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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제국 때에 경상도 청도 지역에서 설립된 계몽 운동 단체. 1908년 3월 서울에서 교남 교육회가 설립된 후 청도 출신의 이상요(李相堯)·박병현(朴秉鉉)·박구현(朴龜鉉)·예중기(芮重基)·박순영(朴淳永) 등이 있는 청도 지역에도 계몽사상이 보급되었다. 이후 1909년에 독자적인 계몽 운동 단체로서 운산 친목회(雲山 親睦會)와 간친 교육회(懇親 敎育會)가 설립되었다. 간친 교육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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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성봉은 1873년(고종 10)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51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청도군 운문면에서 발생한 일제 경찰 구타 의거에 참가하여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청도군 운문면에서는 1919년 3월 18일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김진효(金鎭孝)·손기현(孫琪鉉) 등에 의해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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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수영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출신으로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 독립단(大韓獨立團) 감찰과 대한 통군부에서 활동하였으며, 통의부의 결성에 참여하고 검무원으로 일했다. 1920년대 중반 귀국하여 진주와 마산 등지에서 활발하게 사회 운동을 펼쳤다. 본관은 진주(晉州). 강수영(姜壽永)[1889∼?]은 1919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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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 운동가. 강재식은 1895년(고종 32)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63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전개된 운문면 만세 운동은 문명 학교 졸업생 및 교사들이 주도하였다. 당시 문명 학교 졸업생 김상구(金相久)와 김종태(金鍾台)는 3월 1일 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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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10년까지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역사. 청도 지역은 개항 이후 외세의 침략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청도 지역에서는 1881년의 영남 만인소 운동과 1894년의 동학 농민 운동으로 대표되는 위정척사 운동이나 반제 반봉건 운동 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지만 청도 사람들도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지 사족을 중심으로 창의하였던 역사적 사실에 자긍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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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 대한 제국 시기 국권 회복 운동은 의병 운동과 계몽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계몽 운동은 갑신정변과 독립 협회 운동으로 대표되는 개화 자강 계열의 민족 운동을 계승한 것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개화 자강 계열의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을 위한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주도한 전국의 대표적 단체는 대한 자강회(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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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조직된 청년 운동 단체. 청도 지역의 청년 운동 단체는 1920년 대에 들어서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1920년 7월 청도 청년회가 설립된 이후 1923년 성현 청년회(省峴靑年會), 1924년 풍각 수양단(豊角修養團), 1926년 유천 청년회(楡川靑年會), 1927년 풍각 청년회(豊角靑年會)·대성 청년회(大城靑年會)·풍각 기독교 청년회(豊角基督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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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의 사회사업가이자 의사. 곽예순은 1919년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에서 출생했다. 1946년 의사 시험에 합격하여 1952년 대구 중구에 곽외과를 개업하였고, 1963년 병원을 확장하여 종합 병원 곽병원을 개원하였다. 이후 의료 사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회사업을 전개하여 지역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2002년 10월 30일 향년 83세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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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도 출신의 의병. 구성립은 1869년(고종 6)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서 출생하였다. 윤만파가 거느리는 의병 부대의 소모장으로, 1908년 4월경 청도군 운문면을 중심으로 경주·울산·경산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정미의병 시기 청도 지역에는 윤만파(尹萬坡)와 최한룡(崔翰龍)이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이끌고 활동하였으며, 그 외 박용운(朴龍雲)과 박문선(朴文善)은 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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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국민 보도 연맹 가입자에 대한 집단 살해 사건. 국민 보도 연맹(國民保導聯盟)은 일제 강점기 친일 전향 단체인 대화숙(大和塾)을 모방하여 1948년 12월 국가 보안법에 따라 좌익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보호하고 인도하는 취지로 조직되었다. 1949년 11월 1일 국민 보도 연맹 경북도 연맹 발족 이후, 산하 조직으로 청도군 연맹이 결성되어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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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전개된 국채 보상 운동. 국채 보상 운동은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국권 회복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범국민적 운동이다. 국채 보상 운동은 1907년 1월 부산 상무소(釜山商務所)[회두 서상돈]에서 처음 논의되어,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사(大邱廣文社) 사장 김광제(金光濟), 부사장 서상돈(徐相燉), 대동 광문회 회장 박해령(朴海齡) 등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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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청도 출신의 학자. 본관은 청도. 자는 경삼(景三), 호는 덕암(德岩). 청도 김씨 영헌공 김지대(金之岱)의 후손이다. 1883년 4월 17일 청도군 청도읍 덕천(德泉)에서 태어났으며, 김용준(金鏞俊)의 아들 3형제 중 장남이다. 김달(金達)[1883∼1960]은 1883년(고종 20)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덕암리에서 출생하였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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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도곤(金道坤)[1890-1947]은 1890년(고종 27)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태어나 1947년 사망하였다. 1919년 5월 7일 청도읍 일본인 구타 의거에 참여하였다. 1919년 5월 7일 대성면[현 청도읍] 유호리 김달선(金達先)의 집에 머물던 3인의 일본인 충전작태(充田作太)·산구호웅(山口虎雄)·수야희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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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동주는 1891년(고종 28)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29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청도군 운문면 일제 경찰 구타 의거에 참가하였다. 청도군 운문면에서는 1919년 3월 18일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김진효(金鎭孝)·손기현(孫琪鉉) 등에 의해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3월 19일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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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준은 1885년(고종 22)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54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청도군 운문면 일제 경찰 구타 의거에 참가하였다. 청도군 운문면에서는 1919년 3월 18일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김진효(金鎭孝)·손기현(孫琪鉉) 등에 의해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3월 19일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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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서 빨치산에 항거한 반공 투사. 김병찬은 빨치산이 자주 출몰하여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고 식량과 가축을 약탈하는 것에 분노하여 운문 지서에 토벌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신고한 사실이 빨치산에게 알려져 그들에게 잡혀서 경찰과 함께 싸우기를 강요당하였으나 끝까지 버티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산동 지역에 위치한 청도군 운문면은 운문산(雲門山)에 둘러싸인 산지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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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형은 1894년(고종 31)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41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청도군 운문면 일제 경찰 구타 의거에 참가하였다. 청도군 운문면에서는 1919년 3월 18일에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김진효(金鎭孝)·손기현(孫琪鉉) 등에 의해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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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보곤은 1891년(고종 28)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출생하여 1924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유호리 유천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김보곤(金寶坤)[1891∼1923]은 1919년 3월 14일 대성면[현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당시 내호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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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구는 1899년(광무 3)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71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전개된 운문면 만세 운동은 문명 학교(文明學校) 졸업생 및 교사들이 주동하였다. 당시 문명 학교 졸업생 김상구(金相久)[1899∼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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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곤은 1889년(고종 26)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출생하여 1943년 사망하였다. 1919년 5월 7일 청도읍 일본인 구타 의거에 참여하였다. 