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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017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경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비슬 문화촌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937-3지도보기
민병도 갤러리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지도보기
영담 한지 미술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 747지도보기
아트 갤러리 청담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31지도보기

[개설]

경상북도 청도군에서는 창작 예술인들이 모여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과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창작 예술인촌 사업을 추진 중이다.

[예술 도시로의 출발점에 선 청도]

경상북도 청도군은 2009년부터 10년을 계획하고 ‘일류 생태 도시(Eco City)’ 조성을 추진하였다. 대구광역시와 창원시·마산시 등 경상남도 지역을 잇는 사통팔달의 도로망을 구축하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살려 청도를 세계 일류 생태 도시로 변화시킨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또한 농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도를 신라 문화권의 핵심 관광지로 부상시키며, 유등 창작 클러스터, 비슬산 창작인촌 등 20∼30가구 규모의 예술인촌을 조성하고, 진입로와 지하수 개발 등 간접 시설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특히 자연 생태와 문화·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창작 예술인촌 건립은 목언예원의 민병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계획이었지만 아쉽게도 현재 창작 예술인촌 사업은 여러 가지 이유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청도군이 문화·예술 도시로서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문화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의 문화·예술적 특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 수단은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고, 충분한 시간과 재원, 기획을 바탕으로 할 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청도군의 예술 도시 계획 또한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의 잠재력과 가능성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도가 바로 예술이다]

허버트 리드(Herbert Read)에 따르면, 예술이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형식을 만들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로서 감수성과 직관을 기반으로 하여 ‘조형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라고 한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이를 상징화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예술이 반드시 미(美), 혹은 미학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문화와 예술이라는 용어를 포괄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72년의 ‘문화 예술 진흥법’이 여러 차례 개정되었고, 그중 제2조에 따르면 ‘문학, 미술[응용 미술 포함], 음악, 무용, 연극, 영화, 국악, 사진, 건축, 어문 및 출판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문화·예술의 개념이 좁은 의미의 예술적인 활동에 제한되기보다는 경제적 활동을 기반으로 작용하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문화·예술은 사람들의 창조적 활동과 의식을 고양하고 정신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넘어서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경제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어, 더 이상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갇혀 있지만은 않다.

경제 성장과 정보·기술의 발달, 주 5일 근무제와 높아진 생활 수준은 문화·예술 소비 계층을 증가시켰다.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고자 하는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각 지역의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기 위한 방안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점차 집중되고 있다. 청도군의 경우, 자생적으로 성장하여 지역 문화·예술의 기반을 잡아 가는 비슬 문화촌과 창작 예술인촌 건립의 중심에 있는 목언예원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예술 도시로 손색이 없을 만큼 많은 갤러리와 미술관, 예술가들이 청도에 자리 잡고 있다.

[청도를 품은 무지갯빛 매력의 비슬 문화촌]

1995년 ‘연호 생활 도자 연구소’로 출발한 비슬 문화촌은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비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세미나 등 학술 모임, 미술 전시 공간, 음악 캠프 요청이 이어지면서 1998년에 갈색 지붕을 머리에 인 흰 건물이 추가로 들어섰다. 이렇게 해서 약 2,975㎡[900평] 규모의 문화촌이 형성되었다. 새로 들어선 흰색 건물은 1층과 2층은 세미나실으로, 3층은 촌장 정인표가 운영하는 카페 ‘바람의 뜰’로 운영 중이다. 김영자의 연호 생활 도자 연구소는 마당이 곧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산자락에 있다 보니 인공적인 손길 없이도 마당 끝에 서 있으면 건너편 산과 아래로 보이는 마을 풍경이 멋진 배경이 된다.

비슬 문화촌은 문이 두 개다. 찻길에서 구름다리를 지나 3층 카페로 바로 들어서는 문이 있고, 주차장에서 마당을 통해 들어갈 수도 있다. 구름다리 밑으로 수련이 핀 연못을 구경하고 바람의 뜰로 들어서면 마치 사랑방 같은 느낌이 전해진다. 바람의 뜰은 도시처럼 사람들로 북적대거나 많은 종류의 커피를 팔지 않는다. 다만 그랜드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한가운데에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그란 탁자가 놓인 것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테라스에서는 중앙 야외무대와 비슬 문화촌 뒤편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비슬 문화촌은 독특한 구조이다. 큰 건물 뒤에 ㄱ자 모양의 식당과 연수원이 있어서 ㄷ자 구조를 이루고 있다. 주차장에서 골목처럼 좁은 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야외무대로 사용하기도 하는 넓은 마당이 나온다. 3층 바람의 뜰에서 레드카펫이 깔린 계단을 내려오면 이곳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비슬 문화촌에서는 2000년부터 한 달에 한 번 비쓸락 음악회가 열린다. 비슬에 모인 사람들이 즐거움을 체험하는 ‘락(樂)’의 천국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정해진 장르 없이, 때로는 클래식이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때로는 통기타와 색소폰 연주, 가야금과 전통 악기 연주가 산자락을 가득 채운다. 가곡과 가요, 동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래들도 들을 수 있다. 처음에는 낯설던 작은 음악회가 이제 전국의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신청이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다.

