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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500
한자 美術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손복수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미를 조형적으로 형상화하는 회화, 공예, 서예 등의 모든 예술 활동.

[변천]

청도군은 경주와 함께 신라 불교의 초전지로서 운문사, 적천사, 용천사, 대비사 등의 사찰을 중심으로 신라 때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불교 미술 문화를 꽃피웠다.

조선 시대 청도의 미술 활동으로 적천사 괘불[높이 12.47m, 너비 5.3m]은 1695년(숙종 21)에 그려진 것으로 네모진 얼굴, 비현실적으로 묘사된 신체 등이 묵중하고 중후한 느낌을 들게 한다. 이운룡 장군 영정[가로 146㎝, 세로 178㎝]은 17세기 초 공신도상(功臣圖像)의 전형적인 형식을 보여주는 가작이다. 고운 영정[최치원, 가로 74㎝, 세로 105㎝]은 안면묘사와 옷 주름 처리에 나타난 선염법의 사용, 바닥에 깔린 돗자리의 형식 등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그린 이모본(移模本)으로 여겨진다.

근대 이후 청도군에서 행해진 최초의 미술 행사는 1925년 12월과 1926년 1월 두 번에 걸쳐 열린 ‘서화 전람회’를 꼽을 수 있다. 이는 1737년(영조 13)에 지어진 조선 시대 관아(官衙) 건물의 하나였던 청도 동헌(淸道東軒)을 도주 학원(道州學院)으로 운영하기 위한 후원 행사로서, 함경남도 북청 출신의 서화가 청파(靑坡)전형윤(全亨胤)의 도움으로 개최되었다.

[근현대 미술가]

청도 지역의 대표적인 근현대 미술인은 석강곽석규, 석농김우곤, 청도박일주, 소운김수곤, 박상락 등이 있다.

1. 곽석규(郭錫圭)

1925년과 1926년에 개최된 서화 전람회는 당시 교남 서화 연구회와 서화 협회 등에서 정회원으로 활동했던 석강곽석규가 청도 지역에서 적극적인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부문이다. 또한 석재서병오와 교우가 깊어 그와 함께 대구, 서울 이외 전국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함께 하기도 했다.

2. 김우곤(金友坤)

석농 김우곤은 청도와 대구를 중심으로 비교적 많은 서화 활동을 펼쳤다. 6세 때부터 한학에 입문하여 학문을 익혔고, 어릴 적부터 서화에 천재적 소질이 있어 전·예·해·행·초서 및 사군자에 통달하며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이루었다.

1920년대 후반에는 대구의 교남 서화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5년에는 경주김유신 장군의 묘비에 새겨진 1천여 자를 일자일획도 개서(改書)하지 않고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경주 지역 서예가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1925년에 창립된 청도 유도회 창립 회원으로도 활동을 했던 김우곤은 모계 학원 초대 상무 이사로 육영 사업에 헌신하였다.

3. 박일주

박일주(朴一舟)[1910∼1995]는 1910년 출생 이후 유년기 시절을 청도에서 보냈으며 본명은 박성규이다. 경상북도 청도 출신 최초의 서양화가라 할 수 있는 박일주는 소농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당시 우리나라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에 진학해 일제 강점기 실의에 빠진 청도 군민들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재능을 일본인 미술 교사로부터 인정받은 후 그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 동경 문화 학원(東京文化學院) 미술과에 진학해 1935년 제1회 졸업생이 되었고 화가로서 한 평생을 살았다.

4. 김수곤

소운 김수곤(金洙坤)[1913∼1968]은 1931년 서울휘문 고등 보통학교에서 수학 중 미술 교사 장발(張勃)과 서양화가 도상봉(都相鳳)의 권유로 미술에 입문하였다. 1935년 일본 태평양 미술 학교(太平洋美術學校) 서양화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서양화가로 활동을 하였다.

1933년 당시 동경에 유학중이던 김학준을 회장으로 주경, 심형구, 김인승, 조병덕, 김원, 이중섭, 이유태, 구종서, 이쾌대 등이 결성한 백우회(白牛會)는 한국 화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주경의 주선으로 가입한 백우회의 활동을 통하여 다양한 교우 관계와 함께 작품 활동을 하였고 1938년 졸업과 함께 귀국하게 되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주경, 박상옥이 중심이 된 조선건국위원회 주최 해방 기념전과 이듬해에 발기한 경북 미술 연구회에 주경, 김창락 등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1947년 고향인 모계 중학교 미술 교사로 부임하면서 청도에서의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당시 작품의 소재는 장미와 선인장, 난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정물과 풍경들을 수채화와 유화로 제작 하였다.

1951년부터는 청구대학(현, 영남대학교)에 출강을 하며 대구 지역의 작가들과도 많은 친분을 가졌으며, 김수명, 정점식, 박인채, 서창환 등과도 함께 활동하였다. 1952년에는 모계 중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청도에서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진해 공군 사관학교와 부산, 마산 등에서 교직 활동을 이어갔으며 1957년 대한민국 의용단 마산 교육 대장 활동을 마치고 다시 청도로 귀향하였다. 1957년에는 서울서라벌 예술 대학에 출강하며 스승인 도상봉과도 잦은 교분을 가졌다.

