말 마을에서 북서쪽에 있는 용천 약수탕으로 이어지는 골짜기가 있다. 골짜기의 양쪽 능선 말단부에 정상리 유물 산포지 두 곳이 분포하고 있다. 1. 정상리 유물 산포지 ① 운문면 정상리 질멀 마을의 동쪽에 있는 해발 336m 능선의 남서쪽 말단부에 있다. 2003년도 조사 시에 토기 조각이 다수 관찰되었으나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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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김정기는 1885년(고종 22)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용산리 용연동에서 출생하여 1946년에 사망하였다. 1919년 곽종석(郭鍾錫) 등 유림 137명이 참여한 파리장서[제1차 유림단 의거]에 서명하였다. 김정기(金定基)[1885∼1946]는 1909년 10월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911년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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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출생의 시조 시인이며 수필가. 이영도(李永道)[1916∼1976]는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동 259번지에서 태어났다. 1945년 첫 시조 「제야」를 써서 1946년 5월 『죽순』 창간호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단하였다. 시조 시인 이호우의 여동생으로, 오빠와 함께 민족시의 현대화에 크게 공헌한 문학인이다. 본관은 경주이고, 선산 군수였던 아버지 이종수(李鍾洙)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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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음력 1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정월 대보름은 새해 첫 번째로 맞이하는 큰 보름달이라는 뜻으로, 한자어로는 ‘상원(上元)’이라고도 한다. 상원이란 백중날이자 음력 7월 15일인 중원(中元)과 음력 10월 15일인 하원(下元)에 대칭이 되는 말로서 도교적인 명칭이다. 농경 사회에서 정월 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으로, 새해 첫 보름달을 이루는 정월 대보름은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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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개최하는 민속 문화 축제. 정월 대보름 축제는 청도 군민들에게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주민들의 화합과 안녕,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열리는 축제이다. 정월 대보름 축제는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의 청도천 둔치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민속 문화 한마당이다. 청도군이 주최하고, 도주 줄다리기 전승 보존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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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인 활동 경상북도 청도군의 정치 활동으로 선거를 통한 대통령, 국회 의원, 광역 단체장, 지역 단체장, 도 의원·군 의원을 선출하는 지역민의 활동과 이를 통해 선출된 지역 단체장 및 도 의원·군 의원들이 청도군청과 청도군 의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방 자치 활동을 들 수 있다. 청도군은 2개의 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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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인 활동 경상북도 청도군의 정치 활동으로 선거를 통한 대통령, 국회 의원, 광역 단체장, 지역 단체장, 도 의원·군 의원을 선출하는 지역민의 활동과 이를 통해 선출된 지역 단체장 및 도 의원·군 의원들이 청도군청과 청도군 의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방 자치 활동을 들 수 있다. 청도군은 2개의 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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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미중(美仲), 호는 지당(止堂)·옥호자(玉壺子). 정석기(鄭碩基)의 손자로 목사 정무(鄭堥)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윤우태(尹遇泰)의 딸이다. 정하언(鄭夏彦)[1702∼1769]은 1735년(영조 11) 진사로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42년(영조 18) 경상도 도사 시절 진휼사의 종사관으로 선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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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지숙(祗叔). 아버지는 통훈대부 경기좌도 수운 판관(京畿左道水運判官) 정재악(鄭載岳)이며, 형제로 정희선(鄭希先)·정술선(鄭述先)·정현선(鄭顯先)·정무선(鄭懋先)이 있다. 정흠선(鄭欽先)[1670∼1752]은 1730년(영조 6) 12월 청도 군수로 부임하여 1735년(영조 11) 10월 임기가 차서 벼슬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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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윤병권이 1924년 유림단의 군자금 모집에 연루된 사건. 1920년대 청도 지역에서 발생하였던 독립 운동 관련 사건은 1921년 12월 신민사(新民社) 사건과 1925년 6월 다물단(多勿團) 사건 등이 있다. 그 외에 이정희(李庭禧)[매전면]는 1922년 12월 조선 독립 운동 후원 의용단(朝鮮獨立運動後援義勇團)의 군자금 모집 사건, 김인제(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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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례. 