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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두 선정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732
한자 金載斗善政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508-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채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39년연표보기 - 김재두 선정비 건립
현 소재지 김재두 선정비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508-4지도보기
성격 선정비
양식 비좌개석(碑座蓋石)
관련 인물 김재두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너비,두께) 118㎝[높이]|43㎝[너비]
소유자 청도군청
관리자 청도군청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에 있는 찰방 김재두의 선정비.

[개설]

김재두(金載斗)는 본관은 영산, 자는 경칠(敬七), 호는 방촌(坊村)이다. 1794년(정조 18) 병인 2월에 영광에서 출생하였다. 1835년(헌종 1) 증광시(增廣試)에 급제(及制)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로 낭천 현감(狼川縣監), 성현도 찰방, 사간원 정언(司諫憲 正言),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 등을 지냈다. 김재두 선정비는 성현도 찰방으로 있을 때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건립 경위]

성현도 찰방(察訪)은 비록 청도 군수보다 품계는 낮았지만, 오히려 관할 지역은 더 넓었다. 성현도 찰방에게 직속된 관원에는 역리(驛吏) 35인, 사령(使令) 10인, 일수(日守) 7인, 노비 23인,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10필 등 규모가 상당하여 자연히 그 영향력이 청도 군수 못지않았다. 입비자(立碑者)인 김재두는 성현도 찰방으로 내임하여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역촌(驛村)의 구성원들이 선정을 기리고자 1839년(헌종 5) 8월 건립하였다.

[위치]

김재두 선정비가 세워진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는 조선 시대 성현도역이 운영되던 곳으로 현재 화양읍사무소 남성현 출장소에 있다.

[형태]

비석 양식은 농대석(籠臺石) 위에 비신을 세우고 가첨석을 얹은 비좌개석(碑座蓋石) 형태이다. 전면에는 비명(碑銘)과 찬시(讚詩)를, 측면에는 간지(干支)와 건립 관련자를 각석해 놓았다. 높이 118㎝, 너비 43㎝이고, 비석 재질은 화강암이다.

[금석문]

(전면)

찰방 김 후 재두 청덕 선정비(察訪金候載斗淸德善政碑)// 德被家絃(덕피가현)/ 惠洽野澤(혜흡야택)/ 來暮遽歸(래모거귀)/ 爰頌于石(원송우석)[덕은 집집마다 끼치고/ 은혜는 들판 못의 생물까지 미치네./ 부임하심이 늦었는데 급히 떠나시니/ 이에 돌에 새겨 칭송하노라.]

(측면)

도광 십구년 기해 팔월(道光 十九年 己亥 八月)// 이방 이현구(吏房 李鉉球)[1839년(헌종 5) 8월 이방 이현구가 건립]

[현황]

화양읍사무소 남성현 출장소 내에 별도의 비각(碑閣)은 없이 세워져 있으며, 비석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이 비석 외에도 청도군 내에 있는 찰방의 선정비는 화양읍 도주관에 ‘찰방 홍 후 휘 찬섭 애민 선정비(察訪洪侯諱贊爕愛民善政碑)’, ‘찰방 최인휴 애민 선정비(察訪崔麟休愛民善政碑)’, ‘찰방 김 공 수집 청덕비(察訪金公壽鏶淸德碑)’ 등 3기가 더 있다.

[의의와 평가]

찰방 김재두 선정비는 조선 시대 청도 지역이 교통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한 성현도역의 역사와 존재를 알려주는 중요한 비석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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