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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만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086
한자 尹萬波
이칭/별칭 만파(萬波),윤정의(尹政儀)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8년 4월 3일 - 윤만파 경주군 산내면에서 창의하여 활동함
활동 시기/일시 1908년 4월 8일 - 윤만파 울산군 두서면에서 총기 7정을 약탈하여 은닉
출생지 윤만파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동지도보기
활동지 윤만파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동
활동지 윤만파 활동지 - 경상북도 경주군 산내면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정미 의병

[정의]

개항기 청도 출신의 의병.

[개설]

윤만파는 조선 말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孔岩里)에서 출생하였다. 윤만파는 정미의병 시기에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거느린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청도군 운문면을 중심으로 하여 경주군 산내면 일원과 울산·경산 등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활동 사항]

고종이 강제 퇴위를 당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전국에서 의병들이 나라를 지키고자 떨쳐 일어났는데, 이들을 정미의병이라고 불렀다. 청도 지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윤만파(尹萬波)[?∼?]와 최한룡(崔翰龍)은 1908년경 청도 일원에서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이끌고 활동하였으며, 그 외 박용운(朴龍雲)박문선(朴文善)은 산남 의진에 참여하여 청도군 운문면을 중심으로 경주·울산·경산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일본군 토벌대의 보고에 의하면, 의병을 이끌고 있는 의병장이 강원도에서 들어왔다고도 하나 대체로 청도 출신의 의병장 윤만파와 그의 중군장 권달오(權達五)·소모장 구성립(具成立)·유진삼(兪進三) 등을 비롯하여, 경산 출신의 의병 대장 권병호(權炳瑚), 산남 의진의 중군장 박용운(朴龍運) 등이 이끄는 소규모 의병 부대가 청도군 운문면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윤만파와 권병호가 거느린 의병 부대는 청도군 운문면을 중심으로 경주·울산·경산 일원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윤만파는 1908년 4월 3일[음력 3월 3일]경 경주군 산내면에서 창의하였으나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흩어졌다. 그 후 경주군 산내면 일원에서 청도 출신의 소모장 구성립과 밀양 출신의 종사 유진삼 등 의병 50여 명을 거느리고 활동하였다. 이들은 4월 8일 의병 수십 명을 이끌고 울산군 두서면(斗西面)에서 총기 7정을 약탈하여 경주군 산내면 산저리(山底里)에 은닉하였다. 4월 9일에는 소모장 구성립공암리 윤감찰(尹監察)에게 군수전 500량의 출금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구성립과 종사(從事) 유진삼은 4월 9일 경산군 남천면(南川面) 협석동(俠石洞)[현재 신석리] 출신의 의병장 권병호(權炳瑚)와 함께 청도군 운문면에서 대구 경찰서 파견 제1 변장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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