1919년 5월 7일 대성면[현 청도읍] 유호리 김달선(金達先)의 집에 머물던 일본인 충전작태(充田作太)·산구호웅(山口虎雄)·수야희삼랑(水野喜三郞)은 밖에서 놀고 있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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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덕은 1924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 25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1년 항일 비밀 결사인 동진회(東進會)에 가담하여 농민회와 소년 독성회를 조직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김용덕(金龍德)[1924∼?]은 1941년 1월 27일 음력설을 맞이하여 청도군 청도면 유호동 출신의 20대 청년 이형우(李亨雨)[보성 전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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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원진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양원동 39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3년 일본군에 징병되었다가 탈출하여 1944년 1월 중국군에 입대하였다. 1945년 11월부터 광복군에 근무하다가 귀국하였다. 김원진(金元鎭)[1926∼?]은 1943년 육군 지원병으로 강제 징용되어 훈련소에 입소하였다가 탈출하여 1944년 1월 10일 중국 37사단 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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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유덕은 1898년(광무 2) 대구에서 미곡상을 경영하여 대지주가 되었다. 달성 친목회(達城親睦會)와 조선 국권 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등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유덕(金裕德)[1898∼?]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松金里) 출신으로 대구에서 미곡상을 경영하고 있던 대지주였다. 1908년 조직된 달성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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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의명은 1924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角南面) 사동 1063번지에서 출생하여 1950년 사망하였다. 1943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으로 활동하였다. 김의명(金義明)[1924∼1950]은 1937년 풍각 공립 보통학교(豊角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37년 3월부터 1941년 9월까지 서울과 대구에 있는 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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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의택은 1862년(철종 13)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42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청도군 운문면 일제 경찰 구타 의거에 참가하였다. 청도군 운문면에서는 1919년 3월 18일 김종태(金鍾台)·김상구(金相久)·손기현(孫琪鉉)·김진효(金鎭孝) 등의 주도에 의해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3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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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인제는 한교회(韓僑會)와 흥업단(興業團)의 단원으로 1920년 11월 국내에 잠입하여 1922년 2월까지 대구와 밀양·양산 등지를 거점으로 동지를 포섭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인제(金仁濟)[1899∼?]는 1899년경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태어나 중국 요녕성[봉천성] 환인현(桓仁縣) 육도하자(六道河子)에 거주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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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화는 1897년(광무 1)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52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전개된 운문면 만세 운동은 문명 학교(文明學校) 졸업생 및 교사들이 주동하였다. 당시 문명 학교 졸업생 김상구(金相久)는 김종태(金鍾台)와 함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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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김정기는 1885년(고종 22)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용산리 용연동에서 출생하여 1946년에 사망하였다. 1919년 곽종석(郭鍾錫) 등 유림 137명이 참여한 파리장서[제1차 유림단 의거]에 서명하였다. 김정기(金定基)[1885∼1946]는 1909년 10월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911년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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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종윤은 1925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170번지에서 출생하여 만주 봉천으로 건너가 친형 김찬규와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고향에서 조직된 항일 비밀 결사 동진회(東進會)에 가담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44년 2월 10일 인천 소년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김종윤(金鍾允)[1925∼1944]은 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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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종태는 1897년(광무 1)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49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전개된 운문면 만세 운동은 문명 학교(文明學校) 졸업생 및 교사들이 주동하였다. 당시 문명 학교 졸업생 김종태(金鍾台)[1897∼1949]는 김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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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주한은 1875년(고종 12)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47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청도군 운문면 일제 경찰 구타 의거에 참가하였다. 청도군 운문면에서는 1919년 3월 18일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김진효(金鎭孝)·손기현(孫琪鉉) 등에 의해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3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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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진효는 1887년(고종 24)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에서 출생하여 1979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김진효(金鎭孝)[1887∼1979]는 휘문 의숙을 졸업한 후 김우곤의 권유로 1906년 설립된 사립 문명 학교 교사로 취임하여 근무하던 중 1919년 운문면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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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한구는 1889년(고종 26)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24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청도군 운문면 일제 경찰 구타 의거에 참가하였다. 청도군 운문면에서는 1919년 3월 18일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김진효(金鎭孝)·손기현(孫琪鉉) 등에 의해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3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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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해득은 1924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우산리 15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4년 중국 중경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으로 활동하였다. 김해득(金海得)[1924∼?]은 1943년 10월 중순 일제에 강제로 징집되어 평양 42부대에 입대한 후, 중국 남경 지구로 출정하여 현지에서 군사 교육을 받고 제6213부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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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지역의 농민들이 정치·경제·사회적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전개한 사회·경제 운동. 일반적으로 농민 운동은 노동 운동과 같이 계급으로서의 농민이 스스로의 노동 조건과 경영 조건을 유지·개선·확장하기 위해 또는 정치·경제·사회적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단결해서 행동하는 조직적 투쟁을 말한다. 조선 시대 말 동학 농민 운동과 일제 강점기 민족 해방 운동의 일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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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서동일이 1925년 다물단의 군자금 모집을 주도하다가 체포된 사건. 다물단(多勿團)은 1925년 4월 14일 북경에서 조직된 항일 비밀 운동 단체이다. 1923년 3월 배천택(裵天澤), 김창숙(金昌淑) 등이 조직한 국민당(國民黨)이 항일 운동에 직접 뛰어들기 위해 1925년 4월 북경 마사묘(麻四廟)에서 조직하였다. 이 단체의 중심인물은 배천택,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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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운동 단체.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청년 운동 단체는 1920년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1920년 7월에 청도 청년회가 설립된 이후 1923년 성현 청년회(省峴靑年會), 1924년 풍각 수양단(豊角修養團), 1926년 유천 청년회(楡川靑年會), 1927년 풍각 청년회(豊角靑年會)·대성 청년회(大城靑年會)·풍각 기독교 청년회(豊角基督敎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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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설립된 대한 자강회 청도 지회. 대한 자강회는 국민 교육을 강화하고 국력을 배양함으로써 독립의 기초를 다진다는 취지 아래 1906년 윤효정(尹孝定)·장지연(張志淵)·나수연(羅壽淵)·김상범(金相範)·임병항(林炳恒) 등이 1905년 5월 이준(李儁)이 조직한 헌정 연구회(憲政 硏究會)를 확대 개편하여 발족하였다. 1906년 8월에 제정된 대한 자강회 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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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에 결성되어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활동하였던 우익 청년단체. 1948년 5·10 총선거를 통해 단독 정부를 수립한 이승만 정부 시기에는 이후 남로당 저항, 여순 사건, 제주도 4·3 사건, 정부 내 정치 투쟁 등 일련의 불안한 정국이 이어졌다. 이러한 정국을 타파하기 위하여 이승만 정부는 국가 보안법을 제정하고 좌익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섬멸을 통하여 정권의 안정화와 완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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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 김진효가 주도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한 사건. 1920년대 청도 지역에서 발생하였던 독립 운동 관련 사건은 1921년 12월 신민사(新民社) 사건과 1925년 6월 다물단(多勿團) 사건 등이 있다. 그 외에 이정희(李庭禧)[매전면]는 1922년 12월 조선 독립 운동 후원 의용단(朝鮮獨立運動後援義勇團)의 군자금 모집 사건, 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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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직후 유림계에서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보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한 운동. 1919년 3·1 운동 직후 영남과 호서 지역 유림의 대표적인 인물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과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 등 137명이 파리에서 열리는 파리 강화 회의에 장서를 보내 독립을 청원한 사건이다. 