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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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2년 이중경(李重慶)이 청도의 운문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 조선 시대 선비에게 있어 산수 유람은 인지지락(仁智之樂)의 추구라는 학문의 한 방편이었다. 따라서 산수에 대한 미의식을 유산기(遊山記)를 통하여 드러내고는 하였다. 유산기는 조선 후기에 대량으로 저술되었는데, 영남 지역의 사림이 주된 담당층이었다. 운문산과 관련된 유산기는 현재 5편이 전한다. 밀양 출신 오한(聱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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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시대 청도읍성 청덕루를 소재로 지은 한시들. 「제청덕루」는 청도읍성 내에 있는 청덕루에 올라 그 감회를 읊은 한시이다. 청덕루(淸德樓)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시대 지군(知郡) 최안을(崔安乙)이 세우고, 최원우(崔元祐)가 기문(記文)을 지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신 이중경[李重慶]이 편집한 『오산지』에 의하면 청덕루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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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의 객관인 도주관의 건립 때 지은 기문. 「청도 객관 중수기」는 조선 시대에 청도의 객관인 도주관을 건립할 당시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지은 기문이다. 객관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각 고을에 지어 놓은 관사이다. 청도 객관인 도주관(道州館)과 관련해서는 「청도 객관 중수기」와 이건(移建) 상량문(上樑文)이 남아 있어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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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경상북도 청도군의 역사, 인문, 지리를 기록한 청도 문헌고를 2009년 청도 문화원에서 한글로 번역한 향토지. 『청도 문헌고(淸道文獻考)』는 1940년대 청도 향교가 중심이 되어 그동안 전해 오던 여러 향토지를 바탕으로 각 문중의 자료를 모아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간행한 향토 인문 지리지로 6권 5책으로 이루어졌다. 『청도 문헌고』는 한문본으로 현대인인 읽고 이해하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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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간행된 경상북도 청도군의 전통문화를 수록한 향토지. 『내 고장 전통문화』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인물, 유적, 전설, 옛 풍습, 명승, 경관 등의 전통문화를 종합적으로 서술한 향토 문화지이다. 청도군은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하는 데 원동력이 된 화랑정신의 발상지이며,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이루는 데 기여한 새마을 정신의 발상지로서 우리 민족 문화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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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전석봉이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광복 이후 최초로 발간한 향토지. 『오산지』, 『청도 문헌고』는 유학자를 대상으로 편찬한 한문본 읍지인 데 반해 『도주지(道州誌)』는 최초로 국한문 혼용체로 편집된 경상북도 청도군의 향토지이다. 연혁을 중심으로 유적 및 유물, 풍속 및 민요에 대해서 당시의 자료를 모아 구성을 정리하였다. 또한 옛 기록을 단순히 답습한 것이 아니라 현지답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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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경상북도 청도군의 옛 읍지인 『오산지』를 새롭게 번역한 향토지. 『역주 오산지(譯註 鰲山誌)』는 수헌(壽軒) 이중경(李重慶)이 1673년(현종 14)에 편찬한 사찬 읍지인 『오산지(鰲山志)』를 현대인이 읽기 쉽도록 번역을 하고 오늘날의 지명으로 주를 달아 놓은 향토지이다. 16·17세기에 접어들면서 전쟁으로 전 국토와 백성이 피폐한 가운데 지방 통치를 위한 자료, 향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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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편찬된 경상북도 청도군의 향토지. 『청도 군지』는 청도군의 역사, 자연 환경,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수록한 향토지이다. 조선 초기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의 청도 읍지인 『오산지』 및 각종 읍지를 계승하여 청도군의 전반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청도 군지』는 청도군의 지리서인 동시에 모든 자료를 종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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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 문화원 청도 향토사학회에서 발행하는 청도 향토사 관련 회보. 『청도 향토사학회보(淸道 鄕土史學會報)』는 청도군의 향토사를 조사 연구하는 청도 향토사학회에서 매월 두 차례 정기적인 야외 답사 활동과 회원들의 향토사 관련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지역민들에게 향토사 관련 소식을 알리고 향토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만든 회보이다. 2001년 5월부터 월 1회씩 발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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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시기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 일대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각종 지리지에 따르면 청도군에는 일찍이 밀양군의 임내(任內)인 두야보 부곡(豆也保部曲)이 있었다고 한다. 청도군에 직접 속한 부곡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청도군 읍지(1879)』에 의하면 매전 부곡(買田部曲)[역이 있음], 북곡 부곡(北谷部曲)[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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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의 최남단이자 밀양강의 최상류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청도는 지형적으로 남쪽 청도읍 유호리를 제외하고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때문에 예전에는 고개를 넘어야만 다른 지역으로 나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청도군 내 용각산 지맥을 중심으로 산동과 산서로 구분되어 청도군 내 지역들도 고개를 건너야 한다. 청도군 내에는 총 206개의 고개가 있다. 