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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221
한자 亭上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운문면 정상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운문면 정상동에서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4.81㎢
가구수 97가구
인구[남,여] 154명[남자 81명, 여자 73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경상북도 경산시와의 경계선에 위치한다. 구룡 마을, 비석 마을, 질머리 마을[길머리 마을], 삼당 마을, 심곡 마을, 새말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명칭 유래]

정상리(頂上里, 亭上里)경주 최씨 소유의 정자인 구은정(九隱亭) 위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정상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오로동(吾老洞)이라고 하였다는데 이것은 오리(奧里), 즉 후미진 곳이라서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심곡 마을[깊은 골 마을]은 처음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깊은 골에 마을이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정상 마을은 정상리의 중심 마을로 심곡 마을과 합쳐진 마을이다. 이곳에는 느티나무 숲이 울창하고 정자를 지어서 정자 마을로 불리기도 하지만, 구은정이 있어서 정자 마을로 불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심곡보다는 늦게 마을이 형성되어서 새말이라고 부른다.

질머리[道三]는 삼거리이다. 경산과 영천, 청도로 갈라지는 길 초입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경작지는 대부분 비탈 밭이고 논은 조금 있는 편이나, 마을 입구에 약수터가 있어서 1980년대까지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고 버스도 이곳이 종점이었다. 약수는 유황 성분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삼당은 새말 서편 계천 건너에 있는 마을이다. 새말보다는 높은 지대이며, 시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 개의 바위에 각각 한 집씩 의지하여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해서 삼당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세 개의 바위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지석묘일 가능성이 높다는 기록이 있다.

구룡 마을[비석리]은 구룡산 아래에 있지만 청도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우물이 아홉 군데나 있어서 구룡천(九龍泉)이라 부르고, 아홉 마리의 용이 우물마다 살았다고 해서 산 이름도 구룡산이라고 하며, 동네 이름도 구룡 마을이다. 이곳은 옛날에 구룡사라는 절이 있었고 비석이 있었기 때문에 비석리라고도 부른다.

[형성 및 변천]

역사의 기록이 남은 것은 밀양군 고며면(古旀面)이 시초이다. 1906년에 청도군 동이위면(東二位面)으로, 다시 동일위면(東一位面)으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정상동이라 하여 운문면으로 통합되었으며, 1988년 정상동에서 정상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구룡산과 바리박산[발백산], 사룡산 사이에 있다. 경작지가 적으나 골은 비교적 좁은 편이 아니다. 비탈진 곳의 논은 대부분 다랑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밭작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황]

2012년 6월 현재 면적은 4.81㎢이며, 총 97가구에 154명[남자 81명, 여자 7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북동쪽은 운문면 마일리, 북서쪽은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매남리, 남쪽은 운문면 봉하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답게 자연 마을이 많은 편이다. 구룡 마을, 비석 마을, 질머리 마을[길머리 마을], 삼당 마을, 심곡 마을, 새말 등이 있다. 구룡 마을은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았던 곳이며, 지금도 구룡 공소가 있다. 주민이 많지 않은 관계로 천주교 대구 대교구에서 와서 미사를 본다고 한다.

구은정과 낙호 정사(樂乎精舍)와 추원정(追遠亭) 등의 정사가 있고, 질머리 마을에는 삼체정(三棣亭)이 있으며 용천 약수가 있어 옛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만 지금은 발길이 뜸하다. 그러나 위장병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고 효험도 있다고 한다. 인근에는 약수로 닭과 오리 요리를 해 주는 식당도 있다. 구룡 마을에는 여름이면 휴양 차 찾아오는 사람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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