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의 문인 윤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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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부터 1945년까지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국권 회복 운동. 청도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은 대한 제국기의 의병 운동과 계몽 운동, 1910년대 국내외 항일 투쟁, 1919년 3·1 운동, 1920년대의 민족 운동으로서 청년 운동·농민 운동·사회 운동·신간회 운동, 그리고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으로 동진회 의거 등이 있었다. 청도 지역은 개항 이후 외세의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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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독립운동을 전개한 청도 지역 인물. 청도 지역에는 비교적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하였다. 지금까지 독립 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은 54명 정도이지만, 아직 포상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도 다수 있다. 그중에는 1919년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 가장 많고, 그 외에 국내에서 독립을 위해 힘을 쓴 사람, 국외로 망명하여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만주 독립운동 단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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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에서 동진회의 회원들이 벌인 항일 지하 운동. 1941년 1월 27일에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면 유호동(楡湖洞) 출신의 허남귤, 이길우 등 11명의 20대 청년들이 독립운동 단체인 동진회(東進會)를 조직했다. 동진회는 재만 독립운동 단체와 연통(連通)하면서 항일 지하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1943년 9월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관련자 5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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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빨치산 토벌 활동을 펼친 군대. 땅벌 부대 소속대원들은 주로 과거 좌익·공비 출신들로 구성된 부대이다. 2008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면담 보고서에서는 이 부대를 포항에서 온 사찰 유격대로 진술하고 있으며, 『청도 군지』에는 김천에서 파견된 부대로 기록되어 있다. 1948년 남한 단독 선거 저지를 위한 남로당 주도의 2·7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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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음력 4월 28일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남양 2리 주민들에 대한 빨치산 보복 사건. 해방 정국과 6·25 전쟁 기간 중 청도군에서는 좌·우익 사이 여러 가지 충돌 사건들이 발생했다. 매전면 남양 2리 투쟁도 그 사건 중 하나로 빨치산을 생포한 주민들을 상대로 빨치산이 보복한 사건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은 북부의 용각산(龍角山), 선의산(仙義山), 남부의 운문산(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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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1일과 12일에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운동. 3·1 운동 당시 경상북도 청도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5월 초순에 걸쳐 모두 7회의 크고 작은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관공서 습격, 일본 경찰 구타, 일본인과의 충돌, 자위회 공격 등 점차 격렬한 무력시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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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근이는 1908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高樹里)에서 출생하였다. 1931년 11월 19일 군용 열차 전복 의거에 참여하였다. 박근이(朴根伊)[1908∼?]의 원적은 청도군 종도면[현 매전면] 덕산리 721번지이고, 본적은 청도군 대성면 고수리 312번지이다. 박근이는 청도 토박이로 아버지 박대백(朴大伯)과 어머니 김연손(金年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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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기수는 1924년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덕양리 115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4년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되어, 1944년 9월 초 중국 호남성 형산까지 갔으나 일본군을 탈출하여 1944년 9월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1945년 4월 광복군 제1 지대 제3 구대에 입대하여 중국군과의 합동 작전에 참여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 일제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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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기현은 1925년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오봉동 292번지에서 출생하여 1996년 사망하였다. 1945년 일제의 징집 훈련 반대를 주동하였다. 박기현(朴琪鉉)[1925∼1996]은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한 후 농업에 종사하였다. 1945년 2월경 금천면 금천 공립 보통학교에서 일본군의 징집 훈련을 받던 중, 일본군에게 도움을 주지 말자고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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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대호는 1895년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고평리에서 출생하여 1947년 사망하였다. 1913년 3월 중국 요녕성 환인현(桓仁縣)으로 이주하여 1922년 통의부(統義府), 1923년 의군부(義軍府)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1932년부터 조선 혁명군에 참여하여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 박대호(朴大浩)[189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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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도 출신의 의병. 박문선은 조선 말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3월 산남 의진에 참여하여 중군장 박용운(朴龍雲)과 함께 청도를 비롯하여 영천·창녕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 박문선(朴文善)[?∼?]은 1906년 3월 산남 의진에 참여하여 중군장 박용운과 함께 청도·영천·창녕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산남 의진은 1906년 3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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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상노는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사촌리에서 출생하여 청도읍 내호리 259번지에 거주하였다. 1941년 2월 독립운동 단체 동진회(東進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박상노(朴相老)[1925∼?]는 1938년 3월 밀양 상동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정미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1941년 1월 27일 청도읍 유호리 출신의 허남귤(許南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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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의병. 박수길은 1879년(고종 16)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출생하여 경남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1908년 순국하였다. 일제는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광무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 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여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 항쟁은 전국적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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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남양 2리에서 빨치산에 항거한 반공 투사. 박순형은 청도군 매전면 남양 2리의 민보 단장으로, 1949년 음력 4월 28일 마을 뒷산에 수상한 사람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민보 단원 및 마을 청년들과 함께 생포하여 매전 지서에 인계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발생한 지 한 달 뒤 국군 복장으로 위장한 빨치산들이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을 향해 총과 칼로 보복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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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호는 1913년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고평리에서 출생하여 조선 혁명군 부사령관인 형 박대호(朴大浩)를 따라 1931년 조선 혁명군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1935년 중국 관전현(寬甸縣)에서 순국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박영호(朴永浩)[1913∼1935]는 조선 혁명군 부사령관이었던 형 박대호(朴大浩)를 따라 1931년 조선 혁명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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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도 출신의 의병. 박용운은 조선 말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3월 산남 의진의 중군장으로 청도·영천·창녕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 박용운(朴龍雲)[?∼?]은 참봉으로, 산남 의진의 중군장이 되어 청도를 비롯하여 영천·창녕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산남 의진은 1906년 3월부터 1908년 7월까지 경상북도 영천과 영덕·청송군 일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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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재영은 1878년(고종 15)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대천리(大川里)에서 출생하여 1944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전개된 운문면 만세 운동은 문명 학교(文明學校) 졸업생 및 교사들이 주동하였다. 당시 문명 학교 졸업생 김상구(金相久)는 김종태(金鍾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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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사리에서 빨치산에 항거한 반공 투사. 박재환은 청도군 각남면 사리 마을의 경비 단장으로 있었는데, 1949년 7월 초순 순찰 도중 빨치산 2명을 만나 격투를 벌여 부상을 입혔으나 잡지 못하였다. 