이 중 읍면 내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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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읍성은 지금의 시청이나 군청처럼 지방 행정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교육·제사 기능까지 갖추었던 성곽을 말한다. 즉 유사시 적이 침입했을 때에는 지역 주민들이 읍성에 들어가 적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게 여러 방어 시설을 갖추었고, 지방 도시의 대민 행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읍성은 산성과 달리 유사시에는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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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권일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청도 군수로 재직할 때 『오산지(鰲山誌)』를 편찬, 청도 지역의 제도와 문물을 잘 정리하였다. 재임 중 통치를 잘하여 숙종으로부터 표리를 받았는데, 청도에 세웠던 청덕비가 지금까지 전한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만(子萬). 거주지는 한양이다.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정선 군수(旌善郡守) 권담(權紞)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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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인.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용협(用協), 호는 모암(慕庵). 아버지는 의흥 현감(義興縣監) 김서(金湑)이다. 부인은 한성 부윤 이간(李暕)의 딸이다. 김극일(金克一)[1382∼1456]은 어릴 때부터 조부모와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했고, 장성한 뒤에는 장인 김서의 간곡한 관직 진출 요청이 있었으나, 양친을 봉양해야 함을 이유로 거절하고 성심을 다하여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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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지역에 있는 누각과 정자. 누정은 자연 경관이 좋은 곳을 세우진 건조물로, 관경(觀景)·은거(隱居)·수계(修稧)·연락(宴樂)·유상(遊賞)·독서이양(讀書頤養)·휴식(休息)·치화(治化)의 표상처 등의 구실을 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정서가 자연에 부여된 자리 내지 그 자리에 선 건조물이 곧 누정이다. 누정은 궁궐을 비롯한 관아로부터 지배 계급인 상류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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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청도읍성이 위치한 곳으로 청도군청 이전 전까지 청도군의 모든 행정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청도군 내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리이지만, 중요한 행정 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동상리는 관공서의 동쪽에 위치한 동네라는 뜻이다. 창마당이라고도 하는데 조선 시대에 군(郡)의 창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장이 개설되었고, 이곳에 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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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에서 경상남도 창녕군 성산면 연당리로 넘어가는 고개. 마령치는 청도군에서 창녕군으로 가는 다섯 개의 주요 고개인 버티재, 마령치, 배고개, 통짐이 고개, 매봉재 중 하나이다. 명칭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지만, 마치(馬峙), 말치, 마령(馬嶺), 마령치, 마랑재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주변 마령재에서 금곡리로 이어지는 골짜기 이름이 말치골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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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시기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 일대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각종 지리지에 따르면 청도군에는 일찍이 밀양군의 임내(任內)인 두야보 부곡(豆也保部曲)이 있었다고 한다. 그후 두야보 부곡은 고매 부곡(古買部曲)으로 바뀌었다가 부곡이 해체된 이후에는 밀양군에 직접 속한 고미면(古㫆面)이 되었다. 청도군에 직접 속한 부곡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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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에서 배출된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의 문무 관인. 문무 관인이란 문관이거나 무관을 역임한 관인을 말한다. 고려나 조선 시대의 관직 운영은 크게 문관과 무관 두 개의 반열을 두었다. 조회 때에 국왕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문반, 서쪽에는 무반이 정렬하였기 때문에 이를 동반 혹은 서반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런 제도는 고려에서부터 비롯되어 조선 말까지 이어졌다. 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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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청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학은 크게 고전 문학과 현대 문학의 범주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고전 문학의 경우는 한문학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영헌(英憲) 김지대(金之岱)[1190∼1266], 환옹(幻翁) 선탄(禪坦),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이 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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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시기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대곡리 일대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각종 지리지에 따르면 청도군에는 일찍이 밀양군의 임내(任內)인 두야보 부곡(豆也保部曲)이 있었다고 한다. 청도군에 직접 속한 부곡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청도군 읍지(1879)』에 의하면 매전 부곡(買田部曲)[역이 있음], 북곡 부곡(北谷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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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시기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부야리 일대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청도군에 직접 속한 부곡은 『신증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청도 군지(1879)』에 의하면 매전 부곡(買田部曲)[역이 있음], 북곡 부곡(北谷部曲)[군 동쪽 25리(9.818㎞)], 부곡 부곡(釜谷部曲)[군의 북쪽 15리(5.891㎞)] 등 3곳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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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서문중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기사환국 때 노론의 중신으로 인현 왕후의 폐위를 반대했다.