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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차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129
한자 趙且尙
이칭/별칭 조경윤(趙景潤)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 7월 10일연표보기 - 조차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4일 - 조차상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13일 - 조차상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6개월 확정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조차상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자금 모집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41년 - 조차상 동진회 조직
활동 시기/일시 1943년 8월 - 조차상 일제 경찰에 체포됨
활동 시기/일시 1945년 8월 15일 - 조차상 재판 중 광복을 맞이함
몰년 시기/일시 1995년 7월 17일연표보기 - 조차상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조차상 애족장 수여
출생지 조차상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지도보기
활동지 조차상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 만세 운동|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자금 모금|동진회 조직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조차상은 1898년(광무 2)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청도읍(淸道邑) 유호리(楡湖里)에서 출생하여 1995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24년 김진효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자금 모집에 관여하였고, 1941년 동진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4일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은 당시 장로교회 조사(助事) 김보곤(金寶坤)에 의해 시작되었다. 김보곤은 1919년 3월 2일 평양 신학교(平壤神學校)에 입학하러 가던 중, 황주역(黃州驛)에서 평양 신학교 학생인 이승길(李承吉)에게서 파리 강화 회의 소식과 국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세 운동에 대해 들었다. 이에 김보곤은 고향에서 만세 운동을 일으킬 것을 다짐하고 바로 돌아왔다.

조차상(趙且尙)[1898∼1995]은 3월 13일 서정기(徐正基)·김타관(金他寬)·정술문(鄭述文) 등과 함께 김보곤으로부터 국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세 운동 소식을 듣고, 다음날인 3월 14일 유천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조차상은 만세 운동 준비에 들어갔으나, 계획이 누설되어 3월 14일 유천 장터에는 일제 경찰의 경계가 삼엄하였다. 그리하여 만세 계획은 실패하였고, 주동자들은 모두 체포되었다. 조차상은 1919년 5월 13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6개월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차상은 심한 고문으로 인해 한쪽 눈을 실명한 채 만기 출옥하였다. 이후 1924년 김우곤(金禹坤)·김진효(金鎭孝) 등과 군자금 700원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 특파원인 박윤조(朴允祚)를 통하여 전달하였으며, 1941년에는 이길우(李吉雨)·김용덕(金龍德) 등과 함께 민족의 자주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동진회(東進會)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943년 8월에 체포되어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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