제례란 선조를 추모하는 의례이다. 이를 통하여 구성원들은 조상신과 후손들의 관계를 지속하여 집을 계승한다. 제례는 제사의 절차와 형식, 예절 등을 통틀어 말한다. 원래는 제례의 자사가 천지의 신령과 자연신, 선대의 왕들에 대한 것까지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조상 숭배의 일종으로 조상에 대하여 지내는 의례를 가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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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제사를 지낼 때 입는 옷. 제례(祭禮)는 상례 이후 조상의 신위나 위패를 모시고 행사(行祀)하는 모든 제사를 포함하는 것이며, 제사를 지낼 때 입는 복장을 모두 제례복이라 한다.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영향을 받아 이를 기본으로 제례를 행하였으나 집안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 ‘가가례(家家禮)’가 존재한다. 특히 청도군은 예로부터 영남학파(嶺南學派) 예학(禮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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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농민 운동 단체. 청도 지역에서 1920년대 전반기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단체는 1921년 1월 조직된 삼군 소작인 동맹회(三郡 小作人 同盟會)와 1922년 봄에 조직된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농사 개량 조합, 그리고 1924년 3월 조직된 풍각 소작 조합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농민 단체들은 1920년대 전반기 소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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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백(孝伯), 호는 제우당(悌友堂)·이모당(二慕堂). 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박이(朴頤), 어머니는 만호(萬戶) 예신충(芮信忠)의 딸 의흥 예씨(義興芮氏)이다. 배위는 군수 박옥형(朴玉衡)의 딸 순천 박씨로 아들 박정(朴珽)과 박기(朴璣)를 두었다. 박경전(朴慶傳)[1553∼1623]은 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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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각종 원료를 가공하여 물품을 만드는 업종. 제조업이란 물질 또는 구성 요소에 물리적, 화학적 작용을 가하여 투입된 원재료를 성질이 다른 새로운 제품으로 전환시키는 산업 활동을 말한다. 단순히 상품을 선별·정리·분할·재포장 등과 같이 그 상품의 본질적 성질을 변화시키지 않는 처리 활동은 제조 활동으로 보지 않는다. 즉 농업, 수산업, 임업 등 제1차 산업에서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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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하고 고응명(高應明)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제주 고씨(濟州高氏)는 탐라 개국 설화에 나오는 삼신인(三神人) 가운데 한 사람인 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제주 고씨는 성주공파(星主公派)·전서공파(典書公派)·영곡공파(靈谷公派)·문충공파(文忠公派)·장흥백파(長興伯派)·화전군파(花田君派)·문정공파(文禎公派)·상당군파(上黨君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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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나(梁乙那)를 시조로 하고 양근남(梁根南)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제주도에서 탐라국을 세웠다고 전하는 양을나(良乙那)의 후손 양탕(良宕)이 광순사로 신라에 입국한 후 내물왕으로부터 성주·왕자의 작호를 받으면서 성씨 양(良)을 양(梁)으로 고쳤고, 757년(경덕왕 16) 양우량(梁友諒)이 신라 왕실에 공을 세워 남원부 백(南原府伯)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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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차상은 1898년(광무 2)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청도읍(淸道邑) 유호리(楡湖里)에서 출생하여 1995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24년 김진효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자금 모집에 관여하였고, 1941년 동진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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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에 있는 열녀각.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410-1에 위치한다. 덕촌 초등학교 전면에 있는 지방도 902호선을 따라 오산 2리 방향으로 약 1.5㎞ 정도 이동하면 길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조말남(曺末男)의 열행을 칭송하기 위해 1842년 현풍 곽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비각은 원래 단칸[單間] 규모의 맞배 기와집이었으나, 최근에 지붕을 강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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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에 있는 개항기 청도 군수 조병길의 선정비. 1851년(철종 2) 출생한 조병길은 본관은 풍양, 자는 경학(敬學)이며, 부친은 이조 참의를 지낸 조문화(趙文和)이다. 조병길은 1885년(고종 22)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에서 생원 3등을 한 이후, 창녕 현감을 거쳐 1895년(고종 32) 9월 청도 군수로 도임하였다. 