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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122
한자 李武壽
이칭/별칭 이성수(李成守),이종호(李鍾護)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7년 11월 7일연표보기 - 이무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7일 - 이무수 청도읍 유호리 일본인 구타 의거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7월 10일 - 이무수 대구 지방 법원 태형 90도 언도
몰년 시기/일시 1943년 5월 3일연표보기 - 이무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이무수 대통령 표창
출생지 이무수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지도보기
활동지 이무수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청도읍 유호리 일본인 구타 의거 참여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무수[1887∼1943]는 1887년(고종 24)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출생하여 1943년 사망하였다. 1919년 5월 7일 청도읍 유호리 일본인 구타 의거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5월 7일 대성면[현 청도읍] 유호리 김달선(金達先)의 집에 머물던 3인의 일본인 충전작태(充田作太)·산구호웅(山口虎雄)·수야희삼랑(水野喜三郞)은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독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이종현(李鍾鉉)이라는 아이의 입술을 베어 버렸다. 이에 격분한 이종현의 형 이종학(李鍾學)이무수(李武壽)·이규봉(李圭鳳)·허곤도(許坤道)·김영곤(金永坤)·김도곤(金道坤) 등 마을 청년 20여 명과 함께 일본인 3명을 구타하여 1개월 내지 12일의 치료를 요하는 창상을 입혔다. 일제는 이 의거를 3·1 만세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최후의 폭동’으로 규정하였다.

일본인 구타 의거로 체포된 이종학 외 4인은 소요 상해 건조물 손괴로 기소되어 대구 지방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이무수는 1919년 7월 10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태형(笞刑) 90도를 받았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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