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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천사 사천왕상 복장 유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714
한자 磧川寺四天王像服裝遺物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의복/의복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98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690년 - 적천사 사천왕각 복장기에 1690년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음
출토|발견 시기/일시 1981년 - 적천사 사천왕각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천왕 목상 안에서 적천사 사천왕상 복장 유물이 발견됨
소장처 적천사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981지도보기
출토지 적천사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981
성격 복장 유물
재질 삼베|유물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있는 적천사 사천왕각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

[개설]

적천사 사천왕상 복장 유물 은 1981년에 적천사 사천왕각(四天王閣)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천왕 목상 안에서 발견되었다. 사리, 경판, 다라니경, 곡식, 향료 등과 함께 철릭, 장삼, 창옷, 적삼, 중치막, 직령 등 의류 23점이 발견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복식 유물은 7점으로 철릭 3점, 장삼 1점, 중치막 1점, 직령 2점이다.

[연원]

적천사 사천왕각에서 발견된 유물은 사리, 경판, 의류, 다라니경, 곡식, 향료 등이며, 이와 함께 복장기(腹藏記)가 나왔다. 복장기에는 ‘강희 이십구 년 경오 칠월 청도군 지남령 화악산 적천사 사천왕조상(康熙二十九年庚午七月 淸道郡地南嶺華嶽山磧川寺四天王造像)’이라는 기록이 있어, 강희 29년인 1690년(숙종 16)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형태]

향료와 곡식은 삼베 조각으로 싸고 네 귀퉁이를 모아 동심결(同心結)로 묶어 두었다. 복장 유물 중 철릭은 현존하는 유물 7점 중 3점이며, 무명 철릭 2점과 삼베 철릭 1점이다. 철릭은 상의(上衣)와 하상(下裳)을 따로 재단하여 허리에서 연결한 남자용 포(袍)로, 하상의 주름이 많아 말을 타거나 할 때 행동이 자유로운 옷이다.

무명 철릭은 상의와 하상 길이의 비율이 1:2로 하상 부분이 상의의 배 정도가 된다. 하상의 주름 너비는 2㎝ 정도이다. 상하 비율과 주름을 보면 조선 후기 철릭의 특징을 갖는다. 소매는 좁고 긴 것으로 미루어 다른 옷의 받침옷으로 착용한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오른쪽 소매는 탈착이 가능한 형태로 고리를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고, 소매 부분은 유실되었다. 삼베 철릭의 상하 비율 역시 1:2이다. 양 소매와 치마 부분의 훼손이 심하나 역시 조선 후기 철릭의 특징을 보인다.

장삼은 명주로 만든 것으로 사천왕 목상에서 발견된 자료 중 유일한 명주옷이다.

중치막은 조선 시대 벼슬하지 아니한 선비의 웃옷으로, 적천사 중치막은 삼베로 만든 홑중치막이다. 옷 길이가 비교적 짧고 도련이 둥글게 퍼진 모양을 하고 있고, 소매는 길고 좁다. 중치막 형태는 이태곤(李泰坤)[1672∼1763] 묘에서 출토된 중치막과 유사한 형태로 조선 후기 중치막의 특징을 갖고 있다.

직령은 옷깃이 직선으로 여며지는 조선 시대 남자 포(袍)의 하나이다. 적천사 사천왕 목상에서 발견된 직령은 2점으로 모두 삼베로 만들었다.

[용도]

복장 유물 중 의류들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옷으로 무명과 삼베로 이루어져 당시 생활을 보여 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 바느질이 정교하지 못한 점과 여러 곳에 기워 입은 흔적이 남아 있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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