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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 찰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433
한자 省峴察訪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성현도 - 청도 남성현

[정의]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 지역인 조선 시대 교통도 성현도에 파견되던 종6품의 벼슬아치.

[개설]

경상북도 청도 지역인 성현도(省峴道)에 파견되어 인근의 소속 역을 관장하던 종6품의 벼슬아치이다.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역승(驛丞) 제도가 1535년(중종 30)에 완전히 폐지되고 찰방 체제로 바뀌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시대 찰방은 역리(驛吏)를 포함한 역민의 관리, 역마 보급, 사신 접대 등을 총괄하는 역정(驛政)의 최고 책임자였다.

고려 시대에 파견된 찰방은 주로 대간(臺諫)이나 정랑직(正郎職)에 있는 명망 있는 문신을 지방에 파견하여, 수령의 탐학과 민간의 질병까지도 상세히 고찰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청도 지역에 설치되었던 성현도 찰방은 조선 초기에 들어와 정착된 역참 관리 차원의 종6품 외관이었다.

[관련 기록]

『경국대전』 이전 경관직 찰방 조항, 병전 역참 관련 조항.

『경상도 지리지』 청도군 조항.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청도군 조항.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청도군 조항.

[내용]

서울에서 각 지방에 이르는 중요 도로에 마필(馬匹)과 관원을 두어 공문서를 전달하고 공용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게 한 기관을 역참이라 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여러 개의 역을 묶어 관할하던 교통 행정의 한 단위로 역도(驛道)를 운영하였다. 성현도 역시 여러 역도 중에 하나였다. 역도 구간에서 말과 역졸을 거느리고 일을 맡아 보는 관직을 찰방(察訪)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청도를 중심으로 밀양, 현풍, 경산, 대구 등지에 설치되었던 역을 관할하기 위해 성현역[지금의 남성현]에 찰방을 파견하였으니, 성현도는 종6품의 관직이 파견되던 찰방도였다.

[변천]

조선 시대 성현역도(省峴驛道)는 고려 시대 역참 제도에서 비롯되었는데, 당시 금주도(金州道)[김해]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조선 건국 이후 성현도가 독자적으로 인근 역을 거느리는 찰방도로 승격되었다. 성현도의 역도 체제가 언제부터 편성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1423년(세종 5)에 경상도의 황산도에 소속된 역이 성현도에 합속(合屬) 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에 편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성현도는 종9품의 역승(驛丞) 관할 하에 인근의 용가역, 수안역, 수산신역, 무흘이역, 동음신역, 풍각신역, 온정역, 지내역, 일문역, 쌍산역, 서지역, 청도신역, 매전역, 유천역 등 모두 14개 역이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중앙 정부 차원에서 품계가 낮은 역승을 찰방으로 대치하는 과정에서 성현도 역시 세조 때 찰방이 파견되었고, 이후 『경국대전』에는 다시 조정되어 인근의 16개 역을 관장하는 뼈대를 완성하였다. 찰방이 파견되던 성현역을 비롯하여 서지, 매전, 유천, 오서, 용가, 수안, 무흘, 금동, 양동, 온정, 일문, 내야, 쌍산, 범어, 설화역이 그것이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 『여지도서』에는 관할역이 11개로 줄었다가 『대동지지』에는 19개 역으로 늘어나는 등의 부침이 있었고, 1871년에 편찬된 『성현역지』에는 5개 역이 폐지되고 14개 역만 관할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의의와 평가]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청도 관내에 있던 성현역은 인근 여러 역을 관장하던 찰방이 파견되던 규모가 큰 역이었고, 따라서 역마와 역전(驛田), 역리와 역졸 등은 물론이고 관사 규모까지 매우 큰 역촌이 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는 청도가 한양과 부산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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