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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013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대웅

[청도군의 새마을 운동 전개 과정]

새마을 운동은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으나 1950년대부터 ‘마을 가꾸기 사업’·‘잘살기 운동’ 등이 청도군에서 시작되었다. 청도군 화양면 합천리의 장복주는 6·25 전쟁 이후 귀향하여 1955년부터 합천리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영농 개선 운동을 전개하였다.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의 김봉영은 1957년부터 신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새마을 가꾸기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홍영기는 1960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여 귀향한 뒤 국민 재건 운동 지도자를 자처하고 새 농촌 운동을 시작하였다.

1955년에서 1969년 사이 청도군에서는 다음과 같이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었다. 화양읍 합천리에서 1955년 자주 및 자립적인 농촌 생활 향상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1958년 농업 근대화와 농민 지식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1960년 농촌 계몽 사업과 영농 정보 교환을 하는 농촌 문화 사업이 실시되었다. 이후 1961년 도서 2,500권을 수집 및 구매하여 농촌 문고가 설치되었다. 1962년 과학 농업 교육 및 농민 조합 사무실이 건립되었다. 1963년에는 생활 개선 2개년 계획 수립 하에 부엌 개량 40호, 변소 개량, 우물 개량이 이루어졌다. 운문면 방음리에서는 1960∼1963년 사이 마을 생활 개선 사업이 이루어지고, 1964년 감나무와 밤나무, 포도나무 등 시범 농가 농공 단지를 조성하여 소득 증대 사업이 이루어졌다. 1965년에는 방음동 마을 전체를 무상으로 지붕 개량과 마을 진입로 확장 등을 진행하고 이와 함께 마을 가꾸기 사업이 이루어졌다.

1970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새마을 사업이 진행되면서 청도읍 경부 연선 단위 지역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운문면 방음리 지붕 개량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각남면 녹명리에서는 운경 회관이 완공되었다. 이 과정에서 새마을 운동 견학지로서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신도 마을 견학이 진행되었다. 1972년에는 운문면 방음리 새마을 사업장을 박정희 대통령이 시찰하였으며, 선진 마을로서 격찬을 받고, 새마을 농장 조성금 2,500만 원을 지원해 주었다. 1972년 운문면 방음리에 새마을 기념탑과 비가 세워졌다. 이후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까지 청도군 각 읍면에서는 마을 안길 공사와 하수구 개수, 빨래터 및 우물 설치, 마을길 넓히기, 마을 공동 재산 조성 및 마을 회관 건립 등이 이루어졌다.

[새마을 운동 발상지 신도 마을]

1970년 본격적으로 전개된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는 청도군 청도읍 신도 마을이다. 1969년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은 경상남도 수해 지역 시찰을 위해 전용 열차를 타고 부산 방면으로 가던 중 신도 마을의 주민들이 마을 안길과 제방을 복구하는 모습을 보고 열차에서 내려 신도 마을을 둘러보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하여 공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1970년 4월 22일 한해 대책 지방 장관 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마을을 우리 힘으로 새롭게 바꾸어 보자’는 새마을 운동을 제창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새마을 운동 발상지 논쟁]

2006년부터 청도군이 ‘새마을 발상지 띄우기’를 본격적으로 전개하자 2007년부터 청도군과 경상북도 포항시의 새마을 운동 발상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발단은 지금까지 30여 년간 새마을 운동 발상지로 국내외에서 공인받은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 1리에 대해 포항시가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가 ‘진짜 새마을 운동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청도군은 2008년 2월 『새마을 운동 발상지 고증 연구 조사 연구 용역 보고서』에서 “새마을 운동 발상지는 청도군 신도 마을임을 거듭 확인하였다.”라고 발표하였다. 이에 대하여 포항시는 “청도군의 이와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며,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는 포항시 북구 기계면 문성리”라는 반박 자료를 냈다. 이리하여 새마을 운동 발상지 논란은 청도군과 포항시를 중심으로 가열되었고, 각 언론의 보도가 연일 계속되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청도군과 포항시에 기념관을 동시에 건립한다는 주장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2009년 4월 14일 청도군 청도읍 신도 1리새마을 운동 발상지 청도 기념관이 건립되었고, 경상북도에서도 4월 9일 『경상북도 새마을 운동 37년사』를 간행하였다. 여기에서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는 ‘청도군 청도읍 신도 1리’로 발표되어 논쟁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단법인 포항시 새마을회 등은 경상북도를 상대로 명예 훼손 금지 등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였다. 2009년 9월 11일 대구 지법 민사 합의 20부에서는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였다. 청도군은 2009년 9월 15일 ‘새마을 운동 발상지 청도’라는 문구를 특허청에 상표 등록하였다.

[2000년 이후 이어지는 새마을 운동]

2000년 이후 청도군에서 진행되는 새마을 운동은 ‘잘살아 보자’라는 슬로건보다는 ‘함께 잘사는 공동체 만들기’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새마을 운동을 진행하는 청도군 지회에서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기 위한 목적으로 재활용품 수집을 통한 기금을 마련하여 소년 소녀 가장 및 독거노인을 돕고 있으며, 환경 정화 및 청결 활동을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새마을 운동 청도군 지회에서는 ‘숨은 자원 모으기’를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2003년 8월에는 전국 1위를 차지하였다. 청도군은 새마을 지도자 700여명 및 관내 주민, 관계 공무원 등 5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새봄맞이 대청소, 소하천 살리기 운동을 하는 동시에, 폐자원 581톤을 수거하여 1800만 원의 기금을 마련한 적이 있다.

2005년 청도군에서는 농촌 마을의 정보화라는 슬로건으로 새마을 운동 종합 평가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2005년 이후의 새마을 운동은 도시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컴퓨터 보급을 통해 농촌 사회의 정보화를 이루는 데 주력을 하였다. 이를 위하여 새마을 운동 청도군 지회에서는 새마을 지도자 대회를 거쳐 농촌 사회에 컴퓨터 교육 등을 통한 정보화에 도움을 주었다.

[새마을 운동 기념관과 세계화]

세계의 관심 속에 전개된 새마을 운동은 1970년부터 전국의 마을 지도자 1,000여 명이 견학하였으며, 2000년대 새마을 운동이 세계적인 성공 모델로 주목받으면서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연수생들이 방문하고 있다.

현재 새마을 운동은 러시아·베트남·필리핀을 비롯하여 중국·몽골·스리랑카·캄보디아·네팔·콩고 민주 공화국 등 저개발 국가에 새마을 운동을 보급하여 새마을 운동의 종주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새마을 운동 발상지 기념관 외국인 방문 현황을 보면, 2009년 5월 몽골 교류 협력단 16명과 2009년 7월 케냐·탄자니아 등 12개국 연수생 14명 등을 비롯하여 모잠비크·튀니지·인도·인도네시아·르완다·앙골라·수단·가나·과테말라·베트남 등에서 공무원 등의 연수단이 방문하였다. 2010년·2011년·2012년에도 세계 각처에서 지도자 및 연수단의 방문이 이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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