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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함안 지역의 역사. 일제 강점기 함안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에 대한 저항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3·1 운동의 경우 어느 지역보다 치열하게 전개되어 일제 무력에 죽임을 당한 사람도 많았고,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식민지 민족 해방 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1914년 3월 1일 부령(府令) 제111호로 상봉면·하봉면·사봉면이...
애국 계몽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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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910년 함안 지역에서 일어난 국권 회복 운동. 애국 계몽 운동은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乙巳條約)에 의하여 국권이 박탈되고 일제의 식민지화가 노골화 되는 시점에서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이다. 함안 지역에서는 대한 협회(大韓協會) 지부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애국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국권 회복 운동의 일환인 애국 계몽 운동이 활성화 된 이유는 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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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대한 협회의 지회. 전국 각 지역에 33개의 지회를 설립하여 활동했던 대한 자강회의 뒤를 이어 기존 대한 자강회의 활동가들과 천도교 계열의 인물들이 힘을 모아 1907년 11월에 결성한 것이 대한 협회이다. 대한 자강회를 계승한 대한 협회는 설립 목적과 활동 방향에서는 대한 자강회와 큰 차이가 없었다. 대한 협회는 기관지로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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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전국적 애국 계몽 운동 단체로 활동했던 대한 협회의 함안 지역 지회.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전국 규모의 애국 계몽 운동 단체로서 1906년 4월에 대한 자강회가 결성되었다. 대한 자강회는 교육과 산업의 진흥, 국민의 지식 함양 등을 목표로 전국 각 지역에 33개의 지회를 설립하였으나 일제 통감부의 탄압으로 1907년 7월 해산되었다. 그 뒤를 이어 기존의 대한...
독립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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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 지배의 모순을 타파하고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함안 지역의 실천 활동. 1900년대 근대적 학교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함안의 독립운동은 1919년 3월 9일 칠북면 이령리연개 장터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청년 운동, 신간회 운동, 협동조합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함안 지역은 1894년 민란을 통하여 개항 체제 아래서 빚어지고 있던 봉건적 모순과 새로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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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초부터 4월 초순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독립 만세 운동. 함안 지역에서 일제에 강력하게 저항 운동이 일어난 것은 1894년 민란과도 연결된다. 함안 지역 민중들이 탄압과 수탈에 맞서 역량이 발휘된 것으로 의병 운동, 애국 계몽 운동, 비밀 결사 운동 등을 들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 특히 토지 조사 사업 등 일제의 탄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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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0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규모와 만세 운동 횟수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함안에서 3·1 운동은 3월 9일 칠북면연개 장터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상남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3·1 운동이었다. 이후 3월 12일과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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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2일과 17일 2회에 걸쳐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규모와 만세 운동 횟수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함안에서 3·1 운동은 3월 9일 칠북면연개 장터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상남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3·1 운동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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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9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연개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칠북면 이령리 연개 장터 만세 운동은 배동석의 역할이 주요하였다. 배동석은 이령 교회의 장로 김세민의 장녀인 김복남과 혼인하였고, 김세민의 아들 김정오와는 처남 매부 간이다. 배동석은 서울 학생층의 주요 인사로서 민족 대표 진영과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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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8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이룡리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규모와 만세 운동 횟수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함안에서 3·1 운동은 3월 9일 칠북면연개 장터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상남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3·1 운동이었다. 이후 3월 12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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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3일과 4월 3일·8일·13일 4회에 걸쳐 경상남도 함안군칠원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규모와 만세 운동 횟수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함안에서 3·1 운동은 3월 9일 칠북면연개 장터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상남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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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 읍내 장날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규모와 만세 운동 횟수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함안에서 3·1 운동은 3월 9일 칠북면연개 장터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상남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3·1 운동이었다. 이후 3월 12일과 17일...
