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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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 시대의 무덤 청도 지역은 크게 동쪽의 동창천 유역권과 서쪽의 청도천 유역권으로 구분된다. 동창천은 동쪽의 경상북도 경주시와의 경계에서 서남으로 흘러 청도군의 남쪽 경계를 지나고, 청도천은 서북쪽 대구광역시와의 경계인 각북면에서 발원하여 서쪽 경상남도 창녕군과의 경계인 풍각면에서 서로 흐르는 소하천과 합류하여 동으로 흐르다 화양읍을 지나면서 남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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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서들을 사이에 두고 고철, 근바우, 하건지, 둔직이 등의 마을이 합쳐서 형성된 마을이다. 고철은 고찰(古刹)이 변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하기도 한다. 마을 뒤편에 절과 관련된 지명이 대부분 남아 있다. 근바우는 이서국 당시에 백곡을 방위하기 위해서 군사들이 주둔해서 근방위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금암(琴巖)에 마을이 형성되어 금바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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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곡이란 산골의 모양을 따라 지은 이름으로, 큰 골짜기라고 해서 대곡리라 이름 붙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상대곡과 하대곡을 병합하여 대곡동이 되었으며, 이후 동명 개칭에 따라 대곡리가 되었다. 마을로는 한실·가실·송정(松亭)·중리(中里) 등이 있다. 대곡리의 큰골 마을은 한실이라고 이름하며, 한문으로는 대곡이라고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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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고적(卞高迪)을 시조로 하고 변계량(卞季良)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변씨(卞氏)는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로 주(周)나라 문왕의 여섯째 아들인 조숙진탁(曺叔振鐸)의 후손이 변(卞)이라는 땅을 하사받고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초계 변씨(草溪卞氏)는 당(唐)나라 천보(天寶) 연간에 예부 상서(禮部尙書)을 지낸 변원(卞源)이 743년(경덕왕 2) 8학사의 한 사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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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고적(卞高迪)을 시조로 하고 변계량(卞季良)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변씨(卞氏)는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로 주(周)나라 문왕의 여섯째 아들인 조숙진탁(曺叔振鐸)의 후손이 변(卞)이라는 땅을 하사받고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초계 변씨(草溪卞氏)는 당(唐)나라 천보(天寶) 연간에 예부 상서(禮部尙書)을 지낸 변원(卞源)이 743년(경덕왕 2) 8학사의 한 사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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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안, 세월 등 6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신촌 1리 신안은 1500년대 초 밀양 박씨 박계은이 입향하여 자리 잡은 밀양 박씨 집성촌이며, 1900년대 마지막 유림장을 지낸 인암 박효수(朴孝秀)의 생가가 위치한 곳이다. 조선 명종 때 박호가 고향인 신촌으로 가져와 접목한 청도 반시의 시조목 두 그루도 함께 전한다. 자양산 아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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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떼. 신촌리 고분 떼는 신라 고분 떼로 신촌리 산4 일대에 북쪽의 산지에서 남쪽으로 뻗는 구릉의 말단에 분포한다. 봉토분 20여 기가 남아 있으며, 도굴로 인해 피해를 입은 돌덧널무덤이 다수 확인된다. 주변에는 신라 시대 토기 조각이 산재한다. 5∼6세기의 신라 고분 떼로 판단된다. 신촌리 고분 떼는 청도천 중류 지역에 많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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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에 있는 밀양 박씨 집성 마을. 신촌 또는 신안이라 불리는데, 중국의 성리학자 주희가 살던 신안산과 같이 꾸며 그의 학문과 사상에 바탕을 두고 살고자 하는 뜻에서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밀양 박씨 밀직부사공파의 집성촌으로 『택리지(擇里志)』에 1400년경 박영입이 택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을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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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에 있는 유물 산포지. 신촌리 유물 산포지는 세 곳으로 이서면 신촌리 자양지(紫陽池)와 신안 마을, 화룡 마을 구릉 사면 말단부에 있다. 신촌리 유물 산포지 ①은 이서면 신촌 1리 자양지 북쪽에 있는 구릉 사면이다. 청도에서 대구 방면으로 이서로를 따라 신촌리에 들어서 명덕지와 마을을 지나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자양지가 나타난다.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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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차북면(次北面)의 중심 마을이었지만,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과 함께 면사무소가 학산리로 이전하면서 시장도 옮겨 가 변두리가 된 마을이다. 