그 후 1950년 3월 9일 밤 9시경 국군 복장을 한 빨치산들이 마을에 나타나 경비원 전원을 박재환의 집에 집결시킨 뒤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집에 불을 질러 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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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정근은 1923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 25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1년 항일 비밀 결사인 동진회(東進會)에 가담하여 농민회와 소년 독성회(少年獨成會)를 조직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박정근(朴丁根)[1923∼?]은 1941년 1월 27일 음력설을 맞이하여 청도군 청도면 유호동 출신의 20대 청년 이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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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정찬은 1867년(고종 4)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대천리(大川里)에서 출생하여 1922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전개된 운문면 만세 운동은 문명 학교(文明學校) 졸업생 및 교사들이 주동하였다. 당시 문명 학교 졸업생 김상구(金相久)와 김종태(金鍾台)는 3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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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종락은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우산리 18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4년 9월 일본군에 징병되었다가 1945년 1월 일본군을 탈출하여 1945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광복군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본관은 밀양. 청도군 각북면 우산리에 세거하던 박화조(朴和祚)의 후예이다. 박종락(朴鍾洛)[1924∼?]은 1937년 3월 풍각면 소재 풍각 공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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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6·25 전쟁 기간까지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발생한 반공 투쟁 사건. 1946년 5월 미소 공동 위원회의 협상 결렬, 대구 10·1 사건, 2·7 사건 등을 거치면서 남한 내 모든 좌익 세력들이 불법화되었다. 이에 남로당은 무장 게릴라 조직인 남조선 인민 유격대를 전국적으로 5개 유격 전구에 결성한다. 경주·영천·영일·양산·울산·동래·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격 지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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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반양환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구라동 15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4년 9월 일본군에 징병되었다가 1945년 3월 윤봉갑·김해득과 함께 일본군을 탈출하여 1945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하였다. 본관은 기성(岐城). 청도군 이서면 구라동에 세거하던 반예(潘汭)의 후예이다. 반양환(潘良煥)[1924∼?]은 19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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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영진은 1924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 516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1년 항일 비밀 결사인 동진회(東進會)에 가담하여 농민 친목회(農民親睦會)와 소년 독성회(少年獨成會)를 조직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백영진(白泳珍)[1924∼?]은 1941년 1월 청도군 청도면 유호동에서 조직된 동진회에 가담하여 회원으로 활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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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1월 19일 청도읍 부야리 주민들이 빨치산에 의해 보복 살해당한 사건. 해방 정국과 6·25 전쟁 기간 중 경상북도 청도군에서는 좌익과 우익 사이에 여러 가지 충돌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빨치산에 의해 보복 살해당한 부야리 사건도 그 중 하나이다. 청도군은 험준한 지형적 원인으로 6·25 전쟁 이전부터 빨치산 활동이 두드러진 지역이었다. 청도군 청도읍 부야리에도 뒷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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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을 전후하여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공산주의를 지향하며 유격전을 수행한 게릴라 부대. 1949년 7월에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남한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유격 투쟁을 조직적이며, 대규모로 전개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유격대에 대한 일원적 지휘는 박헌영의 지도 아래 이승엽이 관장하였다. 남조선 인민 유격대는 빨치산, 야산대(野山隊), 공비(共匪), 공산 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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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활동한 농민 운동 단체. 1920년대 전반기에 활동하던 농민 단체들은 소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청도 지역에서 1920년대 전반기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단체는 1921년 1월에 조직된 삼군 소작인 동맹회(三郡 小作人 同盟會)와 1922년 봄에 조직된 풍각면 농사 개량 조합, 그리고 1924년 3월에 조직된 풍각 소작 조합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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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을 기해 경상북도 청도군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3·1 운동 당시 청도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5월 초순에 걸쳐 모두 7회의 크고 작은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관공서 습격, 일본 경찰 구타, 일본인과의 충돌, 자위회 공격 등 점차 격렬한 무력시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제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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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산시 대동에 있는 영남 대학교 부설 새마을 연구 센터. 새마을 연구 센터는 새마을 정신의 진흥, 새마을 운동의 세계화 및 지역 사회 발전에 관한 조사·연구를 하고 있으며, 새마을 정신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새마을 교육 수료자 인적 네트워크 운영·관리를 하고 있다. 또 새마을 운동의 해외 보급, 해외 봉사 활동 등 새마을 운동의 세계화 추진, 새마을 학교의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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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시작된 1970∼1980년대 생활 환경의 개선과 소득 증대를 도모한 지역 사회 개발 운동. 새마을 운동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그 이념으로 하고 있다. 그 이념에 부합가기 위한 실천 원리이자 행동 철학이 바로 새마을 정신이다. 근면(勤勉)·자조(自助)·협동(協同)의 새마을 운동은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며 사회 혁신 운동이다. 따라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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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조직되어 활동한 우익 청년 단체. 해방 이후 청도 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이북 출신 월남 청년으로 구성된 서북 청년단은 여타 다른 단체보다 지역민 전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46년 결성된 서북 청년단은 조국의 완전 자주 독립 전취(戰取), 균등 사회 건설, 세계 평화 공헌을 공식적인 강령으로 채택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좌익 세력 척결 및 대공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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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정기(徐正基)[1903∼1924]는 1903년(광무 7)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楡湖里)에서 출생하여 1924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은 당시 장로교회 조사(助事) 김보곤(金寶坤)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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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의 유학자. 성기운은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으로 1917년 5월 24일 호적령(戶籍令)에 반대하여 호적을 거부하였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순재(舜在), 호가 덕천(悳泉). 아버지는 성두채(成斗彩)이다. 대제학 회곡(檜谷) 성석용(成石瑢)의 16세손이며, 동주(東洲) 성제원(成悌元)의 후손이다. 성기운(成璣運)[1877∼1956]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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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성삼백은 1896년(건양 1)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巨淵里)에서 출생하여 1987년 사망하였다. 1919년 4월 20일 청도읍 거연리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전국 각지로 확산되어 가는 것을 접한 단산 서당(丹山書堂)의 학생 이승옥(李承玉)은 3월 31일 자기 집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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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운동 단체. 청도 지역의 청년 운동 단체는 1920년에 들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1920년 7월 청도 청년회가 설립된 이후 1923년 성현 청년회(省峴 靑年會), 1924년 풍각 수양단(豊角 修養團), 1926년 유천 청년회(楡川 靑年會), 1927년 풍각 청년회(豊角 靑年會)·대성 청년회(大城 靑年會)·풍각 기독교 청년회(豊角 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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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일어난 소작인과 지주 사이의 분쟁. 1920년대 전반기 청도 지역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단체는 1921년 1월 조직된 삼군 소작인 동맹회(三郡小作人同盟會), 1922년 봄에 조직된 풍각면 농사 개량 조합(豊角面 農事改良組合), 그리고 1924년 3월 조직된 풍각 소작 조합(豊角小作組合)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농민 단체들은 1920년대 전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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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기달은 1912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방지리에서 출생하였다. 1933년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1944년 중국 중경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으로 활동하였다. 손기달(孫基達)[1912∼?]은 1933년 3월부터 만주 봉천성(奉天省) 철령시(鐵領市) 만주 조선 청년회와 한족회에 가담하여 김동숙(金東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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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기현은 1884년(고종 21)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46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전개된 운문면 만세 운동은 문명 학교(文明學校) 졸업생 및 교사들이 주동하였다. 