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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조리 팔조 동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803
한자 八助里八助洞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 팔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여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80년 무렵 - 팔조리 팔조 동제, 동제당 이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5년 - 팔조리 팔조 동제, 인근 절에서 대신 지내기 시작
의례 장소 성황당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 183지도보기
성격 민간 의례|동제
의례 시기/일시 정월 대보름 [음력 1월 15일] 0시
신당/신체 성황당[제당]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팔조리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올리는 마을 공동 제의.

[개설]

청도군 운문면 팔조리의 팔조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이 되면 마을의 평안과 풍년과 함께 팔조령을 넘어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동제를 올렸다.

[연원 및 변천]

팔조 마을의 끝자락에 있는 성황당은 일찍이 팔조령을 넘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세워졌다. 조선 시대에 관도(官道)인 영남 대로 중에서 청도∼대구를 잇는 주요 길목이었던 팔조령은 그 고개가 험난하여 지나는 과객들이 늘 마음을 졸이던 곳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1970년대까지 호랑이가 나왔다고 전해지는 이 고갯길을 무사히 지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던 곳이 바로 이곳 팔조령의 성황당이다.

과거의 성황당은 현재의 마을 끝자락이 아니라 팔조령 고갯길 마루에 있었으며 마을의 동신(洞神)을 모신 제당이자 오가는 과객들의 안식을 비는 곳이었다. 과객들은 이곳을 지나가며 돌을 포개어 얹어 만드는 인공 산인 조산(造山)을 쌓아서 안전을 기원하였는데, 성황당 옆 조산은 그 높이가 2m에 이르렀다고 해진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제를 지내려고 팔조령 고갯마루까지 올라가는 수고로움이 커서 1950년 무렵에 현재의 장소로 제당을 옮겨 왔다.

[신당/신체의 형태]

현재 팔조리 팔조 동제의 성황당은 토석 담장을 쌓아 두른 단칸 규모의 제당이다. 당집 문의 안쪽 문풍지에는 산신도가 그려져 있으며 내부에는 신위를 올릴 수 있는 기단이 조성되어 있다.

내부에는 천정에서 좌우 양쪽 벽면에 여러 개의 기문(記文)이 걸려 있는데 그중에서 오른쪽 하단에 ‘성황당 중수 기문’이 걸려 있다. 중수 기문 끝부분에는 ‘성상 즉위 17년 경진 7월 하한 안동 손규석 근차(聖上卽位十七年庚辰七月下澣安東孫奎錫謹搓)’라고 적혀 있다. 이 성황당 중수 기문을 통해 추정하건대, 동제의 시작 시기나 성황당의 건립 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성황당이 늦어도 고종 17년인 1880년 이후부터는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성황당 주변에는 오래된 고목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뒤쪽으로는 마을이 있고, 앞쪽으로 팔조리 장수골로 올라가는 도로가 지나간다. 북쪽으로 팔조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건너편에 식당이 있다.

[절차]

팔조리 팔조 동제 는 음력 정월 열이튿날에 시작되었다. 과거에는 사흘 전에 제관(祭官)과 유사(有司)를 선출하고 제삿날 당일이 되면 아침 일찍 금줄을 만들어 제당에 두르고 제물을 사서 동제를 올렸다. 지금은 이 모든 절차가 가까운 절로 이관되어 절에서 동제를 대신하고 있다.

[부대 행사]

2012년 현재 마을에서 동제는 올리지 않지만 정월 대보름 당일 아침 동네 주민들은 함께 모여서 대동회를 개최한다. 이날은 동비를 결산하고 한 해의 업무 보고와 함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현황]

약 2005년 무렵부터 마을의 동제를 가까운 사찰로 옮기고 나서는 관리를 하지 않아 토석 담장의 문과 성황당 문도 이곳저곳이 유실된 상태이다. 절에서 지내는 동제에는 동네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 등이 참석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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