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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202
한자 琴村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이서면 금촌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이서면 금촌동에서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2.07㎢
가구수 84가구
인구[남,여] 160명[남자 82명, 여자 78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금촌과 감나무골을 합해서 만들어진 동네이다. 재령 이씨 집성촌으로 금호 서원이 위치한다.

[명칭 유래]

『운문사 사적지』에 ‘사납기에는 금오촌’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마을이 바로 금촌리라고 한다. 금오촌은 금촌리고철리의 넓은 들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차북면에 속한 곳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촌동이라 해서 이서면에 통합되었다. 1988년 금촌동에서 금촌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삼성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학산리로 내려가고, 또 한 줄기가 고철리로 내려가는 가운데 생긴 들판에 자리하고 있어 경작지가 많다. 문수리흥선리를 거쳐 내려오는 물이 마을 좌우로 흘러 마을 끝 부분에서 합류하여 학산리(모산)으로 내려간다. 금촌못이라고 알려진 풍양지는 청도군 내에서도 상당히 큰 못에 속한다. 마을의 앞산은 장군독이라 불리는데, 장군만이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하는 항아리처럼 생긴 큰 바위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금촌리는 조금 넓은 곡간의 중간에 위치하여 있고 동쪽과 서쪽은 산으로, 남쪽과 북쪽은 트여 있다. 경작지는 사방으로 형성되어 있고, 밭으로 사용하고 있는 마을 주변은 대부분 과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가까운 산은 외지인의 묘지로 많이 양도된 곳이 많다.

[현황]

2012년 6월 현재 면적은 2.07㎢이며, 총 84가구에 160명[남자 82명, 여자 7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이서면 고철리·토평리, 서쪽은 이서면 수야리, 남쪽은 이서면 학산리, 북쪽은 이서면 흥선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금촌 마을이 있다.

현재의 금촌 마을 서쪽 산 아래에 시목리(柿木里) 또는 감나무골이라는 몇 집 안 되는 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고 농지로 변해 있다. 경지가 깔끔하게 정리된 마을 앞들은 논을 밭으로 변경하여 과수를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풍양지 아래에 대형 우사가 있다.

조선 전기의 『경상도 속찬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는 ‘금물법지(今勿法池)’가 나오는데, 현재의 풍양지의 전신이라고 한다. 한때 지하수를 개발하기 전에 풍양지는 금촌들과 고철들을 적셔주는 감로수였다. 지금은 대부분 물이 모자라는 경작지는 지하수를 개발하여 1년 내내 물 부족함이 없는 농사를 짓는 농촌으로 탈바꿈하였다.

금촌리 중간을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이 지나고 있다. 이 길을 따라 풍각 버스 정류소에서 출발하여 대구 남부 공용 정류장으로 이동하는 버스가 학산리에서 금촌리를 지나 고철리로 이동한다. 또 청도 공용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하여 문수리로 이동하는 버스가 금촌리 마을 안을 지나고 있다.

밀양 박씨경모재가 있고, 재령 이씨의 연호정이 있다. 임진왜란충무공의 참모장 역할을 하며 공을 세웠고 충무공 서거 후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식성군 이운룡의 영정이 있는 금호 서원[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08호]이 위치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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