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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43
한자 東上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화양면 동상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79년 - 청도군 화양면 동상동에서 청도군 화양읍 동상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화양면 동상동에서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0.18㎢
가구수 99가구
인구[남,여] 202명[남자 107명, 여자 95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청도읍성이 위치한 곳으로 청도군청 이전 전까지 청도군의 모든 행정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청도군 내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리이지만, 중요한 행정 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명칭 유래]

동상리는 관공서의 동쪽에 위치한 동네라는 뜻이다. 창마당이라고도 하는데 조선 시대에 군(郡)의 창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장이 개설되었고, 이곳에 싸전이 있어서 쌀전이라고도 하였다. 또 마을 한복판에 커다란 회나무가 있어 동네 당산목으로 숭배하고 있는데 이 회나무가 있기 때문에 회나무골이라고도 불린다.

상수만댕이라고도 불리우는 상수지(上水池)는 현재 청도 농업 협동조합 화양 지점 뒤쪽에 있었는데, 1990년대에 매워졌다. 읍성 안에는 두 곳의 저수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북쪽 성둑에 의지해서 있던 성내지이고, 다른 하나는 상수지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동문골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에 읍성의 동문인 봉일루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읍사무소 뒤쪽에 관지들이 있는데 보통 강시땅이라고 하여 활을 쏘는 장소라고도 알려져 있으나 관지(官址)라는 말은 관기(官基)라는 말이다. 이곳은 사형을 집행하는 장소로도 쓰였다고 하며 도주[청도] 줄다리기가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기생골은 기생들이 살았다고 해서 기생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재민촌은 화양 우체국이 뒤쪽으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대부분 군 소유지이거나 국가 소유지이다. 태평양 전쟁 때 귀국한 사람들과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의 수용소가 있었고, 전쟁이재민 마을이라고 해서 전재민촌이라고 부른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도군 상읍내면(上邑內面)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동상동이라 하여 화양면에 편입되었다. 1979년 화양면화양읍으로 승격되면서 화양읍 동상동이 되었고, 1988년 동상동에서 동상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청도 동헌은 고려 때 동상리로 옮겨왔다고 하니, 기록 역사가 시작된 이후 일제 강점기까지 계속하여 행정의 중심지로 수백 년 동안 청도 군정을 관리하였던 곳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관공서들이 지금의 청도읍 지역으로 옮겨가고 난 다음, 화양 초등학교가 들어섰다. 동헌은 화양 초등학교 교정에 있으며 『오산지(鰲山誌)』등 고문헌 기록에 따르면 1636년(인조 14)에 군수 이갱생(李更生)이 터를 잡아 서향으로 창건한 것을 1666년(현종 7)에 군수 윤의지가 남향으로 신축하였다. 그런데 관아를 지은 다음, 1676년(숙종 2) 이상하게도 군수 윤의지유비, 권일이 연달아 횡사(橫死)하자 군수 서문중이 옛터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서문중 군수가 이건해 놓고도 동헌으로 사용하지 않아 70여 년간을 방치하여 폐옥이 된 것을 군수 이협이 1741년(영조 17)에 다시 서향으로 이건 중수하였다.

[자연 환경]

동상리는 청도군에서 가장 작은 마을로 언덕 위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읍성의 성벽을 따라 동쪽은 동천리(東川里)가 되고 석빙고 위쪽으로는 교촌리가 된다. 읍성의 북쪽 끝 부분부터는 약간의 경사를 이루면서 현재 미곡 처리장까지는 약간의 언덕으로 되어 있다. 도로가 완만하게 개설되면서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서상리 끝이나 한내강에서 보면 상당히 높은 지대임을 알 수 있다.

[현황]

2012년 8월 현재 면적은 0.18㎢이며, 총 99가구에 202명[남자 107명 여자 9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화양읍 합천리, 동남쪽은 화양읍 교촌리, 서쪽은 화양읍 서상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동상리 북쪽으로 국도 20호선이 동서로 지난다.

화양읍사무소를 중심으로 화양 우체국과 청도 농업 협동조합 화양 지점이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청도읍성이 복원 사업을 통하여 현재 석빙고 주변에 있던 민가가 철거되고 읍성 석벽도 일부 복원을 하였으며 공북루도 복원이 되었다. 화양 초등학교 교정 내 경상북도 기념물 제403호로 지정된 청도 동헌이 위치하며, 과거 화양 공민학교가 있던 자리는 롯데 음료의 창고로 쓰인다.

서상리와의 경계 지역에는 지금도 오일장이 형성되고 있으나,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06년에 청도군청이 현재의 청도읍으로 이전되면서 쇠락하여 지금은 이름만 싸전, 신발전, 닭전 등으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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