1899년(고종 36) 정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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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지역어에서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거나 그 말의 뜻을 도와주는 품사. 조사(助詞)는 체언이나 부사, 어미 따위에 붙어 그 말과 다른 말과의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거나 그 말의 뜻을 도와주는 품사를 말한다. 조사는 크게 격조사, 접속 조사, 보조사로 나눌 수 있다. 같은 말로 ‘걸림씨, 관계사, 관계어, 토, 토씨’가 있다. 조사의 격체계(체언에 붙어 다른 말에 대한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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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동구(洞口) 밖 당나무 걸 또는 모퉁이에 쌓아 놓은 돌무더기. 조산에는 진호조산(鎭護造山)과 보허조산(補虛造山)으로 나눌 수 있는데, 모두 동신 사상과 혼합된 것으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자연 마을은 물을 따라 산을 등지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앞쪽이 허하게 보이는 부분에는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들어 바람막이도 하면서 동네를 가리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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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활동한 농민 운동 단체.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1920년대 전반기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단체는 1921년 1월 조직되는 삼군 소작인 동맹회(三郡 小作人 同盟會)와 1922년 봄에 조직된 청도군 풍각면 농사 개량 조합, 그리고 1924년 3월에 조직된 풍각 소작 조합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농민 단체들은 1920년대 전반기 소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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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이정희가 조선 독립운동 후원 의용단의 군자금 모집에 연루된 사건. 1920년대 청도 지역에서 발생하였던 독립 운동 관련 사건은 1921년 12월 신민사(新民社) 사건과 1925년 6월 다물단(多勿團) 사건 등이 있다. 그 외에 이정희(李庭禧)[매전면]는 1922년 12월 조선 독립 운동 후원 의용단(朝鮮獨立運動後援義勇團)의 군자금 모집 사건, 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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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부터 1948년까지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했던 우익 청년 단체. 조선 민족 청년단은 1946년 10월에 이범석이 ‘국가 지상, 민족 지상’을 표방하며 민족정신의 전통을 계승할 청년 운동의 모체로서 결성한 청년 운동 단체이다. 강령인 단지 삼칙(團旨 三則)에는 “① 우리는 민족정신을 환기하여 민족 지상·국가 지상의 이념 하에 청년의 사명을 다할 것을 기한다. ②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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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청도 지역은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호구 수는 640호 6,718인으로, 절반의 토지만 비옥했고, 풍속은 검솔했으며,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 군사 동원 체제인 진관은 대구도(大丘道)에 귀속되어 청도 군수가 경상좌도의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를 겸임하였다. 고려 후기 이래로 대성(大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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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도 군수 조시만의 선정비. 조시만은 본관은 풍양이고, 자는 경박(敬博)이다. 사마시에 급제 후 1774년(영조 50) 9월 청도 군수로 부임하여 1776년(영조 52) 7월 전라도 나주 목사로 이배되었다. 그 뒤 호조 정랑, 상주 목사(尙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비문에 의거하면 조시만이 학교흥(學校興), 즉 청도 향교 중흥시킨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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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월곡리에 있는 조원붕의 선정을 기리는 새김글. 조원붕 새김글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월곡리 월곡 마을에서 남쪽으로 200m 가량 떨어진 경부선 철로 옆에 있다. 이 새김글은 바위 면을 비석 형태로 다듬고 글씨를 새긴 마애비(磨崖碑)이다. 비석의 규모는 너비 0.57m, 잔존 높이 1m로 윗부분이 둥근 호패 모양이다. 비면의 중앙에 세로로 “현감 조 공 원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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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안중(安仲), 호는 검간(黔澗). 상주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조희(趙禧)이고, 아버지는 조광헌(趙光憲), 어머니는 홍윤최(洪胤崔)의 딸 남양 홍씨이다. 