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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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에 있는 서사. 박하징(朴河澄)은 자가 성천(聖千)이고, 호는 병재(甁齋)·서암(西巖)으로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515년(중종 10)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제수되어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에 올랐으며, 1519년(중종 14)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성리학을 강론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명동사는 박하징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서사(書社)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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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에 있는 서사. 박하징(朴河澄)은 자가 성천(聖千)이고, 호는 병재(甁齋)·서암(西巖)으로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515년(중종 10)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제수되어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에 올랐으며, 1519년(중종 14)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성리학을 강론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명동사는 박하징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서사(書社)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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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안동의 도산 서원에서 청도에 있는 향교와 서원에 보낸 통문. 「명동 서사 소장 고문서(明洞 書社 所藏 古文書)」는 현재 1862년에 작성된 도산 서원(陶山書院) 통문만 확인된다. 도산 서원의 통문은 영남의 큰 선비인 병재(甁齋) 박하징(朴河澄)[1484∼1566]을 제향하는 묘우(廟宇)를 청도 사림이 공론으로 추진해 주길 바라는 뜻에서 작성하여 보낸 것이다. 통문의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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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명동 서사에 소장된 현판 일괄. 명동 서사에 소장 현판은 「명동 서사(明洞 書社)」, 「명동 실기(明洞 實記)」, 「서명동실기후(書明洞實記後)」, 「명동사상량문(明洞祠上梁文)」, 「존경재(存敬齋)」, 「보의재(輔義齋)」, 「백록동규약(白鹿洞規約)」, 「귀일고거(帰一古㞐)」의 8점이다. 이들 현판은 명동 서사 건립 당시와 그 이전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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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천(聖千), 호는 병재(甁齋)·서암(西巖).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박승원(朴承元)이고, 어머니는 경절공 하숙부(河叔溥)의 딸 진주 하씨(晉州河氏)이다.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의 동생이다. 박하징(朴河澄)[1484∼1566]은 유아 때 어머니가 병이 들자 보채지 않고 젖도 빨지 않아 향리에서 유효(乳孝)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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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지역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응도(應圖), 호는 성와(城窩). 송은(松隱) 박익(朴翊)의 현손이며, 박융(朴融)의 증손, 밀양 박씨 청도 입향조 박건(朴乾)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박승원(朴承元)이고, 어머니는 경절공 하숙부(河叔溥)의 딸 진주 하씨이다.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의 동생이자, 병재(甁齋) 박하징(朴河澄)의 형이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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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에 제작된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병재 박하징의 시문집 판목. 『병재 선생 문집(甁齋 先生 文集)』 판목은 총 22장 중 현재 11장만이 남아 있다. 남은 판목도 서문과 목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실되었다. 서문과 발문의 작성 연대로 보아 1871년에 판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명동 서사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충해(蟲害) 등으로 보관이 어려워 현재 한국 국학 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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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는 조상의 신주를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건축물. 사당은 사대부가(士大夫家)를 비롯한 일반 민가에서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서 조상 숭배를 실천하기 위한 공간이다. 사당은 가묘(家廟)라고도 부르며, 사당이 있는 집을 종가라고 한다. 청도군에는 조선 전기부터 건립되었던 총 115개의 사당이 존재한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각남면 2채, 각북면 5채, 금천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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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서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시대의 수야리는 인적·물적 중심이 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옛 지명은 물야(勿也)였는데 그 연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수야는 골짜기가 세 곳에서 내려와 계곡과 산의 모습이 ‘야(也)’ 자 모양이라고 해서 ‘수야’라고 한다는 말도 있다. 마을로는 행정(杏亭) 마을, 신기, 중리, 명곡(明谷), 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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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에 있는 밀양 박씨 집성 마을. 수야리의 지명에 대해서 정확히 전해지는 바는 없다. 다만 수야리 근처 계곡을 수야곡이라 부르는데, 이는 물이 흐른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1439년 우당 박융의 둘째 아들 박건이 밀양에서 이서면 수야리로 입향하여 이 일대에 자리 잡고 살아오고 있다. 입향조 박건은 송은 박익의 손자이자, 우당 박융의 차남으로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