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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벌 부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503
한자 -部隊
이칭/별칭 땡삐 부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8년 이후 - 땅벌 부대 조직
최초 설립지 땅벌 부대 - 경상북도 청도군
성격 군부대

[정의]

광복 이후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었던 빨치산 토벌 부대.

[개설]

땅벌 부대 소속대원들은 주로 과거 좌익·공비 출신들로 구성된 부대이다. 2008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면담 보고서에서는 이 부대를 포항에서 온 사찰 유격대로 진술하고 있으며, 『청도 군지』에는 김천에서 파견된 부대로 기록되어 있다.

[설립 목적]

1948년 남한 단독 선거 저지를 위한 남로당 주도의 2·7 사건 발생 후 미군정에 의해 남한의 모든 좌익 세력은 불법화되어 지하 세력화되었다. 그 결과 각 지역에서는 남로당 방침에 따라 무장 게릴라 조직인 남조선 인민 유격대가 전국적으로 5개 유격 전구로 편성되었다. 그 중 영남 유격 지구에 편성된 청도군은 운문산을 주요 거점으로 삼아 빨치산 활동이 왕성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대구 주둔 제3 여단 제6 연대를 비롯한 여러 부대가 청도군에 파견되어 토벌 임무를 전개했는데, 특히 과거 좌익·공비 출신들로 구성된 땅벌 부대빨치산 토벌 목적으로 설립되어 크게 활약한 부대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해방 이후 청도 경찰서에서는 이종찬 경위를 대장으로 한 사찰 유격대, 일명 을부대(乙部隊)를 운문사에 파견하여 운문산오진리 웅기산 일대 빨치산에 대한 토벌 작전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을 부대 요원만으로는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여 활동하고 있던 공비를 토벌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전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땅벌 부대 대장 손수익은 김천 지역에서 빨치산 간부로 활동하다 1개 소대 병력과 경찰에 투항한 인물이었다. 김천 경찰서에서 일정한 기간 사상 전향 교육을 마친 후 전향자들을 주축으로 토벌대를 별도로 편성한 다음 빨치산 토벌 작전을 시험해 본 결과 성과가 좋자, 그 후 청도 경찰서로 파견·배속되었다.

땅벌 부대는 다른 군경과 협동하여 청도 지역, 특히 운문산 일대 빨치산 토벌에 투입되었다. 1950년 11월 중순경 을부대와 함께 빨치산 근거지 중 한 곳인 가지산 학소대 골짜기를 포위 공격하여 운문산에서 빨치산 대장으로 활동하던 박 모 등 7명을 생포하였다. 그 후 잔당들은 오진리 웅기산 빨치산과 제휴하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다가 1952년 국군 제 875 부대가 운문사에 주둔해 공비 토벌 작전을 시작하면서부터 1953년에 이르러 완전히 소탕되었다.

1954년 9월 10일에는 운문면 방음리 묵방골에서 웅기산 빨치산 대장 안두욱을 생포한 뒤 땅벌 부대는 안두욱을 이용한 자수 공작을 전개하여 웅기산의 잔존 빨치산 두 명을 귀순시켰다.

[의의와 평가]

땅벌 부대는 과거 빨치산 경험을 활용하여 편성된 부대로 운문산 일대를 비롯한 청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빨치산 토벌 및 섬멸에 많은 전과를 올리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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