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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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토기, 자기, 기와 등을 굽는 가마가 있던 자리. 경상북도 청도군 지역의 토기 가마터는 각남면과 풍각면을 중심으로 하는 산서에 주로 분포하며, 자기 가마터는 운문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동 지방에 주로 분포한다. 이는 청도군의 자연 지형과 연관되는 것으로 도자기를 굽기 위한 충분한 땔감이 있는 운문산 주변에는 자기 가마터가 자리 잡고, 일반 가마터는 태토를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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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토기, 자기, 기와 등을 굽는 가마가 있던 자리. 경상북도 청도군 지역의 토기 가마터는 각남면과 풍각면을 중심으로 하는 산서에 주로 분포하며, 자기 가마터는 운문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동 지방에 주로 분포한다. 이는 청도군의 자연 지형과 연관되는 것으로 도자기를 굽기 위한 충분한 땔감이 있는 운문산 주변에는 자기 가마터가 자리 잡고, 일반 가마터는 태토를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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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읍성은 지금의 시청이나 군청처럼 지방 행정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교육·제사 기능까지 갖추었던 성곽을 말한다. 즉 유사시 적이 침입했을 때에는 지역 주민들이 읍성에 들어가 적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게 여러 방어 시설을 갖추었고, 지방 도시의 대민 행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읍성은 산성과 달리 유사시에는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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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지역에 있는 누각과 정자. 누정은 자연 경관이 좋은 곳을 세우진 건조물로, 관경(觀景)·은거(隱居)·수계(修稧)·연락(宴樂)·유상(遊賞)·독서이양(讀書頤養)·휴식(休息)·치화(治化)의 표상처 등의 구실을 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정서가 자연에 부여된 자리 내지 그 자리에 선 건조물이 곧 누정이다. 누정은 궁궐을 비롯한 관아로부터 지배 계급인 상류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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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시대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두야보 부곡(豆也保部曲)은 밀양군의 임내(任內)로 청도군에 있었던 월경처(越境處)로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밀양군 연혁 조에 처음 기록이 나타난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청도군 월경처에 두야보 부곡은 동촌 상곡리(上谷里)와 서촌 향인촌(向仁村), 동촌 고미리(古㫆里)와 정역리(井亦里)가 월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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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시기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대곡리 일대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각종 지리지에 따르면 청도군에는 일찍이 밀양군의 임내(任內)인 두야보 부곡(豆也保部曲)이 있었다고 한다. 청도군에 직접 속한 부곡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청도군 읍지(1879)』에 의하면 매전 부곡(買田部曲)[역이 있음], 북곡 부곡(北谷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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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신라 풍각현의 옛 지명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상화촌현은 757년(경덕왕 16) 지방 제도 개편으로 유산현이라고 개칭되기 전까지 불리던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일대는 신라 때에는 상화촌현으로 불리었다. 관련 기록의 부족으로 제정 경위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 상화촌현의 지명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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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상북도 청도 지역인 조선 시대 교통도 성현도에 파견되던 종6품의 벼슬아치. 경상북도 청도 지역인 성현도(省峴道)에 파견되어 인근의 소속 역을 관장하던 종6품의 벼슬아치이다.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역승(驛丞) 제도가 1535년(중종 30)에 완전히 폐지되고 찰방 체제로 바뀌었다. 조선 시대 찰방은 역리(驛吏)를 포함한 역민의 관리, 역마 보급, 사신 접대 등을 총괄하는 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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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구촌리·지전리와 청도읍 거연리에 있는 산성. 오례산성(烏禮山城)은 일명 오혜산성(烏惠山城), 오례산성(鰲禮山城), 구도산성(仇刀山城)이라 불렀으며, 삼국 시대[신라]에 축성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에 의하면 신라는 3산 5악 등 명산대천에 대사, 중사, 소사를 지냈는데, 대사를 지낸 3산 중에서 혈례산(穴禮山)이 지금의 오례산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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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구촌리·지전리와 청도읍 거연리에 있는 산성. 오례산성(烏禮山城)은 일명 오혜산성(烏惠山城), 오례산성(鰲禮山城), 구도산성(仇刀山城)이라 불렀으며, 삼국 시대[신라]에 축성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에 의하면 신라는 3산 5악 등 명산대천에 대사, 중사, 소사를 지냈는데, 대사를 지낸 3산 중에서 혈례산(穴禮山)이 지금의 오례산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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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었던 초기 성읍 국가. 이서국(伊西國)은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斯盧國)과 음집벌국(音汁伐國), 실직국(悉直國), 압독국(押督國), 조문국(召文國), 감문국(甘文國), 사벌국(沙伐國), 우시산국(于尸山國), 거칠산국(居漆山國) 등과 함께 삼한 시기에 경상도 지역에 존재하였던 소국(小國)이다. 현전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기록인 『삼국사기(三國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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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청도 지역은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호구 수는 640호 6,718인으로, 절반의 토지만 비옥했고, 풍속은 검솔했으며,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 군사 동원 체제인 진관은 대구도(大丘道)에 귀속되어 청도 군수가 경상좌도의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를 겸임하였다. 고려 후기 이래로 대성(大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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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청도 지역에 기반을 둔 토착 성씨. 1432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청도의 토착 성씨로 김(金)·백(白)·(申)·이(李)·조(曺)씨가, 내성(來姓)은 최(崔)·손(孫) 등의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청도의 사찬 군읍지인 『오산지(鰲山誌)』는 최씨와 손씨도 토성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앞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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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청도 팔조리 봉수대(八助里烽燧臺)는 팔조령 도로와 봉화산 사이의 정상부에 설치되어 있다. 이 봉수대는 조선 초기의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상도 속찬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에는 경상도 청도군 소재의 봉화 2처 중 하나이며, 남으로 남산 봉수대(南山烽燧臺), 북으로 대구군 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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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청도 팔조리 봉수대(八助里烽燧臺)는 팔조령 도로와 봉화산 사이의 정상부에 설치되어 있다. 이 봉수대는 조선 초기의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상도 속찬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에는 경상도 청도군 소재의 봉화 2처 중 하나이며, 남으로 남산 봉수대(南山烽燧臺), 북으로 대구군 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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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년부터 1906년까지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각북면·각남면 일대에 있던 행정 구역. 신라 시대의 상화촌현(上火村縣)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유산현(幽山縣)으로 개칭 후 화왕군(火王郡)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의 군현제 개편 때 풍각현(豊角縣)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018년(현종 9)에 밀성군의 속현이 되었다. 이후 1684년(숙종 10)에 풍각현의 4개 면이 대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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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역사, 지리, 풍속, 산업 등을 중심으로 기록한 책. 전통 사회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앙 집권적인 정치가 있었지만, 각 군현 중심으로 향약과 향안 등을 실시하면서 강한 결합을 바탕으로 지방 단위의 공동체 삶을 유지해왔다. 그 결과 각 지방은 개별성과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각 지방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