음악회가 끝나면 간단한 다과와 식사가 제공되는 것이 비쓸락 음악회의 또 다른 매력이다. 지역의 주요 철강 회사인 동구 철강의 사장이었던 정인표는 현재 비슬 문화촌 촌장 역할에 매진하고 있다. 서툴지만 직접 커피도 내리고 대구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음식도 배웠다. 어떠한 이익도 바라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고 여유를 느끼고자 시작한 일이라고 한다. 정인표가 무려 5년여 동안이나 지원해 온 비쓸락 음악회는 카페가 어려워져 중단 위기를 맞이한 적도 있다. 이때는 회원들이 직접 군자금 통을 만들어 1만 원씩 참가비를 받았다. 지금은 예전처럼 활발하게 음악회가 열리지는 못하는 상황이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촌장 정인표의 열정은 여전하다. 또한 청도 곳곳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어 지난 비슬 문화촌의 발자취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비슬 문화촌의 또 다른 주요 행사는 2001년 5월 22일에서 5월 27일까지 개최된 ‘국제 라쿠 심포지엄 코리아’이다. 일본 전통 도자기 기법 중의 하나인 라쿠(RAKU)[樂燒]는 일본의 라쿠야끼의 전통과 기법이 미국으로 전해진 뒤 미국의 실험 정신과 자유분방함이 어우러져 여러 가지 기법으로 개발되었다. 또한 근래에는 범세계적인 열의와 관심으로 다양한 미적 표현 영역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제 라쿠 심포지엄 코리아는 라쿠의 새로운 흐름을 조명하고 세계적인 라쿠 작가들 간의 교류 및 작품 전시를 통해 새롭고 창의적인 창작 원리를 탐색하는 것을 목표로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비슬 문화촌의 촌장 정인표와 연호 생활 도자 연구소의 소장 김영자가 발판을 마련하고 리처드 허시 교수와 권영식 교수가 자료 수집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심포지엄은 데이비드 존스, 오히 토시오, 이희순, 칭 유안 창, 리나 킴체, 프레스턴 사운더스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주제로 진행되었고, 여러 사람의 헌신과 노력으로 인해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흙, 나무, 돌 그리고 산과 물이 있는 비슬산 자락에서도 문화·예술이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한다. 묵묵히 한길을 가고 있는 비슬 문화촌이야말로 예술인촌의 한 방향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민병도 시인과 목언예원]

운문사(雲門寺)로 가는 길목, 과수원 길과 논길을 따라가다 보면 과실나무들로 풍성하면서도 아담한 정원이 나온다. 바로 목언예원(木言藝苑)이다. 목언예원에는 이름처럼 ‘나무의 말을 바르게 들어서 미처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여 사람과 나무가 서로를 존중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나무들의 말을 듣고 기르는 목언예원은 주인장이자 시조 시인 그리고 한국화 화가인 민병도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목언예원은 시조와 한국화 창작을 위한 남강 화실, 그림을 걸고 감상할 수 있는 나무 갤러리, 사랑방 불이산방, 시 낭송과 작은 연주가 어우러지는 차실 관수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이산방(不二山房)은 사람의 존재가 나무, 돌멩이, 새와 다를 바 없음을 깨달아 나의 불행과 남의 행복을 함께 아우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늑하고 평온한 2층짜리 건물이지만, 2층 차실로 올라가면 통유리 너머로 바로 떨어질 것 같은 절벽을 마주하게 된다. 비단같이 맑은 금천(錦川)의 물줄기와 시골 마을의 풍경도 한 폭의 한국화를 펼쳐 놓은 듯하다.

민병도는 대구 미술 협회장으로 바쁘게 지내던 1999년 12월에 고향 청도로 귀향하였다. 20세기와 21세기, 두 세기를 모두 도심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터를 마련하고 필요할 때마다 한 칸씩 증축해 온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민병도는 제26회 가람 시조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또한 시조 전문 잡지 『시조 21』의 발행인이면서 이호우 시조 문학상을 주관·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시조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민병도는 창작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청도군의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데도 이바지하였다. 1년에 두세 번 목언예원에는 청도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과 이웃 주민들이 모인다. 목언예원이 시인들의 시 낭송과 음악 연주회가 열리는 무대로 변하는 것이다. 연꽃과 차향과 달빛, 물소리와 음악 소리에 취한 채로 시 낭송을 들을 수 있는 목언예원은 한마디로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부산, 울산 등에서도 문학 기행차 목언예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이외에도 민병도는 주민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 시조 문학관 건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 자신이 모은 400여 점의 작품으로 몇 년 후 미술관도 건립할 계획이다. 민병도의 이러한 계획과 노력이 청도 창작 예술인촌 건립의 바탕이 되었다. 비록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된 창작 예술인촌을 완성할 것이라 믿으며 민병도는 오늘도 “언제 도착할지 모를 그곳을 향해 계속 흔들리며 나아가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미술관, 영담 한지 미술관]

