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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242
한자 溫幕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매전면 온막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매전면 온막동에서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4.01㎢
가구수 189
인구[남,여] 352명[남자 157명, 여자 195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상남면에서 매전면으로 편입된 마을로 상온막과 원전 그리고 당걸 마을이 합하였다.

[명칭 유래]

원래의 명칭은 명대동(明臺洞)이었고, 당시 만석꾼이 마을 중심에 살고 있었는데 측량을 하고 마을 이름을 어떻게 짓겠느냐는 관리의 물음에 온막(溫幕)이라 하자 해서 온막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상온막이 원래의 온막인데, 명대 대신 온막이라고 한 이유는 당시 도둑이 들끓어서 소문이 나면 도둑떼에게 당할까 봐서 그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도군 상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온막동이라 하여 매전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온막동에서 온막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용당산(龍塘山) 줄기가 불쑥 튀어나와 덕택으로 운문천[동창천]이 장연리 쪽으로 밀려가면서 형성된 원전들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은 모두 소하천을 끼고 형성되었으며 경작지는 대부분 운문천의 물을 이용하였다. 원전들은 넓은 곡창지대여서 일찍이 경지 정리를 하였으나 벼농사는 경제적 이익이 적은 관계로 서서히 경제적 이익이 많은 과수 쪽으로 돌리고 있어 지금은 많은 전답이 대추밭으로 변해 가고 있다. 반면 산비탈 지역의 밭에는 감나무를 많이 심어 감 농사를 함께 하고 있다. 용당산과 강 건너 구만산이 높이 감싸고 있어 바람 피해는 없을 뿐만 아니라, 운문천이 곁으로 흐르고 있어 한해(旱害)를 모르고 사는 곳이다.

[현황]

2012년 7월 현재 면적은 4.01㎢이며, 총 189가구에 352명[남자 157, 여자 19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매전면 호화리, 서북쪽은 매전면 용산리, 서남쪽은 매전면 예전리, 남쪽은 매전면 장연리, 북쪽은 매전면 북지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온막(溫幕), 명대(明臺), 원전(院前)과 당걸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원전은 명대리 뒷산인 자미산에 명계 서원(明溪書院)이 있었는데 서원의 토지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원전(院田)이고, 쓰기는 원전이라 하였다. 당걸은 예전리[용전리]와 경계 지점에 큰 당나무가 있어 당걸이라 하였다. 매년 당제를 지내왔으나 지금은 당제도 지내지 않고 당나무도 없어졌다. 온막은 운문천이 가져다준 충적토를 토대로 현재는 산동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농경지를 가지고 있고, 일찍이 경지 정리를 한 곳이다.

상온막은 용연동(龍淵洞) 아래 용당산 기슭 중산천(中山川) 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옛 지도에는 명대동온막동을 함께 표기하였다. 명대동에는 수군통제사를 지낸 식성군 이운룡(李雲龍)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이운룡이 직접 심었다는 용송이 있었는데 수령이 오래되어 죽었으며, 그 자리에 대신 은행나무를 심고 표지석을 세워 두었다. 곁에는 효자 박윤손의 비석도 함께 서 있다.

원전들 가운데에는 별집 바위가 있었는데 경지를 정리할 때 땅에 묻어버려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이 바위에 성혈이 무수히 많아서 별집 바위라고 불렀다.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별집 바위 곁에 달집을 지어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온막리의 중심부를 남서∼북동 방향으로 국도 58호선이 지나고 있다. 매전 초등학교도 2011년을 폐교가 되었고, 오일장도 없어졌다. 명계 서원이 있었던 곳 뒤편 자미산 양지바른 곳에 전원 주택지를 개발하였으며, 전원생활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서 새로운 마을을 이루어 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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