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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091
한자 金道坤
이칭/별칭 김가옥(金可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0년 10월 25일연표보기 - 김도곤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7일 - 김도곤 청도읍 일본인 구타 의거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7월 10일 - 김도곤 대구 지방 법원에서 태형 90도 언도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47년 11월 13일연표보기 - 김도곤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김도곤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김도곤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지도보기
활동지 김도곤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도곤(金道坤)[1890-1947]은 1890년(고종 27)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태어나 1947년 사망하였다. 1919년 5월 7일 청도읍 일본인 구타 의거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5월 7일 대성면[현 청도읍] 유호리 김달선(金達先)의 집에 머물던 3인의 일본인 충전작태(充田作太)·산구호웅(山口虎雄)·수야희삼랑(水野喜三郞)은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독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이종현(李鍾鉉)이라는 아이의 입술을 베어 버렸다. 이에 격분한 이종현의 형 이종학(李鍾學)김영곤(金永坤) 등 마을 청년 20여 명은 일본인을 구타하여 1개월 내지 12일의 치료를 요하는 창상을 입혔다. 일제는 이 의거를 3·1 만세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최후의 폭동’으로 규정하였다.

일본인 구타 의거에 참여한 4인은 소요 상해 건조물 손괴로 기소되어 대구 지방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김도곤은 1919년 7월 10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태형 90도를 받았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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