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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035
한자 朴河澄
이칭/별칭 성천,병재,서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84년연표보기 - 박하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15년 - 박하징 사간원 정언 제수
몰년 시기/일시 1566년연표보기 - 박하징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58년 - 박하징 명동사 배향
출생지 박하징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박하징 거주지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묘소|단소 박하징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사당|배향지 명동사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지도보기
성격 관인|학자
성별
본관 밀양
대표 관직|경력 정언

[정의]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천(聖千), 호는 병재(甁齋)·서암(西巖).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박승원(朴承元)이고, 어머니는 경절공 하숙부(河叔溥)의 딸 진주 하씨(晉州河氏)이다.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의 동생이다.

[활동 사항]

박하징(朴河澄)[1484∼1566]은 유아 때 어머니가 병이 들자 보채지 않고 젖도 빨지 않아 향리에서 유효(乳孝)라는 칭찬을 들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8세 때 『소학(小學)』을 해석하고, 11세 때 시(詩)에 능숙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경전·사서와 제자백가의 서적들을 두루 탐독하였다. 관직으로 교관·습독 등에 올랐으며, 1515년(중종 10) 통훈대부에 제수되어 사간원 정언에 올랐다. 1519년(중종 14)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학문과 저술]

낙향 후 성리학을 강론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도의로 교유하던 탄수 이연경기묘사화에 화를 입자 문적을 모두 불태웠으며, 청도로 낙향한 김대유곽순(郭珣)은 물론이고, 성수침·이언적·이황·조식 등 당대의 성리학자들과 교유하며 학문을 토론하였다. 저서로 『병재 선생 문집(甁齋先生文集)』 3권 1책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 4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호조 판서에 추증되었고, 1858년(철종 9)에 명동 사우(明洞祠宇)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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