당시 문명 학교 졸업생 김상구(金相久)는 김종태(金鍾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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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한조는 1892년(고종 29)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53년에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전개된 운문면 만세 운동은 문명 학교(文明學校) 졸업생 및 교사들이 주동하였다. 당시 문명 학교 졸업생 김상구(金相久)는 김종태(金鍾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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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서 빨치산에 항거한 반공 투사. 송장수는 운문사 부근에 거주하면서 일제 강점기 때부터 마을의 이장 일을 맡아 왔다. 해방이 되면서 마을이 혼란스러워지자 줄곧 마을 경비 단장을 맡아 반공 활동을 전개하다가 빨치산에 끌려가 죽음을 당하였다. 해방 이후 남조선 인민 유격대는 전국적으로 5개 유격 전구를 결성하였는데 당시 운문산(雲門山) 일대는 영남 유격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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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조직된 신간회 지회. 1927년 2월 15일 서울에서 좌우 합작체로서 신간회가 결성된 뒤 경상북도 지방에서는 같은 해 6월 신간회 김천 지회를 시작으로 1929년 7월까지 모두 21개의 지회가 각 지역에서 결성되었으며, 회원으로 3,400여 명이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신간회 청도 지회는 1928년 5월 12일에 설립되었다. 신간회 청도 지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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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신교육 구국 운동. 신교육 구국 운동은 대한 제국 시기 계몽 운동가 및 계몽 운동 단체의 사립 학교 설립을 위한 신교육 운동에 민중들이 호응하면서 시작되었다. 나아가 민중들의 자발적인 학교 설립 추진으로 신교육 구국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대한 제국 시기 계몽 운동을 전개했던 국민 교육회(國民敎育會)[1904년],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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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신기 부락 주민들이 빨치산에게 보복 희생당한 사건.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은 해방 이후 청도 지역에서 사회 문화적 중심지 기능을 했으며, 고학력자나 재력가도 다른 지역보다 많아 좌익 인사들이 상당수 거주했다. 또한 비슬산 자락에 위치해 있어 빨치산들이 빈번하게 출몰하던 곳이었다. 이서면 수야리에는 비슬산 지맥 삼성산이 위치하고 있어,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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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신민사의 독립 운동 자금 모집 사건. 1920년대 국내의 독립 운동은 직접 일제 침략 기관과 책임자를 공격하는 것과 나라 밖에 건설된 독립군 기지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의열(義烈)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즉 의열 투쟁은 일제의 침략 기관과 책임자를 응징하는 것과 친일 부호를 공략해 군자금을 확보하여 국외의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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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남로당 계열을 비롯한 좌익 계열이 선동하여 대구에서 시작하여 청도군 등 전국적으로 확산된 시위 사건. 10·1 사건은 대구 노동 평의회 측과 경찰의 충돌이 폭력 사태로 발전되면서 격화된 사건이다. 경찰은 대구 노동 평의회가 불법적인 단체라고 규정하고 대구 노동 평의회 투쟁 위원회의 간판을 떼어버리고, 파업 조종자의 색출과 파업의 금지에 나섰다. 이로 인해 경찰과의 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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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은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으나 1950년대부터 ‘마을 가꾸기 사업’·‘잘살기 운동’ 등이 청도군에서 시작되었다. 청도군 화양면 합천리의 장복주는 6·25 전쟁 이후 귀향하여 1955년부터 합천리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영농 개선 운동을 전개하였다.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의 김봉영은 1957년부터 신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새마을 가꾸기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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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8일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일원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운동. 3·1운동 당시 청도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5월 초순에 걸쳐 모두 7회의 크고 작은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관공서 습격, 일본 경찰 구타, 일본인과의 충돌, 자위회 공격 등 점차 격렬한 무력시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청도군 운문면에서는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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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설립된 계몽 운동 단체. 1906년 4월에 설립된 대한 자강회가 1907년 8월에 강제 해산되고, 이어서 11월 대한 협회가 설립되었다. 1908년 3월 서울에서 교남 교육회가 설립된 후 청도 출신의 이상요(李相堯)·박병현(朴秉鉉)·박구현(朴龜鉉)·예중기(芮重基)·박순영(朴淳永) 등이 참여함으로써 청도 지역에 계몽사상의 보급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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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에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홍재범이 워싱턴 회의 독립 청원 및 대한민국 임시 정부 독립 공채 모집에 연루된 사건. 1921년 11월 이승만이 워싱턴에서 열린 태평양 평화 회의에 한국 문제를 상정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비롯한 국내외의 독립운동 세력이 후원하였다. 당시 한국 대표단은 한국 문제를 의제에 포함시켜 줄 것을 간청하는 진정서와 임시 정부의 독립 요구서,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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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윤병권이 1924년 유림단의 군자금 모집에 연루된 사건. 1920년대 청도 지역에서 발생하였던 독립 운동 관련 사건은 1921년 12월 신민사(新民社) 사건과 1925년 6월 다물단(多勿團) 사건 등이 있다. 그 외에 이정희(李庭禧)[매전면]는 1922년 12월 조선 독립 운동 후원 의용단(朝鮮獨立運動後援義勇團)의 군자금 모집 사건, 김인제(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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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운동 단체. 1920년 7월에 청도 청년회가 설립된 이후 1923년 성현 청년회(省峴 靑年會), 1924년 풍각 수양단(豊角 修養團) 등이 조직되었다. 1925년 11월 25일에 청도 청년회는 추계 정기 대회에서 혁신을 표방하고, 청년 운동의 활성화에 나서자 새로운 청년회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1926년 유천 청년회(楡川 靑年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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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5월 7일에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에서 일본인을 구타 응징한 의거. 3·1 운동 당시 경상북도 청도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5월 초순에 걸쳐 모두 7회의 크고 작은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일본인의 행위에 분개한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의 이종학 등이 일본인을 구타하고, 응징하는 의거가 일어났다. 1919년 3월 1일 만세 시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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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경상북도 청도군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948년 8월과 9월에 이루어진 남북한 단독 정부 수립은 한반도 분단을 공식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내외적으로 조성된 중국 대륙 공산화, 주한 미군 철수, 애치슨 선언, 국군의 국방력 열세와 남한 내 남로당의 불법화로 인한 붕괴, 정치·사회·경제적 혼란 등 북한에 유리한 환경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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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도 출신의 의병. 윤만파는 조선 말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孔岩里)에서 출생하였다. 윤만파는 정미의병 시기에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거느린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청도군 운문면을 중심으로 하여 경주군 산내면 일원과 울산·경산 등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고종이 강제 퇴위를 당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전국에서 의병들이 나라를 지키고자 떨쳐 일어났는데, 이들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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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병림은 1898년(광무 2)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孔岩里)에서 출생하여 1923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전개된 운문면 만세 운동은 문명 학교(文明學校) 졸업생 및 교사들이 주동하였다. 당시 문명 학교 졸업생 김상구(金相久)와 김종태(金鍾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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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병일은 1898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孔巖里) 735번지에서 출생하여 1974년 사망하였다. 1924년 1월 중국 북경에서 조직된 다물단(多勿團)에 가입하고,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坪). 아버지는 윤상렴(尹相濂)이다. 윤병일(尹炳馹)[1898∼1974]의 아버지 윤상렴(尹相濂)은 향리에서 한문을 공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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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 운동가. 윤병채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707번지에 출생하였다. 1919년 3·1 운동 때 운문면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고, 1924년 1월, 다물단의 단원 서동일(徐東日)에게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坪) 충경공파. 윤병일(尹炳馹)의 동생이다. 1905년부터 1915년까지 아버지 성균관 진사 윤상일(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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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봉갑은 1924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書院里) 90번지에서 출생하여 1982년 사망하였다. 1943년 일제에게 강제 징집되었다가 탈출하여 1945년 중경 대한민국 임시 정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警衛隊)에 배속되어 활동하였다. 윤봉갑(尹奉甲)[1924∼1982]은 1943년 10월 일제에게 강제로 징집되어 중국 파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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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영섭은 1865년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동 746번지에서 출생하여 1946년 사망하였다. 1924년 1월 다물단(多勿團)의 단원 서동일(徐東日)에게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坪) 충경공파. 아버지는 윤익모(尹益模), 어머니는 이필향(李必香)이다. 윤병채(尹炳采)의 스승으로, 예안 군수를 역임하였다. 