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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객관 중수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2019
한자 淸道客館重修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상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95년 - 주세붕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54년 - 주세붕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581년 - 「청도 객관 중수기」 『무릉 잡고』에 수록
배경 지역 도주관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지도보기
성격 기문
작가 주세붕

[정의]

조선 전기 청도의 객관인 도주관의 건립 때 지은 기문.

[개설]

「청도 객관 중수기」는 조선 시대에 청도의 객관인 도주관을 건립할 당시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지은 기문이다. 객관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각 고을에 지어 놓은 관사이다. 청도 객관인 도주관(道州館)과 관련해서는 「청도 객관 중수기」와 이건(移建) 상량문(上樑文)이 남아 있어 중수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오산지』에 따르면 처음 객관이 자리 잡은 곳이 현재의 위치임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객사가 없어진 뒤 청덕루의 터로 옮겼다가 군수 윤의지(尹誼之)가 1665년에 예전의 재목을 옮겨다가 현재의 위치에 다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2011년에는 정당(正堂)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특이하게 들보의 앞쪽 뒷부분에 상량문을 적어 놓았는데 이건(移建)의 내력은 물론이고, 공역(工役)에 많은 승려가 동원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성]

구성은 크게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에는 청도와 지리, 풍속, 인물 등 기본적 사항과 군수인 안주(安宙)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중간 부분에는 중수의 전말과 중수기를 짓게 된 경위 등을 밝히고 마지막에 당부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내용]

「청도 객관 중수기」의 첫 번째 단락은 청도의 지리적 위치와 산천, 풍속과 대표적 인물 등의 기본 사항과 중수를 하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청도 객관 중수기」에 따르면 객관을 중수한 시기는 안주(安宙)[1495∼?]가 군수로 있던 1541년(중종 36)이다.

두 번째 단락에서는 객관의 규모 등 건립과 관련된 사항과 관계된 인물들을 소개한다. 백성의 바람으로 객관을 새롭게 중수하였는데, 중수에 앞장선 사람은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1479∼1551]이고, 설계하여 완성하게 한 사람은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1479∼1560]이다. 중수를 시작할 무렵 군수 안주의 요청으로 경상도 관찰사 이청(李淸)[1483∼1549]이 약간의 물건을 제공하여 주었고, 경상도 관찰사 임백령(林百齡)[?∼1546]도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세 번째 단락은 청도 백성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로 끝을 맺으며, 객관의 경영과 보수에 신경을 쓸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말미에 군수 안주의 간단한 인적 사항과 자신과의 관계를 언급하였다.

[특징]

기문은 서사와 의론으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기문이 의론에 치우치는 데 반해 「청도 객관 중수기」에서는 서사(敍事)와 의론(議論)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청도 객관인 도주관의 건립 내력과 전말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수령과 재지 사족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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