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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718
한자 迂拙齋朴漢株閭表碑-碑閣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 178-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인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92년연표보기 - 오졸재 박한주 여표비 및 비각 설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95년 1월 14일연표보기 - 오졸재 박한주 여표비 및 비각 경상북도 기념물 제104호에 지정
현 소재지 오졸재 박한주 여표비 및 비각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 178-1지도보기
성격 비석|비각
양식 비 몸체와 비갓|비 받침을 갖춘 비석|팔작 기와집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밀양 박씨 행산공파 흑석 문중
관리자 밀양 박씨 행산공파 흑석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기념물 제104호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과 비각.

[개설]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 무오사화(戊午士禍)·갑자사화(甲子士禍)에 희생된 박한주(朴漢柱)[?∼1504]의 여표비(閭表碑)이다. 박한주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천지(天支), 호는 오졸재(迕拙齋)이다.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에서 출생하여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연산군의 정치를 간하다 무오사화 때 평안도 벽동에 유배되었으며,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죽음을 당하였다. 중종반정 후 도승지에 추증되었으며, 대구 남강 서원과 함안 덕암 서원에 제향(祭享)되었다. 문집인 『오졸재집(迂拙齋集)』이 있다.

[위치]

풍각면 차산리 차산 마을의 폐교된 남부 초등학교 뒤쪽 언덕에 있다. 풍각면사무소에서 송설로와 봉기로를 따라 가다가 풍각 육교에서 차산리로 향하면 중마을이 나온다. 비석과 비각은 중마을 도로변의 폐교지 뒤 언덕 위에 있다.

[변천]

1629년(인조 7)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대사간(大司諫) 김응조(金應祖)[1587∼1667]가 짓고 이관징(李觀徵)이 글씨를 썼으며, 머리의 전자는 이희년(李喜年)이 썼다. 비각은 비의 건립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이후 보수 과정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995년 1월 14일 경상북도 기념물 104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비석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비 몸체, 귀부,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308㎝이며, 비 몸체의 높이는 196㎝, 너비 1m이다. 귀부는 30㎝이고 이수가 82㎝이다. 이수에는 무늬를 새겼으며, 귀부는 거북 무늬가 뚜렷하다. 비 몸체는 가장 윗부분에 가로로 전서체로 ‘오졸재 박한주 여표비명(迂拙齋朴漢柱閭表碑銘)’이라 음각하고, 세로로 비문을 음각하였다.

비각은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담 안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이익공 오량가 팔작기와집으로 남동향하고 있다. 내부는 통칸으로 바닥은 시멘트를 발랐으며, 중앙에 비석을 세웠다. 얕은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배흘림을 두었다.

[현황]

밀양 박씨 행산공파 흑석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잘 정비되어 보존 상태가 좋아 비문을 모두 읽을 수 있다. 비각이 있고, 비각의 둘레는 시멘트 재질의 담장을 두르고, 정면 출입구에 철재 문이 있다. 표지판에 비와 비각, 박한주의 생애를 간단히 설명한 표지판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사화에 희생된 오졸재 박한주의 행적을 알려주는 자료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관리자 박진흠님의 글은 개인정보가 노출되어 삭제되었습니다. 2016.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