방음동 새마을 동산을 지나 곡선 길을 따라 크게 휘어져 들어가면 영담 한지 미술관 표지석이 보인다. 입구에서 돌계단을 올라가면 왼편에 나무로 아담하게 지은 미술관이 한눈에 들온다. 다른 미술관들과 달리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영담 한지 미술관은 자연 그대로의 나무 바닥이 한지들과 참 잘 어울린다. 익숙하지만 서양의 미술 작품보다 더 모르는 한지. 60점의 한지 작품과 100여 가지에 이르는 한지 견본을 보면서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과 더불어 그 아름다움에 저도 모르게 매료된다.

영담 한지 미술관은 영담 스님이 세운 한국 최초의 한지 미술관이다. 1985년 강원도 원주에 영담 전통 한지 연구소를 세운 영담 스님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통 방식의 종이 만드는 법을 배운 뒤 직접 닥을 삶아 종이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영담 스님의 한지는 종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담 스님은 닥에 볏짚과 이끼, 다시마 즙, 옥수수 등을 섞기도 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울퉁불퉁한 질감을 가진 한지도 만들고 포근하고 부드러움을 주는 한지도 만든다. 30여 년간 영담 스님이 만들어 온 한지의 역사가 1층과 2층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겨울이 되면 영담 스님은 청도 일대의 닥을 120kg 정도 모아 종이를 만든다. 닥 껍질을 흐르는 물에 하루쯤 담가 둔 후, 닥이 물을 충분히 먹으면 가마에 넣고 콩대를 태워 만든 양잿물과 함께 삶는다. 잘 삶아진 닥은 꺼내서 냇물에 빨고, 이틀 정도 흐르는 물에 담가 두면 양잿물이 빠진다. 종이를 뜰 때는 발을 사용한다. 지료를 뜨는 발틀에는 뚜껑이 없어서 예민한 수평 감각으로 종이를 떠야 한다. 발로 지료를 뜨고 나서 앞뒤, 좌우로 여러 번 물질을 하면 닥 섬유가 우물 ‘정(井)’ 자로 조직이 짜인다. 그렇게 해서 질기고 수명도 긴 한지가 만들어진다. 천 년의 수명을 자랑하는 한지는 빠름만을 외치고 좋아하는 현대 사회에서 전통의 가치를 다시금 돌아보고 찾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영담 스님은 한국 전통 종이 문화 학교를 청도에 건립 중이다. 경상북도와 청도군에서 일부 지원하고 나머지는 영담 스님이 자비로 짓고 있다. 앞으로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의 한옥 마을과 한지 박물관, 한지 미술관, 한지 체험 학교를 하나로 묶을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 전통 종이 문화 학교가 완성되면 신지리는 전국적으로 가장 특색 있는 문화·예술 마을이 될 것이다.

[어른들만의 교감 놀이터, Fun & 樂]

각북면 남산리에 자리한 Fun & 樂은 복합 문화 공간이다. 감나무와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는 넓은 마당을 지나면 갤러리, 카페, 아트 숍, 패션숍이 옹기종기 모인 건물 입구가 보인다. 갤러리 옆 아트 숍은 아기자기한 볼거리들로 채워져 있고, 패션숍에서는 운동복, 가방, 여성 의류, 속옷 등을 판매하고 있다.

문화 독립군이라 자처하는 최복호가 직접 디자인한 Fun & 樂은 패션 문화 연구소이자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이다. 다양한 공연과 전시, 그리고 패션이 어우러지는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으로 지역 주민의 행복 지수를 높이는 게 목적이다. 힙합 공연과 7080 가수들의 콘서트, 가야금 연주, 누드 크로키 퍼포먼스, 음악과 코미디언 전유성의 입담이 어우러지는 잡담쇼 등이 이곳에서 펼쳐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리고 서로 너무 다른 것, 그래서 감히 시도해 보지 못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복호는 전유성과 함께 ‘몰래길’도 만들었다. 제1코스는 Fun & 樂에서 군불로를 거쳐 장기지못에서 다시 돌아오는 길이다. 제2코스는 Fun & 樂에서 장기지 마을, 성곡댐, 성곡리, 장기지못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길이다. 제3코스는 Fun & 樂에서 상수월리, 하수월리, 전유성 코미디 학교, 성곡댐, 장기지못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길이다. 제주도의 올레길과 달리 몰래길 걷기 행사가 펼쳐지면 갖가지 재미난 놀이가 동반된다. 어른들이 기차놀이도 하고 보물찾기도 하는 것이다. 어렵게 접근하는 예술이 아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한 번쯤은 망가지고 웃으면서 친근하게 놀이처럼 다가오는 예술이다.

