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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560
한자 淸道石氷庫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28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청도 석빙고 보물 제32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도 석빙고 보물 재지정
현 소재지 청도 석빙고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285지도보기
성격 석빙고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얼음 저장 창고.

[개설]

우리나라의 얼음 관련 기록으로는 505년(신라 지증왕 6)부터 1898년(광무 2)까지 얼음을 저장하여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겨울에 동지가 지나 얼음이 가장 두껍게 얼었을 때, 장빙제(藏氷祭)를 지내고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하였고,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는 개빙제(開氷祭)를 지내고 얼음을 꺼냈다고 한다. 얼음은 한꺼번에 꺼내서 모두 다 사용한 것이 아니고 필요에 따라 꺼냈으며, 사용은 관민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고 전한다.

[건립 경위]

신라 시대부터 얼음을 저장했다고 하나 그 위치와 범위를 알 수가 없다. 고려 시대에도 얼음을 저장하여 사용한 것은 『고려사(高麗史)』에 반빙 제도(頒氷 制度)라는 기록으로 엿볼 수 있다. 조선 시대는 건국 초기부터 장빙 제도(藏氷 制度)가 있어 고종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빙고전(氷庫典)이라는 직제를 두어 종5품의 제조(提調)이하 많은 관원을 두어 관리하였다는 기록으로 알 수가 있다.

청도에도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오산지(鰲山志)』에 북문 밖 수십 보(數十步) 내에 빙고가 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옛날부터 얼음을 저장하여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오산지』에 빙고가 해마다 무너졌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토빙고(土氷庫)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뒷날 1713년(숙종 39)에 성균 진사 박상고(朴尙古)에 의해 석빙고가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석빙고 비문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위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285번지에 있다. 화양읍성 동문(東門)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약간 올라가 동천(東川)의 언덕 위에 교촌리(校村里)와 경계 지점이다.

[형태]

청도 석빙고는 동서로 길게 장방형(長方形)으로 바닥은 서쪽이 약간 높고 동쪽이 약간 낮은 약 5° 정도의 경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남쪽과 북쪽은 약간 도드라지고 가운데가 약간 낮은 ‘∪’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바닥 돌을 들어보면 돌로 바닥을 깔았고, 가운데 부분은 깊게 판 다음 자갈을 채웠다. 바닥을 이렇게 한 이유는 얼음을 빨리 녹게 하는 물을 배출하기 위해서이다.

[형태]

크기는 길이가 1,470㎝이고, 홍예까지의 높이는 470㎝이다. 홍예는 모두 4개를 틀어 올렸고, 벽면은 홍예의 시작점까지가 120㎝이다. 홍예의 길이는 170㎝이고, 장대석의 길이는 330㎝이며, 장대석의 넓이는 90㎝이다. 바닥에서 출입문의 바닥까지의 높이는 160㎝이고, 홍예의 시작점까지는 310㎝이다.

장방형으로 땅을 깊게 파서 약 5° 정도의 경사면을 만들고 4면에 돌로 벽을 쌓았다. 바닥에 통수로를 만들지 않고 바닥으로 스며들게 한 것은 통수로가 있으면 더운 공기가 유입되기 때문에, 바닥에 자갈과 돌을 이용하여 구멍이 생기지 않게 한 것이다. 또한 벽의 바깥 부분에는 돌을 채워서 흙이 얼고 녹을 때 변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장마에 토압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였다.

[현황]

청도 석빙고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빙고 6기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졌으나. 아쉽게도 갑오경장 이후 반상의 위계가 무너지고 난 뒤 일제 강점기 때 좁은 길에 다리를 놓거나 주춧돌로 쓰기 위해서 가져가는 등 많이 훼손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완전한 석빙고의 모습이 아니고 위의 봉분 부분이 훼손된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석빙고 내부를 상세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지역의 석빙고는 내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내부를 볼 수 있는 청도 석빙고를 많이 보러 온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2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토빙고 또는 목빙고에서 석빙고로 전환할 때 맨 처음 만들어진 청도 석빙고는 선조들의 지혜와 경험 철학이 뭉쳐져 있는 결정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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