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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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치언은 청도 출신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도시찰 부장(道視察部長)으로 국내로 특파되어 진주 청년 친목회(晉州靑年親睦會) 회원들과 경남 일원에서 제2의 만세 운동을 도모하다가 체포되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도시찰 부장 윤치언(尹致彦)[1892∼?]은 1920년 9월 20일경 국내로 특파되어 진주 청년 친목회 회원들과 경남 일원에서 제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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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서 1911년 사이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의병의 역사에 있어서 대표적인 것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양란 의병과 대한 제국기의 의병이다. 대한 제국 시기 의병은 1895년부터 1896년까지의 제1차 의병 전쟁[전기 의병, 을미의병]과 1905년부터 1910년까지의 제2차 의병 전쟁[후기 의병, 을사의병과 정미의병]으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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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결성된 사회 운동 단체. 의우단은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한 단체로 일제 강점기에 청도 지역 사회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27년 신간회 청도 지회를 설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과학적 교양의 수립과 ‘새로운 사회 건설’을 지향하고, 사상운동 단체 및 실제 운동 단체를 절대적으로 옹호함을 설립 목적으로 하였다. 1924년 8월 도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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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윤은 1898년(광무 2)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태어나 1938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30일 대구 덕산 시장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기윤(李起胤)[1898∼1938]은 1919년 당시 달성군(達城郡) 공산면(公山面) 도학동(道鶴洞)에 있는 동화사(桐華寺) 지방 학림(地方學林)의 학생이었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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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길우는 1925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출생하여 1945년 사망하였다. 이길우는 1941년 항일 비밀 결사인 동진회(東進會)를 조직하고 총무로 활동하였다.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일제의 폭압 정치와 대륙 침략전의 전시 체제가 한층 고조되고 있었다. 이에 1941년 1월 27일 청도읍 유호리의 이길우를 비롯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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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만희는 1900년(광무 4)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巨淵里)에서 출생하여 1954년 사망하였다. 1919년 4월 20일 청도읍 거연리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전국 각지로 확산되어 가는 것을 접한 단산 서당(丹山書堂)의 학생 이승옥은 3월 31일 자기 집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그 위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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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무수[1887∼1943]는 1887년(고종 24)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출생하여 1943년 사망하였다. 1919년 5월 7일 청도읍 유호리 일본인 구타 의거에 참여하였다. 1919년 5월 7일 대성면[현 청도읍] 유호리 김달선(金達先)의 집에 머물던 3인의 일본인 충전작태(充田作太)·산구호웅(山口虎雄)·수야희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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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학은 1925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 25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1년 항일 비밀 결사인 동진회(東進會)에 가담하여 농민회와 소년 독성회를 조직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상학(李相鶴)[1925∼?]은 1941년 1월 27일 음력설을 맞이하여 청도군 청도면 유호동 출신의 20대 청년 이형우(李亨雨)[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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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승옥은 1900년(광무 4)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巨淵里)에서 출생하여 1983년 사망하였다. 1919년 4월 20일 청도읍 거연리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21년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군자금을 송부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승옥(李承玉)[1900∼1983]은 단산 서당(丹山書堂)의 학생으로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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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환[1899∼1946]은 1899년(광무 3)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孔岩里)에서 출생하여 1946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전개된 운문면 만세 운동은 문명 학교(文明學校) 졸업생 및 교사들이 주동하였다. 당시 문명 학교 졸업생 김상구(金相久)는 김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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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출신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한 군인. 이인호는 1957년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65년 해병대 정보 장교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작전을 수행하던 중, 적군이 중대원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것을 보고 부하들을 위해 몸으로 수류탄을 덮어 전사하였다. 이인호(李仁浩)[1931∼1966]는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에서 출생하여, 1953년 3월 대구 대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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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희는 1881년(고종 18)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梅田面) 명대(明臺)에서 출생하여 1955년 사망하였다. 1915년 광복회 고문, 1921년 조선 독립 후원 의용단 참여 등 광범위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정희(李庭禧)[1881∼1955]는 대구 광명 학교(光明學校)에서 신학을 수학하였으며, 1909년 대구에서 박민동(朴民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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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악은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梅田面) 장연리(長淵里) 366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1년 대구 사범학교 재학 중 비밀 결사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고 민족 독립의 역량을 확대시켜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였다. 본관은 철성(鐵城). 1937년 대구 사범학교에 입학한 이종악(李鍾岳)[1923∼?]은 1941년 2월 15일에 최태석·권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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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학[1879∼1943]은 1879년(고종 16)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출생하여 1943년 사망하였다. 1919년 5월 7일 청도읍 유호리 일본인 구타 의거에 참여하였다. 1919년 5월 7일 대성면[현 청도읍] 유호리 김달선(金達先)의 집에 머물던 3인의 일본인 충전작태(充田作太)·산구호웅(山口虎雄)·수야희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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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2월 경상북도 청도군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일어난 남한 단선 단정 반대 총파업 사건. 미군정에 의해 불법화된 남로당과 민주주의 민족 전선은 총선 일정이 발표되자 단독 선거와 단독 정부를 반대하며 2월 7일을 기해 전국적인 대규모 파업을 일으켰다. 이 파업 중 일부가 과격화되어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2·7 사건은 ‘2·7 사건’, ‘2·7 파업’, ‘2·7 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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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경상북도 청도군 고수동 출신의 박근이, 전팔용, 추진구가 계획한 만주 파견 일본 군용 열차 전복 기도 사건.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은 의병 항쟁에서부터 시작해 자정순국(自靖殉國), 3·1 운동, 군자금(軍資金) 모집, 사회주의 운동, 의열(義烈) 투쟁, 광복군 투쟁, 학생 운동까지 광복을 맞는 순간까지 쉼 없이 전개되었다. 경상북도 청도군에서도 만세 운동, 군자금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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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역사. 일제 강점기는 일반적으로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를 말한다. 물론 1905년 통감부 설치 이후 일본의 대한 제국에 대한 보호 통치도 사실상 식민 지배와 다름없다고 보고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 지배 기간을 40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1905년부터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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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장득원은 1897년(광무 1)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천리(楡川里)에서 거주하다가 1973년 사망하였다. 정읍을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 결사인 신인 동맹(神人同盟)에서 활동하였다. 장득원(張得遠)[1897∼1973]은 1938년 4월부터 정읍을 활동 무대로 하여 조직된 신인 동맹에 가담하여, 종교적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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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유학자. 장화식은 회산(晦山) 반동락(潘東雒)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김흥락(金興洛)·이종기(李種杞) 등을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았다. 1922년 경성 유림 총부(京城儒林總部)에서 강사로 추천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오직 학문 연구에만 열중하였다.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효중(孝重), 호는 복암(復菴). 아버지는 장하수(蔣夏秀)이며, 어머니는 거제 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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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팔룡은 1911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高樹里)에서 출생하여 1963년 사망하였다. 전팔룡은 1931년 11월 19일 군용 열차 전복 의거에 참여하였다. 