Fun & 樂은 패션과 문화·예술, 자연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소통의 공간’, 자연과 인간, 패션과 문화가 상호 교류하고 교감하는 ‘열린 문화 공간’, 생활과 현실 사이에서 새로운 접점을 모색하는 ‘조화의 공간’, 국내외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위한 ‘최적의 작업 공간’, 다양한 문화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교감과 체험의 공간’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로써 늘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게 목적이다. 미술과 공연, 음악과 패션이라는 다른 색을 지닌 것들이 Fun & 樂에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공통분모를 가진 하나의 문화가 되는 것이다. 숲 속 양장점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디자이너 최복호의 소망이 실현된 Fun & 樂의 달달한 사과와 커피 향이 청도 일대에 앞으로 더욱 짙어지리라 본다.

[어울림의 미학, 아트 갤러리 청담]

봄에는 복숭아꽃으로 빨갛게 물들고 여름에는 연꽃이 한 가득 피어난다. 모든 생명이 얼어붙은 듯한 추운 겨울에도 철새들이 찾아와 겨울을 난다. 바로 계절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청도의 유등 연지이다. 유등 연지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멋진 풍경을 눈에 담거나 사진기에 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유등 연지를 끼고 돌아가면 유등 연지 전체를 정원으로 거느리고 있는 아트 갤러리 청담이 나온다. 갤러리 맞은편에는 군자정(君子亭)이라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 중종모헌(慕軒) 이육(李育)이 강학하던 곳으로 수많은 학자들이 찾아와 학문을 강론한 곳이기도 하다. 무오사화 때 진도로, 갑자사화 때 다시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난 후에 이육은 세상에 대한 뜻을 끊고 청도에 들어와 연꽃을 심고 군자정을 지어 학문에만 매진하였다. 유등 연지를 두고 아트 갤러리 청담과 군자정이 한자리에 있어 학문과 예술, 전통과 현대가 그리 멀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마당에 들어서면 조각가 오채현의 작품인 호랑이 조각상이 먼저 맞이한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적절한 위치에 피어 있으며 잘 정돈된 나무와 풀, 꽃, 심지어 뒤뜰의 장독대까지 자연과 소통하면서도 현대적인 건물과도 조화를 이룬다. 아트 갤러리 청담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미술 감독인 김성락이 자신의 소장품을 가지고 2006년에 문을 열었다. 김성락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을 뿐 처음에는 갤러리를 어떻게 운영하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 선정에서부터 작품 진열, 그리고 마당의 나무와 풀을 심는 것까지 혼자서 해냈다고 한다. 그래도 현대 미술을 공부하고, 대중에게 새로운 미술 작품을 소개하고, 약 3,300㎡[1,000평]에 가까운 공간을 가꾸는 일이 매우 즐겁다고 한다.

아트 갤러리 청담은 두 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 전시실에는 현대 미술 전시실과 아트 숍 겸 카페가 있어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제2 전시실에는 도자기 전시실 및 전통 찻집이 있어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고 있다. 커피 마시러 왔다가 도자기를 사고 차를 마시러 왔다가 그림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김성락의 말처럼 이곳의 공간들은 자신들의 색을 가지면서도 잘 어우러져 있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다. 개관 이후 매년 15차례 이상의 기획전을 진행할 정도로 아트 갤러리 청담의 역할은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성락은 국적이나 지역을 초월하여 가능성 있고 역량 있는 작가를 적극적으로 초대하여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콘크리트 위에 걸린 작품 사이사이로 보이는 유등 연지를 보면서 아트 갤러리 청담의 그림과 도자기들이 결코 자연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천천히 성장해 가는 예술 도시, 청도]

이외에도 청도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살고 있다. 예술가들이 청도를 찾아오는 이유는 자연과 삶이 하나인 것처럼 자연의 예술을 담고 싶어서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중단된 청도 창작 예술인촌 사업도 어쩌면 처음과 끝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결코 인위적인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예술가들과 주민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길을 정하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 자신의 길에서 최선을 다한 그들이 만들어 놓은 흔적은 말로 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자연과 함께 피어나는 청도의 문화·예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청도군의 창작 예술인촌 사업 역시 오늘도 청도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다.

[참고문헌]
  • 『대구 문화』 7(2010)
  • 「국제 라쿠 심포지엄 코리아 2001 팸플릿」
  • 비슬 문화촌(http://www.bise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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