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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752
한자 金石文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집필자 최인표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돌, 금속 등에 새겨진 문자, 무늬, 그림 등의 총칭.

[개설]

금석문이란 비석, 종(鐘), 그릇, 솥 등에 새겨진 글자, 그림, 무늬 등을 말한다. 청도의 금석문은 금속에 새겨진 금문은 없고, 비석·바위 등에 문자를 새긴 새김글로 나눌 수 있다. 비석에는 기념비·선정비·유공비(有功碑)·공덕비·효열비·유허비·신도비 등이 있고, 새김글로는 시·지명·자연 경관 등을 표현하여 바위에 새긴 각석문이 있다. 청도의 대표적인 금석문으로는 청도 척화비(淸道 斥和碑), 청도 운문사 원응 국사비(淸道 雲門寺 圓應國師碑), 김극일 정려비(金克日 旌閭碑) 14의사 묘정비(十四義士 廟庭碑), 운문사 설송 대사비(雲門寺 雪松 大師碑), 오산리 표석비(梧山里 表石碑), 곽순 유허비(郭珣 遺墟碑) 등이 있다. 새김글로는 청도 남산 계곡을 따라 바위에 새겨진 것이 있으나 제작 시기, 경위, 내용 등을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다.

[변천]

청도군에 있는 금석문을 시대별로 고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로 나누어 개관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청도군 지역은 고대에 이서국이 위치하였고, 신라에 편입되었으나 금석문으로 현존하는 것은 없다. 청도군의 금석문으로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 된 것은 운문사 경내에 있는 청도 운문사 원응 국사비(淸道 雲門寺 圓應 國師碑)이다. 이 비석은 고려 인종의 명으로 1145년경에 건립한 것으로 비문은 윤언이가 지었고, 비문의 글씨는 대감 국사 탄연이 썼을 뿐만 아니라, 당시 고려 중기 불교계의 흐름을 알려주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의 금석문으로 임진왜란 전에 세워진 것으로는 김종직(金宗直)이 비문을 짓고 김좌명(金佐明)이 글씨를 쓰고, 여이징(呂爾徵)이 전액(篆額)한 김극일 정려비 정도이고, 대부분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이다. 내용적으로 보면 청도의 지방관을 역임한 사람들을 기리는 선정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학덕, 충열 등을 기리기 위한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대표적인 금석문으로는 밀양 박씨 가문 내 14의사의 충절을 기리는 14의사 묘정비, 용천사 승려들이 도로를 보수한 은공을 기리는 오산리 표석비, 박한주의 충절을 기리는 박한주 여표비(朴漢株 閭表碑), 운문사에 주석하였던 설송 대사의 행적을 적은 운문사 설송 대사비 등이 있고,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외세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하여 건립하게 한 청도 척화비(淸道 斥和碑)가 있다.

새김글은 대부분 제작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조선 후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으로 청도군 남산 계곡 일원에 있는 새김글이다. 한편 괘불을 걸었던 당간 지주에 새겨진 금석문으로 적천사 당간 주석(磧川寺 幢竿 柱石)의 새김글은 적천사 괘불의 조성과 관련되어 있어 미술사 연구에 도움을 준다.

[현황]

청도군 금석문의 보존 상태는 상당히 좋은 편이나 비각 등 보호 시설은 문화재로 지정되거나 문중에서 관리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없고, 대부분이 야외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이다. 또한 금석문의 내용을 설명하는 표지판도 대부분 설치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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