5. 박상락

박상락[1925∼1978]은 휘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친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홍아 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1943년에는 북경(北京)에서 열린 미술 전람회에서 유화 우인상[20호]으로 입상하며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부친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귀국 후 부친이 사망하자 다시 본격적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6년 ‘남조선 미술 동맹’ 가입을 시작으로 1947년에는 서울 예술 대학 미술부 도안과의 청강생으로 전문 미술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북한 의용군에 입대해 해군으로 근무하다 월북하고 만다. 그리고 북한에서 유화가로 나섰다가 주로 선전화 창작 활동에 정진해 1975년에는 공훈 예술가의 칭호를 수여 받기도 했다.

[현대 청도군의 미술]

1950년대까지 청도 미술은 이렇다 할 작품이나 대회가 없었지만 미술 교육에 대한 열기는 다른 지역보다 뜨거웠다고 말할 수 있다. “청도 교육청의 주최로 군내 28개 초등학교 미술 담당 교사들의 연수가 중앙 초등학교에서 성황리 개최되었다.”라는 당시 보도는 청도 지역의 미술에 대한 관심을 대변해 준다.

1968년에는 청도군의 초등학교 미술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국 아동 미술 협회 청도군 지부’가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회장 김동길(金東吉), 부회장 최준호, 김종대, 박세식, 김건, 김인환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청도군 미술 교사들이 『서클 회보』를 정기적으로 발행하며 청도 지역의 화가 지망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다. 당시 청도 지역의 미술 교육이란 변변한 미술 교육 센터가 전무하여 화가 지망생들의 미술 교육은 지역 미술 교사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청도 교육청의 주최로 청도 미술 교사들에게 순회 특강 형식으로 미술 특강이 다채롭게 개최되었다.

1970년대 한국 화단은 청도 출신의 소산박대성(朴大成)의 활동이 단연 돋보였던 시기였다. 1974년 대만 공작 화랑 초대전을 시작으로 대구매일 신문사 화랑 개관 기념 초대전[1975년], 일본후쿠오카시선화랑 개인전[1976년]으로 이어지고, 1978년 제1회 중앙 미술 대전 장려상과 1979년 제2회 중앙 미술 대전 대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전통적인 동양화 정신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혁신적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박대성은 사생 정신에서 오는 현실에 대한 예리한 눈과 비판적 해석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청도군 운문면 대천리가 고향인 그는 청도에서 창작활동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청도에 대한 애정은 여느 작가 못지않게 깊고 섬세하다. 현재 청도 인근인 경주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대성은 분명 청도가 나은 대표 화가이다.

그 뒤로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않던 청도군의 미술은 1978년 ‘청도 예술 문화 연구회’가 조직되면서 다시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1965년 해체된 ‘도주 청년회’를 계승하고, 1983년에는 도주 문화제를 개최하였다. 도주 문화제는 당시 문화와 예술인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 주요 행사로 학생 미술 실기 대회가 개최되었다.

1990년대 중반 청도군의 미술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청도가 대구와 인접한 전원도시로 각광받자 미술작가, 도예가, 시인, 소설가, 교수들이 하나 둘씩 모이게 되었고, 이들이 만든 스튜디오와 갤러리 등으로 청도는 예술 도시로 거듭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미술인들의 유입으로 2002년 드디어 ‘청도 미술 협회’가 결성되었고, 2003년 2월 사단 법인 한국 미술 협회로부터 인준을 받아 ‘사단 법인 한국 미술 협회 청도 지부’로 인가를 받았다. 청도 미술 협회 창립과 함께 2000년대 이후로 청도군은 전시회, 미술 대회, 작품 활동, 대외 공모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

청도군의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갤러리 및 전시관을 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이다. 당시 대구에서 활동하던 많은 작가들은 전원도시로 접근성이 용이한 청도로 주거지를 옮긴 약 80여 명의 작가들이 청도군으로 들어와 스튜디오 및 작업실을 마련하였다. 이들을 주축으로 청도군에는 아트 갤러리와 전시관 등이 조성되어 있다. 2011년 현재 청도군에는 아트 갤러리 청담, 갤러리 全 , 갤러리 BK, 목언예원, 단원 갤러리, 갤러리 팔조 등이 위치하며 이들 갤러리는 개인의 작업실 및 커피숍 등의 공간으로 함께 사용되며, 외부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청도군의 미술 행사는 2005년 시작된 2003년 시작된 청도미술협회 창립전, 청도 미술 협회 정기전, 러브 청도전청도 예술제, 청도 향기전, 화랑 학예 경시 대회, 새마을 백일장 및 사생 대회를 비롯하여 다양하고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그리고 한국 전쟁으로 이어지는 동안, 경상북도 청도군의 미술 활동과 화단 형성은 뚜렷하게 두드러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석강곽석규와 관재김경곤, 석농김우곤 등 서화가들의 활동은 청도 미술이 뿌리 내리고 지역 문화의 전통성을 확립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한국 화단의 대표적인 화가들이 청도에서 상당수 배출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청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적 인프라를 갖추고 미술 교육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지역 출신 서화가들과 서양화 1세대인 청도박일주, 소운김수곤 같은 화가들의 미술 교육에 대한 남다른 지원과 헌신적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 뒤로 청도 중학교 교사 장인규, 부산 사범 대학 미술과를 졸업한 김종직, 서라벌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부임해 온 김동길, 문곤, 이경직 등이 학생들을 지도하여 교내 작품전을 열었다. 또한 1972년에 모계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부임한 문곤의 지도로 학생 작품전이 개최되면서 청도 지역 학생들의 미술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미술 관련 대학에 진학하는 숫자가 늘어났으며, 이로써 청도의 미술 활동이 본격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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