조정(趙靖)[1555∼1636]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고, 1596년 왜와의 강화를 배격하는 소를 올렸다. 1599년(선조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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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차상은 1898년(광무 2)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청도읍(淸道邑) 유호리(楡湖里)에서 출생하여 1995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24년 김진효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자금 모집에 관여하였고, 1941년 동진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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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에 있는 효자 정려각.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 299에 위치한다. 진라 1동 새마을 회관 전면에 있는 국도 25호선을 따라 청도 소싸움 경기장 방향으로 약 1㎞ 정도 이동하면 길 우측에 있다. 1879년(고종 16)에 나라에서 조창봉(曺昌鳳)에게 정려를 내리자, 이를 칭송하기 위해 창녕 조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효자각은 단칸[單間] 규모의 맞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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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와 대구광역시 다성군 유가면의 경계에 있는 산. 조화봉(照華峰)[1,059m]은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비슬산 정상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봉우리에 해당한다. 조화봉은 비슬산의 능선과 이어지는 봉우리로 북쪽 능선을 따라 비슬산의 정상인 대견봉과 이어진다. 사룡산에서 시작하는 비슬 지맥의 한 봉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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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덕양리와 각남면 옥산리 경계에 있는 산. 촛불같이 산이 뾰족하다 하여 촉금당이라고 하고, 화살촉 모양과 같다고 하여 족금당(簇金當)이라고도 한다. 산의 경사가 급하여 산봉우리에 오르는 것을 금지한다는 의미로 족금당(足禁當)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족금당은 남쪽으로 비슬 지맥의 한 봉우리인 천왕산과 능선으로 이어진다. 천왕산에서 비슬 지맥의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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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덕양리와 각남면 옥산리 경계에 있는 산. 촛불같이 산이 뾰족하다 하여 촉금당이라고 하고, 화살촉 모양과 같다고 하여 족금당(簇金當)이라고도 한다. 산의 경사가 급하여 산봉우리에 오르는 것을 금지한다는 의미로 족금당(足禁當)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족금당은 남쪽으로 비슬 지맥의 한 봉우리인 천왕산과 능선으로 이어진다. 천왕산에서 비슬 지맥의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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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부터 1948년까지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했던 우익 청년 단체. 조선 민족 청년단은 1946년 10월에 이범석이 ‘국가 지상, 민족 지상’을 표방하며 민족정신의 전통을 계승할 청년 운동의 모체로서 결성한 청년 운동 단체이다. 강령인 단지 삼칙(團旨 三則)에는 “① 우리는 민족정신을 환기하여 민족 지상·국가 지상의 이념 하에 청년의 사명을 다할 것을 기한다. ②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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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청도 지역의 불교는 오래전부터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에서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30여 기의 사찰들이 창건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 중 현재까지 현존하는 것은 운문사, 적천사, 대적사, 덕사, 신둔사, 죽림사, 대산사, 대비사 등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총독부 사찰령」에 의거하여 청도군 내 사찰들은 동화사 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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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청도 지역의 불교는 오래전부터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에서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30여 기의 사찰들이 창건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 중 현재까지 현존하는 것은 운문사, 적천사, 대적사, 덕사, 신둔사, 죽림사, 대산사, 대비사 등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총독부 사찰령」에 의거하여 청도군 내 사찰들은 동화사 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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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지역의 효자. 본관은 기성(岐城). 자는 헌옥(獻玉), 호는 종모재(終慕齋). 죽오(竹塢) 반국해(潘國海)의 6세손이다. 반환(潘瓛)[1767∼1829]은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15.7㎞나 떨어진 두곡산(杜谷山)에 묘소를 모시고, 3년 동안 매일 성묘를 하였으며,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역시 두곡산에 묘소를 모시고 여막(廬幕)을 치고 조석으로 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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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9월에 인간된 경상북도 청도군의 향안. 