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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삼 근휼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731
한자 金應三勤恤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송길 8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채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09년연표보기 - 김응삼 근휼비 건립
보수|복원 시기/일시 1848년 - 김응삼 근휼비 중건
현 소재지 김응삼 근휼비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2-1지도보기
성격 송덕비
양식 원수(圓首)
관련 인물 김응삼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너비,두께) 86㎝[높이]|35㎝[너비]
소유자 청도군청
관리자 청도군청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에 있는 전 이방 김응삼의 근휼비.

[개설]

전 이방 김응삼(金應三)의 근휼비(勤恤碑)는 원래 1709년(숙종 35) 기축 10월에 건립했다. 연대가 오래되어 실전(失傳)의 염려가 있어, 원비(源碑)는 땅에 묻고 후손들이 1848년(헌종 14) 중건한 것으로 군내 향리 관련 유일한 선정비이다.

[건립 경위]

이방은 호장과 더불어 군현 향리를 대표하거나 군현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에 대한 감독·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김응삼이 이방으로 재임하던 당시, 지역에 흉년이 발생하자 구휼 행정을 원만히 총괄한 결과 그 은택을 입은 지역민들이 김응삼의 공덕을 칭송하고 기리기 위하여 근휼비를 세웠다.

[위치]

화양읍 동천리 2-1 삼거리에 있다. 비석이 위치한 화양읍 동천리는 조선 시대 김해 김씨들이 세거한 마을이며, 동헌의 동쪽에 자리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입비자(立碑者)인 김응삼은 김해 김씨 향리 가문 출신으로, 동헌과 인접한 동천리에 세거한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형태]

비석 양식은 원수(圓首) 형태이다. 전면에는 비명(碑銘)과 찬시(讚詩)를, 후면에는 중건한 내용과 간지(干支) 각석해 놓았다. 재질은 화강암이고 높이 86㎝, 너비 35㎝이다.

[금석문]

(전면)

전행 이방 김응삼 근휼민 은비(前行吏房金應三勤恤民隱碑)// 청간과욕(淸簡寡欲)/ 염결무사(廉潔無私)[맑고 간결하고 욕심을 적게 하셨으며/ 청렴결백하고 사사로움이 없으셨네.]

(후면)

영헌공이십세손 호강공십이세손야 본비 강희사십월년기축십월일립(英憲公二十世孫 胡剛公十二世孫也 本碑 康熙四十月年己丑十月日立)/ 재하천로방 연구박락 려기실전 순향론여종의 잉구개견 본비매우하(在下天路傍 秊久剝落 廬其失傳 循鄕論與宗議 仍舊改堅 本碑埋于下)/ 도광 이십월년 무신 중하 종현손 호장 우영(道光 二十月年 戊申 仲夏 從玄孫 戶長 禹瑛)[영헌공 20세손이며, 호강공 12세손이다. 본 비석은 강희 48년(1709년) 기축 10월에 세워졌다. 하천로 가에 있었는데 연대가 오래되어 떨어져 나가 실전될까 염려하여 향론과 종중의 의논에 따라 옛날 비석 그대로 새로운 비석으로 바꾸고 본 비석은 그 아래에 묻었다. 1848년(헌종 14) 무신 여름 종현손 호장 우영]

[현황]

별도의 비각(碑閣)과 안내판은 없지만 비석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청도군 내 향리 관련 비석으로 유일한 김응삼 근휼비는 19세기 향리들의 지역 내 영향력과 후손들이 조상 현양(顯揚)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비석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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