전팔룡(全八龍)[1911∼1963]은 본적이 청도군 각남면(角南面) 화동(華洞) 358번지이며, 주소는 청도군 대성면 고수동 384번지로, 김기근(金基根)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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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서 빨치산에 항거한 반공 투사. 정두표는 1949년 울주군 길천 초등학교[제20회]를 졸업했으며 육군 헌병대를 제대하였다. 그 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서 빨치산에 항거하다가 순국하였다. 본관은 동래(東萊). 1935년 경상남도 울주군 상북면 산전리 정판수(鄭判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정두표(鄭斗杓)[1935∼1967]는 육군 헌병으로 제대하여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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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농민 운동 단체. 청도 지역에서 1920년대 전반기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단체는 1921년 1월 조직된 삼군 소작인 동맹회(三郡 小作人 同盟會)와 1922년 봄에 조직된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농사 개량 조합, 그리고 1924년 3월 조직된 풍각 소작 조합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농민 단체들은 1920년대 전반기 소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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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활동한 농민 운동 단체.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1920년대 전반기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단체는 1921년 1월 조직되는 삼군 소작인 동맹회(三郡 小作人 同盟會)와 1922년 봄에 조직된 청도군 풍각면 농사 개량 조합, 그리고 1924년 3월에 조직된 풍각 소작 조합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농민 단체들은 1920년대 전반기 소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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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이정희가 조선 독립운동 후원 의용단의 군자금 모집에 연루된 사건. 1920년대 청도 지역에서 발생하였던 독립 운동 관련 사건은 1921년 12월 신민사(新民社) 사건과 1925년 6월 다물단(多勿團) 사건 등이 있다. 그 외에 이정희(李庭禧)[매전면]는 1922년 12월 조선 독립 운동 후원 의용단(朝鮮獨立運動後援義勇團)의 군자금 모집 사건, 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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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부터 1948년까지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했던 우익 청년 단체. 조선 민족 청년단은 1946년 10월에 이범석이 ‘국가 지상, 민족 지상’을 표방하며 민족정신의 전통을 계승할 청년 운동의 모체로서 결성한 청년 운동 단체이다. 강령인 단지 삼칙(團旨 三則)에는 “① 우리는 민족정신을 환기하여 민족 지상·국가 지상의 이념 하에 청년의 사명을 다할 것을 기한다. ②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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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차상은 1898년(광무 2)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청도읍(淸道邑) 유호리(楡湖里)에서 출생하여 1995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24년 김진효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자금 모집에 관여하였고, 1941년 동진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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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일어났던 청년 중심의 사회 운동. 3·1 운동 이후 대중의 힘을 효과적으로 결집하고 항일 역량을 지속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조직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1920년부터 각 지역에 청년회가 조직되어 계몽적인 성격을 가진 실력 양성 운동 및 문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청도 지역에도 1920년 들어 청년 운동 단체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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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후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좌익 청년 운동 단체. 1945년 8·15 해방 후 미군이 진주하는 10월까지 약 2개월간 청도 지역의 치안은 매우 불안했다. 청도 청년 동맹은 과도기의 질서 유지와 치안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청도 민주 동맹은 조선의 진정한 민주국가 건설의 강력한 추진력이 되고 세계의 모든 진보적인 청년층과 협력해서 세계 평화 수립에 이바지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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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소년 운동 단체. 1919년 조직된 안변 소년회와 왜관 소년회는 동화 읽기나 학습을 목적으로 한 최초의 소년 운동 단체였다. 1920년 조직된 진주 소년회는 20세 이하의 학생들로,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만세 운동을 계획하여 소년 운동계에 큰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면서 전국 각처에서 소년 운동 단체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소파 방정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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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농민 운동 단체.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1920년대 전반기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단체는 1921년 1월 조직된 삼군 소작인 동맹회(三郡 小作人 同盟會)와 1922년 봄에 조직된 풍각면 농사 개량 조합, 그리고 1924년 3월 조직된 풍각 소작 조합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농민 단체들은 1920년대 전반기 소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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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농민 운동 단체. 청도 지역에서 1920년대 전반기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단체는 1921년 1월 조직된 삼군 소작인 동맹회(三郡 小作人 同盟會)와 1922년 봄에 조직된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농사 개량 조합, 그리고 1924년 3월에 조직된 풍각 소작 조합 등이 있다. 이러한 농민 단체들은 1920년대 전반기 소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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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운동 단체. 1924년에 결성된 조선 청년 총동맹(朝鮮 靑年 總同盟)의 혁신 총회 이후, 청도 청년회는 1925년 11월 25일에 개최된 추계 정기 대회에서 회장제를 집행 위원회제로 바꾸면서 혁신을 표방하고, 청년 운동의 활성화에 나섰다. 그 결과 1926년부터 청도 지역에서는 유천 청년회(楡川 靑年會)와 풍각 청년회(豊角 靑年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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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결성된 청년 운동 단체. 청도 지역의 청년 운동 단체는 1920년에 들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1920년 7월 청도 청년회가 설립된 이후 1923년 성현 청년회(省峴 靑年會), 1924년 풍각 수양단(豊角 修養團), 1926년 유천 청년회(楡川 靑年會), 1927년 풍각 청년회(豊角 靑年會)·대성 청년회(大城靑年會)·풍각 기독교 청년회(豊角 基督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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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치안을 담당한 건국 준비 위원회 산하 단체. 청도 치안대는 1945년 해방 직후 과도기 청도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1945년 8월 20일에 청도군 건국 준비 위원회가 결성될 당시 치안대가 설치되어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였다. 10월 13일에 미군이 진주하여 경찰력을 복구시켜 치안권을 이양하자 치안대의 활동은 사실상 종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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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4일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에서 계획된 만세 시위운동. 3·1 운동 당시 경상북도 청도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5월 초순에 걸쳐 모두 7회의 크고 작은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관공서 습격, 일본 경찰 구타, 일본인과의 충돌, 자위회 공격 등 점차 격렬한 무력시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경상북도 청도군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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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성희는 1891년(고종 28)에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孔岩里)에서 출생하여 1978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전개된 운문면 만세 운동은 문명 학교(文明學校) 졸업생 및 교사들이 주동하였다. 당시 문명 학교 졸업생 김상구(金相久)와 김종태(金鍾台)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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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술근은 1896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巨淵里)에서 출생하여 1978년 사망하였다. 1919년 4월 20일 청도읍 거연리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청도읍 거연리 만세 운동은 단산 서당(丹山書堂)의 학생이었던 이승옥에 의해 비롯되었다. 이승옥은 전국 각지로 만세 운동이 확산되어 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19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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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운구는 1885년(고종 22)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에서 출생하여 1942년 사망하였다. 1930년대 만주에서 조선 혁명군 총사령 양세봉 휘하에서 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최운구(崔雲龜)[1885∼1942]는 1932년 3월 11일 조선 혁명군 중대장으로서 총사령 양세봉(梁世奉), 참모장 김학규(金學奎), 중대장 조화선(趙化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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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익생(崔翼生)[1916∼?]은 1916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칠엽리에서 출생하였다. 밀양 공립 농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2년 5월 L회[조선 민족 사상 연구회]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1932년 10월 야학당을 설치하여 활동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최익생은 밀양 공립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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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의 군인. 최종봉은 1926년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면에서 최치홍의 3남으로 출생하여 1951년 전사하였다. 1943년 다찌아라이[太刀洗] 육군 비행 학교 조종 과정을 졸업하였고 해방 이후 공군에서 근무하였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공군 비행단 대위로 참전하여 많은 공로를 세웠으며, 임무 수행 중 1951년 전사하였다. 