팔조령을 넘나들던 관로변(官路邊)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조선 시대에 원(院)을 두어 양원(陽院)이라 했다. 원을 두어 행려자들의 숙소를 제공하였던 곳에 시장(市場)을 개설해서 인근의 주민들에게 편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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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청도군의 북서쪽에 위치한 이서면은 원래 상북면과 차북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이서국이라는 옛 이름을 따 면의 이름을 개칭하였다. 이서면은 산서 지역에서는 가장 큰 면이며, 집성촌이 가장 많은 곳으로 이 때문에 재실과 정자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서면은 원래 상북면과 차북면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두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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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학산리에 있는 이서면 관할 행정 기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위한 행정 개혁의 일환으로 정부가 추진한 구·동 기능 전환의 결과로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는 주민 문화 복지 편익 시설 및 공간이다. 교통·통신의 발달 등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 읍·면·동사무소의 쇠퇴된 기능을 인력 축소와 함께 민원과 복지 기능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생긴 유휴 시설이 문화·복지·자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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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에 있는 서원. 일청재(逸淸齋) 박호(朴虎), 모효재(慕孝齋) 박지현(朴之賢), 경양재(景陽齋) 박태고(朴太古), 죽옹(竹翁) 박중채(朴重采)를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 270에 있다. 대구 팔조령에서 청도로 지나가는 30호선 국도를 따라 오다가 이서면 덕신 경로 회관에서 우회전하여 약 1,500m 정도 신촌리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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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모여서 대대로 생활을 같이해 온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은 삼국 시대 또는 고려 시대 이후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청도 지역에서는 고려 후기로 추정되며, 본격적으로 집성촌이 형성된 것은 조선 전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조선 후기인 16세기 중엽 이후에서 17세기 이후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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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모여서 대대로 생활을 같이해 온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은 삼국 시대 또는 고려 시대 이후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청도 지역에서는 고려 후기로 추정되며, 본격적으로 집성촌이 형성된 것은 조선 전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조선 후기인 16세기 중엽 이후에서 17세기 이후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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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 세월 마을에 있는 청도 반시의 효시가 되는 감나무. 세월 감나무는 조선 시대 세월 마을 출신 관료가 평해의 토종 감나무 접수(椄穗)를 가지고 와서 청도의 감나무에 접목한 나무이다. 이 감나무가 씨가 없는 청도 반시의 원종이 되었다. 감나무의 수령은 257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감나무의 특성상 오래 자생할 수 없는 품종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는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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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를 연결하는 터널. 팔조령 아래에 위치하므로 팔조령 터널이라고 부른다. 청도군과 대구광역시를 잇는 국가 지원 지방도 가창∼각남 간 도로 4차선 총 10.77km 중 팔조령을 지나가는 터널 716m 구간이다. 해발 380m인 팔조령 아래 해발 250m 지점에 건설된 팔조령 터널은 가파르고 급경사로 잦은 교통사고를 유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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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서면의 행정·교육 중심지로 1800년경 밀성 박씨 박윤덕이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다. 1914년 병합된 학암(鶴巖) 그리고 모산(牟山)에서 ‘학’ 자와 ‘산’ 자를 따서 학산리라 하였다. 모산(牟山), 학암(鶴巖), 주암(珠巖) 등의 마을이 있다. 주암 마을은 중심 부분에 붉은 바위가 있어 주암이라고 한다. 이 붉은 바위는 고인돌로, 주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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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경상북도 청도군 서쪽에 위치한 읍으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청도의 중심지역이다. 현재는 청도군 행정 구역 중 청도읍 다음으로 인구가 가장 많다. 화양읍은 역사가 기록된 이래 청도의 중심이 된 곳으로 과거부터 화양읍은 아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전에는 상읍면(上邑面) 또는 상읍내면(上邑內面)으로 불렸던 지금의 화양읍은 행정 구역 통폐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