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득세하자 병조 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등용되었으나, 희빈 장씨 및 남인에 대한 처리에 온건론을 주장하다 조정에서 배척을 받아 은퇴했다. 뒤에 다시 기용되어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도윤(道潤), 호는 몽어정(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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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도 출신의 승려. 선탄은 청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의미의 ‘오산 삼걸(鰲山三傑)’ 가운데 한 명이자,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시승(詩僧)이다. 승려의 신분보다는 오히려 시인, 곧 시승으로서 자기 존재를 역사에 남겼다. 사찬 군지인 『오산지(鰲山誌)』에는 선탄이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으로 대성리(大城里)에서 태어났으며, 한때 청도군의 적천사(磧川寺)에서 주지로 머물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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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세거하고 있는 성씨. 성씨의 연원은 고려 태조 왕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일부 중앙 귀족들에게만 내려지는 전유물이었다. 이후 호족들과 고려의 개국에 적극 참여한 개국 공신들이 태조 왕건으로부터 성씨를 하사받았고, 이들 호족들의 출신지 또는 거주지를 본관으로 하는 세거 성씨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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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작품. 청도 지역의 시 문학은 한문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시조에서 시작되었다. 청도 사족의 시조는 이후 청도 지역에서 걸출한 현대 시조 시인을 배출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청도 시 문학의 흐름은 시조 문학 단체에 의해 전개됨으로써 그 맥을 이어 오고 있다. 대표적 문예지로는 『개화(開化)』가 있다.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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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의 인문지리적 상황을 담은 사찬 읍지. 『오산지(鰲山志)』는 청도의 재지 사족이던 이중경(李重慶)이 1673년경에 편찬한 사찬 읍지이다. 당시에 편찬된 다른 사찬 읍지보다 편목이 다소 많은데, 이는 당시 청도의 재지 사족에 관한 내용들을 많이 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찬 읍지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중경의 본관은 전의이며, 1599년 아버지 이기옥[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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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과 관련한 의례 및 일반 활동. 유교는 공자(孔子), 맹자(孟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 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철학 사상이자 생활 윤리라 할 수 있다. 유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모두 본래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는 경지[天人合一]’를 인생의 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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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과 관련한 의례 및 일반 활동. 유교는 공자(孔子), 맹자(孟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 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철학 사상이자 생활 윤리라 할 수 있다. 유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모두 본래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는 경지[天人合一]’를 인생의 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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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유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서애 유성룡의 아들이다.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사마시에 장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명문가의 후예답게 깨끗하고 성실한 생애를 보냈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계화(季華), 호는 수암(修巖). 거주지는 안동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고, 어머니는 이경(李坰)의 딸이다. 유여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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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지역에는 고대에 이서국(伊西國)이 존재한 것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의 역사 기록에 전해져 오고 있다. 이서국은 기원 1∼3세기경에 영남 지역에 존재하였던 삼한[진한]의 소국 가운데 하나로서,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상당한 수준의 세력을 가진 정치 집단으로 평가된다. 이들 소국에 대해서는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東夷傳)에 소국들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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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문인. 이중경은 17세기 청도 지역에서 학덕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재지 사족 가운데 한 명이다. 이중경은 800편이 넘는 시(詩)와 산수 유기 「유운문산록(遊雲門山錄)」, 그리고 연작 시조 「오대어부가(梧臺漁父歌)」, 청도 지역 최초의 사찬 군지 『오산지(鰲山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숙(慶叔), 호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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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거주하는 내·외국인 수 또는 시민 집단의 계수. 