최종봉(崔鍾奉)[192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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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태석은 1920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송원리(松院里) 173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1년 조직된 다혁당(茶革黨)에서 활동하였다. 최태석(崔泰碩)[1920∼1995]은 대구 사범학교에 재학 중인 1941년 2월 15일 밤 8시에 같은 학교 학생 문홍의(文洪義)·배학보(裴鶴甫)·최영백(崔榮百)·김효식(金孝植)·류흥수(柳興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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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태욱은 1892년(고종 29)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합천리(合川里)에서 출생하여 1984년 사망하였다. 1919년 백산 무역의 상무 취체역으로 있으면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정의부에 군자금을 송부하였으며, 1919년 기미 육영회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최태욱(崔泰旭)[1892∼1984]은 1903년까지 한학을 배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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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도 출신의 의병장. 최한룡은 1849년(헌종 15)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일곡리(日谷里)에서 출생하여 1917년 사망하였다. 1905년 을사 늑약에 분개하여 1906년 산남 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였으며, 1907년 7월 청도에서 창의하였다. 최한룡(崔翰龍)[1849∼1917]은 1905년 을사 늑약에 분개하여 1906년 4월 산남 의진에 참여하였다. 이후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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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의 의병장 최한룡이 작성한 의병 격문. 「최한룡 의병 격문(崔翰龍 義兵 檄文)」은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의 의병장 최한룡[1849∼1917]이 1907년 4월부터 1908년 1월에 다섯 차례에 걸쳐 발표한 격문으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고 국권 회복을 부르짖으며 국민들의 충성심과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 최한룡은 1907년 7월 창의하여 의병 활동을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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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추진구는 1909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高樹里)에서 출생하여 1974년 사망하였다. 1931년 11월 19일 군용 열차 전복 의거에 참여하였다. 추진구(秋振求)[1909∼1974]는 16세 무렵까지 집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남의 집 고용인으로 일하였으며, 22세가 되던 가을부터 청도 역전 앞에 있는 이영희 정미소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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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운동 단체. 청도 지역의 청년 운동 단체는 1920년에 들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1920년 7월 청도 청년회가 설립된 이후 1923년 성현 청년회(省峴 靑年會), 1924년 풍각 수양단(豊角 修養團), 1926년 유천 청년회(楡川 靑年會), 1927년 풍각 청년회(豊角 靑年會)·대성 청년회(大城 靑年會)·풍각 기독교 청년회(豊角 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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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에서 활동한 농민 운동 단체. 청도 지역에서 1920년대 전반기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단체는 1921년 1월에 조직된 삼군 소작인 동맹회(三郡 小作人 同盟會)와 1922년 봄에 조직된 풍각면 농사 개량 조합, 그리고 1924년 3월에 조직된 풍각 소작 조합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농민 단체들은 1920년대 전반기 소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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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운동 단체. 청도 지역의 청년 운동 단체는 1920년에 이후에 생기기 시작했다. 1920년 7월 청도 청년회가 설립된 이후 1923년 성현 청년회(省峴靑年會), 1924년 풍각 수양단(豊角修養團), 1926년 유천 청년회(楡川靑年會), 1927년 풍각 청년회(豊角靑年會)·대성 청년회(大城靑年會)·풍각 기독교 청년회(豊角基督敎靑年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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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에서 활동한 농민 운동 단체. 청도 지역에서 1920년대 전반기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단체는 1921년 1월에 조직된 삼군 소작인 동맹회(三郡 小作人 同盟會)와 1922년 봄에 조직된 풍각면 농사 개량 조합, 그리고 1924년 3월에 조직된 풍각 소작 조합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농민 단체들은 1920년대 전반기 소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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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곤도는 1884년(고종 21)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출생하여 1951년 사망하였다. 1919년 5월 7일 청도읍 일본인 구타 의거에 참여하였다. 1919년 5월 7일 대성면[현 청도읍] 유호리 김달선(金達先)의 집에 머물던 일본인 세 사람 충전작태(充田作太)·산구호웅(山口虎雄)·수야희삼랑(水野喜三郞)은 밖에서 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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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남귤은 1923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 206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41년 항일 비밀 결사인 동진회(東進會)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945년 1월 8일 부산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허남귤(許南橘)[1923∼1945]은 1941년 1월 27일 이길우를 비롯한 20대 청년들과 함께 박상노(朴相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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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경상북도 청도군의 역사. 한국사에서 시대 구분상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현대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부터 남북한 분단, 6·25 전쟁, 4·19 혁명, 5·16 군사 정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겪으며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성숙을 가져왔다. 1945년 8·15 해방 직후 청도군에는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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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의 조선 형평사 청도 지부가 펼친 백정의 신분 해방 운동. 형평 운동(衡平運動)은 1923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조직된 조선 형평사(朝鮮衡平社)가 전개한 백정(白丁)의 신분 해방 운동이다. 경상북도 청도군에서는 1923년 경 형평사 청도 지부(淸道支部)와 풍각 지부(豊角支部)가 설립되어 활동했다. 백정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에 의해 법제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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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일어난 유림의 호적 거부 운동. 일제의 한국 병합 이후 자결 순국(自決殉國)과 일제의 통치에 대한 거부가 전국적으로 결행되었다. 청도 지역의 경우 자결 순국하거나 납세 거부, 은사금 거절 등으로 항거하고 있는 사례는 찾아 볼 수 없으나, 덕천(悳泉) 성기운(成璣運)과 덕암(德岩) 김달(金達) 등의 보수적인 유림들이 호적 거부(戶籍拒否)를 통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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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1년 11월부터 워싱턴에서 열리는 태평양 평화 회의에 전국의 13도 지역 대표 367명이 연명 날인한 「한국 인민 치태평양회의서(韓國人民致太平洋會議書)」를 보냈는데, 홍재범은 이때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워싱턴 회의가 개최된 이후 한국 대표단은 한국 문제를 의제에 포함시켜 줄 것을 간청하는 진정서(陳情書)와 임시 정부의 독립 요구서(獨立要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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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주일은 1876년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梧津里)에서 출생하여 1927년 사망하였다. 1908년 달성 친목회, 1915년 조선 국권 회복단,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였고, 1921년 교남 학교(嶠南學校)를 설립하고 항일 사상을 고취하였다.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해동(海東). 홍주일(洪宙一)[1876∼1927]은 31세에 일본 규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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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해성은 1895년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에서 출생하여 1949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본관은 남양(南陽). 홍해성(洪海性)[1895∼1949]은 1919년 3월 18일 운문면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운문면 만세 운동은 3월 1일 광무 황제(光武皇帝)의 국장을 참배하기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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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3월 9일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사리 경비원 및 주민들이 빨치산 의해 보복 살해당한 사건. 경상북도 청도군은 험준한 지형적 원인으로 6·25 전쟁 이전부터 빨치산 활동이 두드러진 지역이었다. 화악산(華岳山)은 일명 둔덕산(屯德山)이라 불리며, 청도 산서 지방에는 비슬산을 위시해여 화악산, 남산, 용각산, 철마산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화악산도 이런 지리적 영향으로 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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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3일에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송금리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운동. 3·1 운동 당시 청도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5월 초순에 걸쳐 모두 7회의 크고 작은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관공서 습격, 일본 경찰 구타, 일본인과의 충돌, 자위회 공격 등을 하였고, 점차 격렬한 무력시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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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5일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서 계획된 만세 시위운동. 3·1운동 당시 청도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5월 초순에 걸쳐 모두 7회의 크고 작은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관공서 습격, 일본 경찰 구타, 일본인과의 충돌, 자위회 공격 등 점차 격렬한 무력시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화양읍 만세 운동은 19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