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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088
한자 獨立運動家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대웅

[정의]

근대 독립운동을 전개한 청도 지역 인물.

[개설]

청도 지역에는 비교적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하였다. 지금까지 독립 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은 54명 정도이지만, 아직 포상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도 다수 있다. 그중에는 1919년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 가장 많고, 그 외에 국내에서 독립을 위해 힘을 쓴 사람, 국외로 망명하여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만주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사람들도 있다.

[활동 내용]

청도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는 개항기부터 대한 제국기에 걸쳐 전개된 의병 투쟁과 계몽 운동,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비밀 결사 활동, 1919년 3·1 운동, 1920년대 국내외에 걸쳐 전개된 민족 운동, 그리고 1930년대 이후 조직된 국내의 비밀 결사에 참여하였거나 군국주의 일본의 전쟁 수행에 항거하였던 민족 지사를 말한다.

대한 제국기의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했던 민족 지사는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던 의병장 최한룡(崔翰龍)을 비롯하여 윤만파(尹萬坡)·구성립(具成立)·박용운(朴龍雲) 등의 의병장이 있었고, 계몽 운동에 참여하여 신교육 구국 운동국채 보상 운동에 참여하였던 인사들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1910년대 국내의 독립운동에서는 조선 국권 회복단·광복회·조선 독립운동 후원 의용단·기미 육영회 등의 비밀 결사 활동에 참여했던 이정희(李庭禧)·홍주일(洪宙一)·김유덕(金裕德)·최태석(崔泰錫)·최태욱(崔泰旭)과,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던 김진효(金鎭孝) 등의 활동이 주목되며, 국외 독립운동에서는 만주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참여하여 활동했던 예대희의 활동이 주목된다.

1920년대 국내의 독립운동에서는 신민사(新民社)를 조직하여 활동했던 김유덕, 대한민국 임시 정부 독립 공채 모집 및 워싱턴 회의 독립 청원에 참여했던 홍재범(洪在範), 제2차 유림단(儒林團) 군자금 모집에 연루되었던 윤병권(尹炳權),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앞장섰던 김진효(金鎭孝), 다물단(多勿團)의 군자금 모집을 지원했던 윤영섭(尹瑛燮) 등의 활동이 주목된다. 국외의 독립운동으로는 진주 청년 친목회를 조직하고 활동했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 특파원 윤치언(尹致彦), 길림성 군정서 부속 흥업단으로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 모집을 전개했던 김인제(金仁濟), 만주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강수영(姜壽永) 등이 주목된다. 뿐만 아니라 1920년대 사회 운동에서 청년 운동·농민 운동·사회 운동·신간회 운동 등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1930년대 이후 국내의 독립운동에서는 1931년 군용 열차 전복 의거를 통해 일제의 통치에 저항했던 박근이(朴根伊)·추진구(秋振求)·전팔룡(全八龍)과 1941년 동진회를 조직하여 항일 지하 운동을 전개했던 허남귤(許南橘)을 비롯하여 대구 사범 학교 비밀 결사 연구회에 참여한 안진강(安津江), 다혁당에 참여한 최태석(崔泰碩)이종악(李鍾岳) 등이 주목된다. 국외의 독립운동에서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광복군에 참여했던 한일근(韓一根)·김해득(金海得)·윤봉갑(尹奉甲)·손기달(孫基達)·김의명(金義明)·박종락(朴鍾洛)·박기수(朴基洙)·반양환(潘良煥)·김원진(金元鎭) 등과 만주에서 조선 혁명군에 참여했던 박대호(朴大浩)·박영호(朴永浩) 형제, 최운구(崔雲龜) 등이 주목된다. 그리고 1945년 일본군의 징집 훈련을 거부하자고 선동한 박기현(朴琪鉉)도 주목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7.23 인명 한자 오탈자 수정 崔泰碩 -> 崔泰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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