『청도 향안 정명록(淸道 鄕案 正名錄)』은 1911년 9월에 인간(印刊)된 향안이다. 일제 강점기에 인간되었지만 1599년(선조 32)부터 1700년(숙종 26)까지 조선 시대 경상도 청도군의 유향소 향원(鄕員) 393명의 명단을 수록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청도 향안 정명록』은 ‘좌목, 정명록’으로도 불린다. 『청도 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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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산. 주구산(走狗山)[217m]은 산의 형태가 달리는 개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조선 명종 때 청도 군수로 부임한 황응규가 지었다고 한다. 청도읍에서 북쪽을 향해 바라보면 개가 달아나는 모양으로 부드러운 선을 그리고 있는 산으로 덕절산이라고도 부른다. 산의 이름을 주구산이라고 해서는 고을에 부자가 나지 않고, 백성들이 살림살이가 군공해지고, 인물이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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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북리와 소라리를 연결하는 인도교. 시공될 당시 교량의 명칭은 주구산 인도교이었다. 교량을 장식한 파고라, 야간 조명, 분수대 등의 각종 시설 그리고 청도천의 주변 환경에 부합되는 이름을 새로이 지어 파랑새 다리로 변경되었다. 파랑새 다리는 청도천을 지나는 교량으로 청도군에서 제원을 마련하여 2004년 11월 24일 착공하여, 2005년 8월 30일 완공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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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송읍리에 있는 고대 이서국 시기에 축조된 토성. 주구산성(走狗山城)은 폐성(吠城) 또는 이서산성(伊西山城)으로 불리며, 고대 이서국의 전초 기지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구산성은 이서국의 중심 세력을 이루는 3성[현]의 하나인 가산현[경산성, 형산현]의 고지로 추정되며, 이서국이 신라군과 마지막 전투를 벌여 패함으로써 이서국이 몰락을 맞이한 곳이다. 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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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주생활은 청도 지역에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양식과 구조를 가진 주거 건축 및 가옥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활 행위이다. 이를 주거 생활이라고도 한다. 즉 주생활은 어떤 집을 짓고 사는가와 집안에서 어떻게 생활하는가라는 두 가지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전통 주택을 짓고 살았으며, 근대화되면서 전통 주택은 물론 이른바 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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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김이교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89년(정조 1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관직에 나아갔으나, 정조가 죽자 벽파에 의하여 유배되었다. 1806년(순조 6) 직첩을 환수 받은 뒤 다시 관직에 나아가 이조 판서·평안도 관찰사·병조 판서·형조 판서·공조 판서·예조 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고, 1831년 우의정이 되었다. 본관은 신안동(新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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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신봉리 화악산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 죽림사는 610년(신라 진평왕 32)에 법정 대사가 화남사(華南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법정 대사는 창건 후 선덕 여왕의 명을 받아 화친사(和親使)로 일본에 건너가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다. 왕은 노고에 대한 답례로 왕명으로 화남사 옆의 땅 약 900여 결(結)을 하사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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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에 있는 바위. 청도군을 대표하는 큰 바위 셋 중에서 죽암은 서부 지역[山西]의 유일한 예이다. 다른 둘은 모두 동부 지역[山東]에 있는데, 매전면 지전리의 신참 바위와 운문면 신원리의 가마 바위이다. 죽암은 옛 성터 동쪽 옥산천변에 있는 높이 약 20m의 거대한 바위이다. 「구만리와 죽바위」의 전설에 따르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마을 근처의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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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립(朴彦立)을 시조로 하고 박희(朴僖)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죽산(竹山)은 경기도 용인시와 안성시 일부에 속해 있던 옛 지명이다. 죽산 박씨(竹山朴氏)는 신라 경명왕의 넷째 왕자 죽성대군(竹城大君) 박언립(朴彦立)을 시조로 하고 있다. 『죽산 박씨 족보』에 의하면 박언립의 아들 박기오(朴奇悟)가 왕건을 도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우고 죽주백(竹州伯)에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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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에 있는 바위. 청도군을 대표하는 큰 바위 셋 중에서 죽암은 서부 지역[山西]의 유일한 예이다. 다른 둘은 모두 동부 지역[山東]에 있는데, 매전면 지전리의 신참 바위와 운문면 신원리의 가마 바위이다. 