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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031
한자 朴瑀
이칭/별칭 중헌,기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6년연표보기 - 박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03년 - 박우 무과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22년 - 박우 수어청 비장이 됨
활동 시기/일시 1630년 - 박우 남포 현감으로 부임
몰년 시기/일시 1637년연표보기 - 박우 병자호란 때 전사
추모 시기/일시 1794년 - 박우 호조 참의에 추증
출생지 박우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지도보기
부임|활동지 박우 활동지 -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대쌍령리
묘소|단소 박우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칠엽산
사당|배향지 숭의사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성격 무신
성별
본관 밀양
대표 관직 호조 참의

[정의]

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중헌(仲獻), 호는 기포(杞圃). 증조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이고, 아버지는 공조 참의에 증직된 박경연(朴慶延)이며, 어머니는 부정(副正) 강경우(姜景愚)의 딸 진주 강씨이다. 임란공신 삼우정 박경신(朴慶新)의 조카이다.

[활동 상황]

박우(朴瑀)[1576∼1637]는 경상북도 청도군 수여현[지금의 이서면 수야리]에서 태어났다. 왜란이 끝난 후인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여, 조정의 명으로 변방의 수비를 맡았다. 1622년(광해군 14)에 수어청(守禦廳) 비장(裨將)이 되었다가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왔고, 이듬해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달려가 왕을 호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발발하자, 황해도 병사(兵使) 남이흥(南以興) 막하에서 적을 막아 공을 세웠는데, 그로 인해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1630년(인조 8)에 남포 현감(藍浦縣監)에 제수되어, 임기 3년 동안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정사를 펼쳤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서자 박상룡(朴尙龍) 및 가동 둘을 데리고 남한산성으로 달려가 병마 절도사 이의배(李義培)의 군진에 합류하였다. 이의배가 이끄는 군대가 경기도 광주시 쌍령(雙嶺)에서 적과 대치할 때 함께 끝까지 항전하다 1637년(인조 15) 전사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칠엽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94년(정조 18) 영남 관찰사 조진택(趙鎭宅)의 계품(啓稟)으로 호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청도군 이서면 숭의사(崇義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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