사회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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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학술 강습회. 기본적으로 야학(夜學)은 비정규적인 교육 기관에서 하는 근대 교육을 지칭한다. 1920년대 이후 야학회는 실력 양성 운동의 확산에 따라 야학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1913년 이후, 함안 지역의 경우 사립 학교와 더불어 야학이 함안 지역 내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일조하였다. 사립 학교와 야학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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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지역에 있었던 노동 야학.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전후한 시기 함안 지역에는 다수의 사립학교들이 설립, 운영되고 있었다. 1904년 무렵 건립된 경명 학교(儆明學校), 1904~1905년 사이 설립된 안신 학교(安信學校) 등과 같이 교회에서 설립한 학교들과, 비슷한 시기 군북면 덕대리 남단 동촌리에 세워진 신창(新昌) 야학교, 1906년 10월 향토의 선각자들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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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청년회가 주도하여 설립 운영한 극단. 1925년 이후 재창립 된 함안 청년회가 운영한 극단으로서, 함안 유치원과 노동 야학의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지역 유지들의 발기로 1920년에 설립된 함안 청년회가 구성원들이 가지는 한계로 인해 그 활동이 미미해지게 되었다. 이에 1925년 11월 29일 변화를 모색하는 혁신 대회가 함안 공립 보통학교에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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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신간회 함안 지역 지회. 중국의 항일 전선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에 영향을 받아 1927년 2월 15일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통일 전선 단체인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신간회는 1927년부터 1931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130여 개의 지회를 갖춘 회원 4만 명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신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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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소년 운동 단체. 국내에서 소년 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3·1 운동 이후의 일이다. 만세 운동에 참여한 보통학교 학생들이 소년 단체를 만들면서 소년회 운동이 시작되었다. 천도교는 1921년 4월 천도교 청년회 포덕부 안에 소년부를 설치했다가 5월에 천도교 소년회를 설립했다. 1922년 5월 1일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날 행사가 천도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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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1931년에 함안군의 청년 운동을 지도했던 사회단체. 3·1 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청년 운동은 1925년을 전후로 ‘혁신 대회’ 또는 ‘부흥 대회’ 등을 통해 기존의 장년층 중심의 청년 단체에서 소장층 중심의 청년 단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각 지역에서는 군 단위의 청년 연맹들이 생겨나고 이념적 성향은 사회주의적 색채가 농후하였다. 이후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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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함안 청년 동맹의 가야 지역 지부. 함안 청년 동맹 가야 지부는 품성 향상, 지식 계발, 체육 장려, 산업 발달, 풍속 개량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함안 청년회는 1920년 7월 30일 함안읍사립 안신 학교(安信學校)에서 창립되었으며 함안 청년단으로도 불렸다. 설립 초기인 1920~1923년, 임원들은 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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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4월 함안 청년 동맹의 군북 지부로 결성되어 활동한 청년 운동 단체. 3·1 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청년 운동은 1925년을 전후로 ‘혁신 대회’ 또는 ‘부흥 대회’ 등을 통해 기존의 장년층 중심의 청년 단체에서 소장층 중심의 청년 단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각 지역에서는 군 단위의 청년 연맹들이 생겨나고 이념적 성향은 사회주의적 색채가 농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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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청년 운동 단체. 3·1 운동은 이후의 민족 해방 운동이 노동, 농민, 여성, 청년 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전국 각지에서 지배 엘리트들이 주축이 된 청년 단체들이 대거 생겨났다. 1920년 12월 1일 120여 개의 청년 단체들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에서 조선 청년회 연합회가 개최되었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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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일어난 백정의 신분 해방 운동. 1923년 4월 24일 진주에서 처음 조직된 형평사(衡平社)는 특정 계급인 백정(白丁)의 차별 철폐와 인권, 평등을 주장하였다. 진주에서 창립된 이후 경상남도 지방에 이어 호남·영남·중부 지역에서 형평사 지부가 조직되는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조직이 확대되었다. 백정은 천민 계급이었으며 1894년(고종 31) 갑오...