죽암은 옛 성터 동쪽 옥산천변에 있는 높이 약 20m의 거대한 바위이다. 「구만리와 죽바위」의 전설에 따르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마을 근처의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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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에 있는 바위. 청도군을 대표하는 큰 바위 셋 중에서 죽암은 서부 지역[山西]의 유일한 예이다. 다른 둘은 모두 동부 지역[山東]에 있는데, 매전면 지전리의 신참 바위와 운문면 신원리의 가마 바위이다. 죽암은 옛 성터 동쪽 옥산천변에 있는 높이 약 20m의 거대한 바위이다. 「구만리와 죽바위」의 전설에 따르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마을 근처의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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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와 풍각면 덕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산성. 축조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박경선(朴慶宣)이 왜병을 물리치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진다.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와 풍각면 덕양리에 걸쳐 있는 해발 259.5m의 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녹명 1리 구만 마을에서 서쪽으로 산 사면을 따라 1㎞ 정도 올라가면 도달할 수 있다. 테뫼식으로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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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민헌(敏獻), 호는 죽와(竹窩)이다. 제우당 박경전의 아들이며, 상우재 박경준의 계자(系子)이다. 어머니는 군수 박옥형(朴玉衡)의 딸 순천 박씨이고, 부인은 충의위 서사도(徐思道)의 딸 이천 서씨이다. 박기(朴璣)[1590∼1667]는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1667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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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김지대(金之岱)[1190∼1266]는 초명이 중룡(仲龍), 시호는 영헌(英憲)이다. 청도 김씨(淸道金氏)의 시조로 오산군(鰲山君)[오산은 경상도 청도]에 봉해졌다. 풍채가 큰데다가 기개가 있고 얽매이지 아니하여 원대한 뜻이 있었으며, 문장에 뛰어났다고 한다. 김지대에 관한 기록을 모은 『영헌공 실기(英憲公實記)』에 수록된 세계(世系)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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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김지대(金之岱)[1190∼1266]는 초명이 중룡(仲龍), 시호는 영헌(英憲)이다. 청도 김씨(淸道金氏)의 시조로 오산군(鰲山君)[오산은 경상도 청도]에 봉해졌다. 풍채가 큰데다가 기개가 있고 얽매이지 아니하여 원대한 뜻이 있었으며, 문장에 뛰어났다고 한다. 김지대에 관한 기록을 모은 『영헌공 실기(英憲公實記)』에 수록된 세계(世系)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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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황응규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569년(선조 2) 과거에 급제하여 전생서 주부(典牲署主簿)를 비롯하여, 여러 벼슬을 두루 역임하였다. 고향에 은거하던 중 임진왜란을 만나 양곡을 내어 병사를 돕고, 향병 대장에 추대되어 의병을 모집하는 등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중문(仲文), 호는 송간(松澗).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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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문경(文卿), 호는 중산(中山). 아버지는 박재범(朴在範)이고, 어머니는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며, 부인은 재령 이씨이다. 박장현(朴章鉉)[1908∼1940]은 어린 시절 고향의 보성 학원(普成學院)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18세부터 조긍섭(曺兢燮) 문하에서 도학(道學)에 정진하였다. 이후 송준필(宋浚弼)·하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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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중선(仲宣), 호는 삼우정(三友亭). 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이며, 참판에 증직된 아버지 박영(朴潁)과 참봉을 지낸 장후(張煦)의 딸 창녕 장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첫째 부인은 예회간(芮檜幹)의 딸 의흥 예씨이며, 두 번째 부인 김려문(金麗文)의 딸 분성 김씨이다. 분성 김씨와의 사이에 박지남과 박철남을 두었다. 박경신(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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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에서 덕암리를 거쳐 부산광역시 사상구와 강원도 춘천시를 연결하는 고속 도로. 중앙 고속 도로는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동에서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춘천 인터체인지에 이르는 고속 도로로 전체 구간은 길이 387.4㎞, 너비 23.4m이다. 이 중 청도 구간은 중앙 고속 도로 대구∼부산 구간 중 일부분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용계동에서 부산광역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