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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109
한자 朴水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9년연표보기 - 박수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 6월 - 박수길 경상남도 삼가군 일대에서 의병 30여 명을 이끌고 군자금 모집
활동 시기/일시 1908년 8월 1일 - 박수길 진주에서 김팔룡 등과 함께 숙박하던 중 체포
몰년 시기/일시 1908년 10월 10일연표보기 - 박수길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3년 - 박수길 애국장 추서
출생지 박수길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거주|이주지 박수길 거주지 - 경상북도 청도군
활동지 박수길 활동지 - 경상남도 삼가군과 진주시 일원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의병장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의병.

[개설]

박수길은 1879년(고종 16)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출생하여 경남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1908년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일제는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광무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 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여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 항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박수길(朴水吉)[1879∼1908]은 1908년 6월 경상남도 삼가군[지금의 합천군 삼가면] 중촌면(中村面)과 덕지면(德旨面) 일대에서 김팔룡(金八龍) 등 3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활동하면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1908년 8월 1일 진주의 성내 2동에서 김팔룡 등과 함께 숙박하던 중 일본 순사 3명과 한인 순사 4명에 의해 체포되었다. 박수길은 진주 지방 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아 1908년 10월 10일 대구 복심 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3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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