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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690
한자 樓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집필자 김찬영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지역에 있는 누각과 정자.

[개설]

누정은 자연 경관이 좋은 곳을 세우진 건조물로, 관경(觀景)·은거(隱居)·수계(修稧)·연락(宴樂)·유상(遊賞)·독서이양(讀書頤養)·휴식(休息)·치화(治化)의 표상처 등의 구실을 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정서가 자연에 부여된 자리 내지 그 자리에 선 건조물이 곧 누정이다.

누정은 궁궐을 비롯한 관아로부터 지배 계급인 상류층으로 확대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향촌 사림의 은거에 주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또한 한 지방 또는 가문의 문화 척도가 되는 표상으로서, 지연·학연·혈연에 따라 누정 문단의 산실이 되기도 했고, 향토 문단 형성에 기여하는 기능도 있었다.

[청도의 누정]

조선 시대 각종 문헌 기록에 따르면 청도의 누정은 60여 개소가 있었다. 이들 누정 중 해방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위치 및 규모, 구조가 잘 남아 2003년 『문화 유적 분포 지도』에 수록된 누정은 25개소이다. 이들 누정은 대개 정자이고, 대(臺)가 1개소, 당(堂)이 2개소이다. 지역적으로 보면, 청도읍에 3개소, 화양읍에 2개소, 각남에 1개소, 풍각면에 2개소, 이서면에 4개소, 운문면에 4개소, 금천면에 9개소 등이다.

누정은 건립 주체에 따라 관 주도의 관 누정과 향중 또는 유림 인사들이 건립한 민 누정으로 구분된다. 관 누정은 각종 조선 시대 문헌 기록에서만 확인되는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과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1469]에 읍치 내 청덕루(淸德樓),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과 『오산지(鰲山志)』[1673]에는 청덕루와 객관 동쪽에 청향루(淸香樓)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뒤 『여지도서(輿地圖書)』[1760]에는 청덕루와 청향루가 없어졌음이 기록되어 있고, 그 뒤의 문헌에도 역시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오산지』에 따르면 청덕루는 고려 때 창건된 뒤,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군수 권일(權佾)이 1674년(현종 15)에 중창했다가 그 뒤 소실되었다. 당시 청덕루에는 전녹생(田祿生)[1318∼1375], 심효생(沈孝生)[1349∼1398], 권근(權近)[1352∼1409], 정이오(鄭以吾)[1354∼1434]의 시가 걸려 있었다.

민 누정은 조선 중종 14년(1519)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479∼1552]가 관직을 버리고 청도로 내려와 지내면서 후진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삼족대(三足臺)[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89호]가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그 뒤로 청도 관내의 여러 문중 및 재향 인사, 학자들이 시유(詩遊)·강학(講學)·수학(修學) 또는 선조의 학문을 추모(追慕)·향사(享祀) 등을 위해 누정을 건립하였다.

현재 청도 지역에 남아 있는 누정의 초창 시기는 조선 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이 일부 있고, 대부분은 근대에 건립된 것이다.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도 대개 근대에 들어 중창 또는 중건·중수·수리된 것이 많고, 이전 또는 지붕 개량, 서까래나 구조 부재의 교체나 보수 및 수리한 것이 많다.

[청도 누정의 입지]

누정은 입지에 따라 마을 주변의 야산 또는 못가·개천가·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천 풍광이 뛰어난 계곡이나 주변 산수 경승 풍광지에 입지한 누정과 청도천·동창천 등 주변의 천변 누정으로 나눌 수 있다.

마을 주변의 야산 또는 산수 풍광지의 누정으로는 화양읍 토평리 일취정(一翠亭), 각남면 옥산리 상옥산 마을 거산당(居山堂), 풍각면 금곡리 금곡 마을 서산정(西山亭), 이서면 대전리 오수정(五樹亭), 이서면 흥선리 채연정(採蓮亭), 운문면 지촌만회정(晩悔亭), 운문면 정상리 구은정(九隱亭)·추원정(追遠亭), 금천면 동곡리 간아정(澗阿亭), 매전면 장연리 운천정(雲川亭), 매전면 지전리 영구정(永久亭), 매전면 지전리 영모정(永慕亭), 매전면 관하리 우계당(友溪堂), 이서면 칠엽리 칠엽지변의 죽림정(竹林亭) 등이 있다.