조선 시대의 『경상도 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의하면 1425년(세종 7) 경상도 인구 191,719명 중 청도군은 640가구에 남자 3,361명과 여자 3,357명으로 총 6,718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오산지(鰲山志)』를 보면 1673년 5,328가구에 2만 155명이 인구가 거주한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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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 있는 당간 지주. 당간 지주란 사찰을 표시하는 깃발을 거는 막대기를 받치기 위한 돌기둥으로, 깃발을 거는 막대라는 의미의 당간과 이 당간을 세우는 기둥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형태는 두 기둥을 60∼100㎝의 간격으로 양쪽에 세운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면이 평평하고 수직인데 반하여 뒷면은 올라갈수록 둥글며, 옆에는 당간을 받치기 위해서 2개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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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 있는 배례석. 배례석이란 불교 행사 시 향을 피우거나 음식을 차려 놓고 예를 올릴 때 사용된 석조물이다. 주로 법당 앞, 석등이나 석탑 앞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장연리 배례석은 장연사지(長淵寺址)에 있었던 것으로 전하므로 장연사(長淵寺) 혹은 흥경사(興景寺)로 추정되는 유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연사지는 장연리 장수골 계당들목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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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 있는 석조물. 장연리 석조물 중에는 당간 지주와 석조(石槽) 등의 유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유물은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장연사지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간 지주란 사찰을 표시하는 깃발을 거는 막대기를 받치기 위한 돌기둥으로, 깃발을 거는 막대라는 의미의 당간과 이 당간을 세우는 기둥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형태는 두 기둥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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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청도 지역은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호구 수는 640호 6,718인으로, 절반의 토지만 비옥했고, 풍속은 검솔했으며,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 군사 동원 체제인 진관은 대구도(大丘道)에 귀속되어 청도 군수가 경상좌도의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를 겸임하였다. 고려 후기 이래로 대성(大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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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얼음 저장 창고. 우리나라의 얼음 관련 기록으로는 505년(신라 지증왕 6)부터 1898년(광무 2)까지 얼음을 저장하여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겨울에 동지가 지나 얼음이 가장 두껍게 얼었을 때, 장빙제(藏氷祭)를 지내고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하였고,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는 개빙제(開氷祭)를 지내고 얼음을 꺼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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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금천리에서 발원하여 청도읍 유호리에서 밀양강으로 유입하는 하천. 『오산지(鰲山志)』에 의하면, 청도라는 명칭은 ‘산과 시내가 맑고 아름다우며 큰 길이 사방으로 통한다(山川靑麗, 大道四通).’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한국 지명 총람』에는 요길천(要吉川)·송읍천(松邑川)이라고도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고, 『오산지』에는 이서면 서원리 앞을 흐르는 강, 즉 청도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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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청도 지역에 기반을 둔 토착 성씨. 1432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청도의 토착 성씨로 김(金)·백(白)·(申)·이(李)·조(曺)씨가, 내성(來姓)은 최(崔)·손(孫) 등의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청도의 사찬 군읍지인 『오산지(鰲山誌)』는 최씨와 손씨도 토성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앞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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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금곡리에 있는 산. 높이 677.2m의 험준한 바위산으로 정상부에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커다란 함(函) 모양을 이루고 있어 통함산(筒函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산지(鰲山志)』에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매전 부근에 소산이 그려져 있는데 소산이 통내산으로 추정된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 총독부에서 제작한 『조선 지형도(朝鮮地形圖)』에는 통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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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역사, 지리, 풍속, 산업 등을 중심으로 기록한 책. 전통 사회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앙 집권적인 정치가 있었지만, 각 군현 중심으로 향약과 향안 등을 실시하면서 강한 결합을 바탕으로 지방 단위의 공동체 삶을 유지해왔다. 그 결과 각 지방은 개별성과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각 지방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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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도의 신석기 시대를 확인할 수 있는 고인돌와 돌널무덤이 있다. 예전에는 청도읍성 서문에서 나온 길손이 오서역으로 해서 칠성리를 거쳐 마곡[화리]를 지나 구곡으로 해서 대구 땅인 풍각이나 창녕으로 넘나들던 중요한 곳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신작로가 생기면서 행인은 없어졌다. 화리라는 명칭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구랑과 마곡을 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