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219
한자 芝村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운문면 지촌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운문면 지촌동에서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6년연표보기 - 지촌리 운문댐 건설로 수몰
성격 법정리
면적 9.62㎢
가구수 90가구
인구[남,여] 173명[남자 83명, 여자 90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경상북도 경주시와 청도의 경계에 위치한 지촌리는 오래도록 밀양의 비입지(飛入地)였다. 운문댐 조성과 함께 주요 경제생활은 표고버섯 재배로 바뀌었고, 중심지 역시 지촌에서 신촌으로 이동했다.

[명칭 유래]

1914년 신촌, 바그리, 화곡, 윗동경, 아랫동경을 병합하여 지촌동이라 하였다. 지촌리의 중심 마을인 바그리는 알골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상박곡과 하박곡으로 구분된다. 화곡은 화전(火田) 또는 화곡(花谷)으로 불렸는데. 마을에 화전을 하던 곳이 있어서 화전골로 불리다가 화곡으로 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지곡은 화곡 마을 앞에 있었으며 마일리 건너 산기슭에 자리하였던 마을이다. 해방 후까지 이 인근에 오래된 고가(古家)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새터는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기 때문에 새터 또는 신기라고 부른다. 청도에서 경주로 가는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버스가 다니면서 새로 형성된 마을이다. 왼쪽으로 가면 봉하리, 마일리로 해서 영천으로 가는 길이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경주로 가는 갈림길의 중심에 있었다. 동경은 고려 시대에는 경주를 동경이라 부를 때 청도에서 경주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설과 청도의 동쪽 경계 지역이라서 동경(東境)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형성 및 변천]

1906년 지방 행정 구역 조정 이전에는 밀양군(密陽郡) 고미면(古彌面)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고매부곡(古買部曲)이라는 기록이 있다. 1906년에 청도 동이위면(東二位面)에 흡수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신촌, 바그리, 화곡, 윗동경, 아랫동경을 병합하여 지촌동이라 하고 운문면으로 편입되었다. 1988년 지촌동에서 지촌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6년 운문댐 조성으로 인하여 지촌리 중심 마을인 지촌이 대부분 수몰되었으며, 이후 지촌리 중심지는 신촌으로 이동하였다.

[자연 환경]

동쪽, 서쪽, 북쪽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경주와 청도, 경상남도 밀양의 경계를 이루던 곳으로 바리박산[발백산]이 마을의 중간까지 내려와 동경과 본동을 갈라놓은 듯하다. 봉하리에서 발원한 봉하천과 마일에서 발원한 마일천이 흘러내려오고, 경주시 산내면에서 내려오는 산내천이 합하여 운문천을 이루는 곳에 위치한다. 계곡을 따라 길이 형성되어 경주와 영천, 경산시 용성면으로 가는 갈림길의 시작이 되는 곳이 된다.

[현황]

2012년 8월 현재 총면적은 9.62㎢이며, 총 90가구에 173명[남자 83명, 여자 9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경주시 산내면 내칠리, 서쪽은 경산시 용성면 부일리·용전리, 남쪽은 운문면 공암리·경주시 산내면 신원리, 북쪽은 운문면 봉하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바그리, 화곡, 지곡(芝谷), 새터, 동경(東京)이 있다

현재 지촌리운문댐 수몰로 인해 한국 수자원 공사의 지원에 힘입어 표고버섯을 재배하여 경제 기반을 다지고 있는 곳이다. 아직은 논농사를 병행하고 있으며, 밭에는 고추 등 밭작물도 겸하여 짓고 있다.

마을 중앙에서 국도 20호선과 지방도 921호선이 만난다. 공암리에서 국도 20호선을 타고 오는 동곡 순환 버스가 지촌 삼거리에서 지방도 921호선을 타고 봉하리로 이동한다.

경주시와 청도군의 경계에 위치한 장육산 9부 능선에는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393호로 지정된 청도 장육산 마애 여래 좌상이 위치한다. 순흥 안씨의 재실이 3곳이 있으며, 파평 윤씨의 재실이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