한편 청도천변의 누정으로는 청도읍 원리영호정(永湖亭)이 있고, 동창천변의 누정으로는 청도읍 사촌리 선월정(先月亭), 풍각면 송서리 영풍루(永風樓), 금천면 신지리 만화정(萬和亭), 매전면 금곡리 삼족대, 매전면 동산리 운수정(雲水亭)①·운수정② 등이 대표적이다.

[청도 누정의 건물 구성]

청도 누정의 건물 구성은 크게 누정과 부속채로 구분되며, 그 외 것으로는 건물 주위의 담장 및 수목 등이 있다. 입지 양상에 따라 청도천이나 동창천 하천변에 입지한 것은 하천이 잘 조망되는 위치의 암반이나 절벽 위에 주로 독립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그 외 마을 복판 또는 마을 주변의 야산 등지에 입지한 경우는 대개 경사지를 2단으로 조성하거나 평지에 건물을 건립한 경우가 많다.

배치 양상은 누정만 ‘一’자형 배치된 경우, 누정과 출입문 또는 누정과 고직사가 ‘二’자형으로 배치된 경우, 누정과 관리사가 ‘ㄱ’자형으로 배치된 경우가 있다. 또한 누정과 고직사가 동일 영역 내에 위치한 경우도 있고, 관리사 영역을 누정 영역에서 별도로 분리해 위치시킨 경우도 있다. 누정의 규모는 정면 3칸에서부터 5칸, 측면은 1칸에서 2칸이 대부분이다. 층수로는 대개 단층이고, 일부는 경사지를 이용한 1.5층과 중층도 있다.

평면 구성은 대개 ‘一’자형과 ‘ㄱ’자형으로 구분된다. 실 구성을 보면, ‘一’자형은 중앙에 대청을 두고 그 좌우로 온돌방 1∼2칸을 배열한 경우와 온돌방 2칸에 대청 1칸을 배열한 경우 또는 중앙에 대청 1∼2칸을 두고 대청 좌측에는 2칸 온돌방, 우측에는 온돌방 1칸을 비대칭으로 배열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면에는 대개 개방된 퇴에 툇마루를 시설했다. ‘ㄱ’자형 평면의 누정 예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청도읍 원리청도천변에 위치한 영호정은 중당 협실형 평면에 온돌방 2칸을 우단에 결합했고, 화양읍 토평리 일취정은 정면 5칸의 중당 협실형 평면에 우단부로 누마루 1칸을 돌출시켰다.

구조는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 또는 두리기둥을 세워 3량가 또는 5량가의 지붕가구로 꾸몄다. 기단은 근년에 시멘트 기단 등으로 개수한 예가 많고, 기둥은 거의 민흘림기둥이다. 주상부는 대개 장혀수장집이며, 일부는 제법 고급스럽게 소로장혀수장집으로 꾸민 예도 있다. 창호는 온돌방에는 외여닫이·쌍여닫이 세살문이고, 청방간에는 쌍여닫이 굽널세살문 또는 분합문을 달았다. 그리고 대청에는 판벽에 외여닫이 또는 쌍여닫이 울거미띠장널문을 많이 달았다. 개방된 퇴와 대청 등의 구성은 영남 지역 누정의 일반적인 구성요소를 취하고 있다. 고직사를 갖춘 누정은 그리 많지 않는데, 평면은 민가형으로 정지+방+방의 3칸 ‘一’자형이 많다.

지붕은 대개 팔작지붕에 한식 기와를 이은 경우가 많고, 일부는 일식 시멘트 기와도 있다. 최근에는 기존 지붕 재료를 걷어내고 경량에 값싸고, 내구성이 좋은 칼라강판 지붕을 잇는 곳이 늘고 있다. 또 담장을 치고 대문을 다는 곳이 늘고 있다.

[청도 누정의 현황]

현재 누정은 건립 당초의 학문 및 강학지소·휴식·선조 추모소 등의 기능은 거의 없어졌다. 문중 및 자손의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곳은 이러한 정신을 비교적 유지한 채 회합·충효 교실 등으로 전용되고 있다. 또한 일부 누정은 관리 부실로 자연적 훼손이 진행되는 곳이 많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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