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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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인간적 요구와 건축 재료로 실용적·미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구조물. 건축(建築)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쉼터와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위한 유용한 공간도 제공한다. 따라서 용도에 맞는 적절한 재료를 가장 합리적으로 사용하여 예술적인 공간형태를 갖추면서 견실한 구조로 편리성과 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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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인간적 요구와 건축 재료로 실용적·미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구조물. 건축(建築)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쉼터와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위한 유용한 공간도 제공한다. 따라서 용도에 맞는 적절한 재료를 가장 합리적으로 사용하여 예술적인 공간형태를 갖추면서 견실한 구조로 편리성과 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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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과 관련하여 1945년 이전에 작성된 문서.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작성된 고문서와 관련된 지역은 조선 시대 경상도 청도군(淸道郡), 17세기 후반 대구부(大邱府)에 예속되었다가 1906년 환속된 풍각현(豊角縣)[지금의 청도군 각북면·각남면·풍각면], 밀양부 고미면(古弥面)[지금의 청도군 운문면 일대] 등이 있다. 대상 고문서는 1945년 이전에 관부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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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촌과 감나무골을 합해서 만들어진 동네이다. 재령 이씨 집성촌으로 금호 서원이 위치한다. 『운문사 사적지』에 ‘사납기에는 금오촌’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마을이 바로 금촌리라고 한다. 금오촌은 금촌리과 고철리의 넓은 들이다. 조선 시대에는 차북면에 속한 곳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촌동이라 해서 이서면에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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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흥선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금호 서원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우고 경상 우수사 겸 삼도 수군통제사에 이른 동계(東溪) 이운룡(李雲龍)[1562∼1610] 장군과 향산(鄕山) 이백신(李白新)의 영정(影幀)을 봉안하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금호 서원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사무소 앞을 지나는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에서 팔조령 방향으로 가다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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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에서 배출된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의 문무 관인. 문무 관인이란 문관이거나 무관을 역임한 관인을 말한다. 고려나 조선 시대의 관직 운영은 크게 문관과 무관 두 개의 반열을 두었다. 조회 때에 국왕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문반, 서쪽에는 무반이 정렬하였기 때문에 이를 동반 혹은 서반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런 제도는 고려에서부터 비롯되어 조선 말까지 이어졌다. 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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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후기까지 상남면에 소속된 마을이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매전면으로 편입되었다. 북지란 뒷마을이라는 뜻이다. 임진왜란 때 수군통제사를 지낸 이운룡 장군의 출생지가 바로 앞 매전면 온막리 명대 마을이다. 명계 서원(明溪書院)이 있었던 곳에서 뒷마을이기 때문에 북지(北旨)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까지 상남면에 소속된 마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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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북지리에 있는 영일 정씨 집성 마을. 북지(北旨)란 뒷마을이라는 뜻이 된다. 임진왜란 때 수군통제사를 지낸 이운룡 장군의 태생지가 바로 앞 명대리로, 명대 서원이 있었던 곳에서 뒷마을이기 때문에 북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매전면 북지리 영일 정씨는 영천에서 이거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입향 경위는 알 수 없다. 『마을 지명 유래지』에는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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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해 설치된 조선 시대 사립 교육 기관. 서원 교육의 목적은 법성현(法聖賢)과 양이(養吏)의 두 가지이다. 서원의 교육 활동은 성리학을 그 학문적 기초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서원의 교육 목표는 곧 성리학의 교육 목표와 같았다. 성리학은 인간의 심성에 내재된 천리(天理)를 실현함으로써 도덕적 완성을 추구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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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에 간행된 경상도 청도군 출신의 무신 이운룡의 실기. 『식성군 실기(息城君 實記)』는 임진왜란 당시 경상 좌수사로 활약했던 이운룡(李雲龍)[1562∼1610]의 실기(實記)이다. 이운룡은 전란이 끝난 1604년(선조 37) 군공으로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으로 책록되었으며 식성군에 봉해졌다. 이운룡의 실기에 수록된 자료들은 가전(家傳)되어 오다 『식성군 실기』라는 제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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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식성군 이운룡이 기록한 일기와 등록. 임진왜란 때 원균의 휘하에서 원균을 설득하여 충무공 이순신과 연합 작전으로 옥포 해전의 선봉에서 활약했던 식성군 이운룡(李雲龍)[1562∼1610] 장군이 삼도 수군 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재직 시 임진왜란 후의 상황 등을 기록한 일기 1책과 『계본 등록(啓本謄錄)』 2책이다. 두 책은 청도에 살던 이운룡의 11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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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남면에서 매전면으로 편입된 마을로 상온막과 원전 그리고 당걸 마을이 합하였다. 원래의 명칭은 명대동(明臺洞)이었고, 당시 만석꾼이 마을 중심에 살고 있었는데 측량을 하고 마을 이름을 어떻게 짓겠느냐는 관리의 물음에 온막(溫幕)이라 하자 해서 온막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상온막이 원래의 온막인데, 명대 대신 온막이라고 한 이유는 당시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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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에서 있는 철성 이씨 집성 마을. 정확한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으며, 다만 마을을 이르기 위한 오르막길이 많아 오르막이라 불리는 것이 와전되어 온막리가 되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을 입구에는 선무공신 식성군 이운룡 장군이 심었다고 알려져 있는 400년 용송(龍松)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고사되어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용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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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이운룡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옥포 만호로 있으면서 패전한 원균(元均)을 대신해, 이순신(李舜臣)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순신의 막하에서 여러 번 싸움에 나아가 큰 전공을 세워,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가 되었다. 오랑캐가 북쪽 변방에 침입했을 때 함경남도 병마 절도사가 되어 적을 진압했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경견(景見), 호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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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룡이 선조로부터 1604년에 받은 공신 교서와 1596년에 받은 교지. 이운룡(李雲龍)[1562∼1610]은 경상도 청도군 출신의 대표적인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세운 공으로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봉되었다. 그 과정에서 발급된 공신 교서(功臣敎書)와 교지(敎旨)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2013년 현재 이운룡의 후손인 재령 이씨(載寧李氏) 지암 종중(砥巖宗中)에서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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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에 있던 조선 후기 무신인 이운룡의 영정. 이운룡(李雲龍)[1562∼1610] 장군은 청도 출신의 무신으로 자는 경명이고, 호는 동계이다. 1585년(선조 18)에 24세로 무과에 급제하여 유성룡의 천거로 1587년(선조 20)에 선전관에 오르고 임진왜란 때 옥포만호로 많은 공을 세운 후 응천 현감에 승진되었다. 그 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부장으로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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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청도 지역은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호구 수는 640호 6,718인으로, 절반의 토지만 비옥했고, 풍속은 검솔했으며,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 군사 동원 체제인 진관은 대구도(大丘道)에 귀속되어 청도 군수가 경상좌도의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를 겸임하였다. 고려 후기 이래로 대성(大姓)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