농민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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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지방관의 폭정에 맞서 칠원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 1868년(고종 5) 가을 경상도 칠원에서 현감 조현택의 부정과 탐학(貪虐)에 대한 저항으로 농민 항쟁이 일어났다. 칠원 농민 항쟁의 직접적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고 있지 않다. 칠원의 농민들은 황상기(黃上基)와 이도여, 전홍이 등의 주도 아래 통문(通文)을 돌려 동리별로 장정을 동원하였고, 이에 불응할 경우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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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월 12일 함안 지역 향전의 모순을 타파하고자 일어난 농민 항쟁. 조선 후기 사회는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상품 화폐 경제의 발전에 따른 양반 중심의 향촌 사회 질서가 변화해 가고 있었다. 특히 향촌 사회에서 재지 세력 사이에 각종 향권을 둘러싼 향전(鄕戰)이 발생하였다. 함안 지역의 향전은 남당과 북당의 대립에서 비롯하였다. 이는 북당인 조윤수가 반벌(班閥) 식자층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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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제국 시기 경상남도 함안을 비롯한 남부 지방 각지에서 활동한 무장 농민군. 18~19세기에 걸쳐 농업 생산력과 화폐 경제의 발전으로 향촌 사회가 변화되면서, 향촌 내의 재지(在地) 세력 간에 향권을 둘러싼 소위 향전(鄕戰)이 발생하였다. 특히 이방의 차임(差任)과 포흠(逋欠)을 둘러싼 향전은 당시 수령-이향(吏鄕) 세력이 연결된 수탈 구조를 표면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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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의 소작농들이 지주들에 맞서 벌인 농민 운동.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발생한 소작인과 지주, 소작인 간에 발생한 분쟁으로 함안 농민 조합이 분쟁의 해결을 위해 적극 개입해 농민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1. 진주 일신 여자 고등 보통학교 소관의 토지를 둘러싼 소작 쟁의 1931년 함안군 군북면과 죽남면의 양 면에 있는 진주 일신 여자 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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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함안 농민 조합 군북 지부 간부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지세와 모세 철폐 운동. 함안군의 농민은 경상남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경영 규모가 작고 논밭에서 나는 곡식의 양이 적어 궁핍한 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지주들이 지세(地稅) 및 공과금을 소작농들에게 전가해 소작료의 증가를 꾀하기도 하고 소작권이 자주 변경되어 소작농의 생활이 불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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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남해 척식 주식회사 함안 농장의 비료 대금 과다 징수 사건. 1926년 10월 26일 조진규, 조문극 등이 주축이 되어 함안 소작인 조합을 결성하였다. 함안 소작인 조합은 농민의 권익 보호와 문맹 퇴치를 목표로 농민 야학과 순회강연 등을 실시하였다. 이후 1927년 7월 16일에 대회를 개최하여 함안 소작인 조합에서 함안 농민 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함안 농민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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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이후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에서 함안 농민 조합을 결성해 진행한 운동. 1920년대 후반 이후 함안군 군북면, 법수면 지역을 중심으로 수리 조합이 만들어지고 관개 시설이 확충되면서 이 지역에서 농민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함안 지역은 신간회(新幹會)가 해산되면서 농민 조합 운동이 사회 운동의 중심을 이루었다. 1926년 10월 22일 함안 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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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 농민 운동 단체. 신간회(新幹會) 해소 이후 청년 운동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이 대거 농민 조합 설립의 주축이 되었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도 함안 청년회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에 의해 함안 농민 조합이 결성되어 농민들의 권익 보호와 농민 계몽에 앞장섰다. 함안 농민 조합의 활동은 신간회 지회 해소를 전후한 1931년 이후부터 본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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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지역 농민 운동을 위해 결성되어 활동한 단체. 함안 소작인 조합은 주로 농민 권익과 농민 계몽을 위해 활동한 농민 단체였다. 함안 소작인 조합은 소작인의 소작권 문제, 소작료 문제, 상조 문제 등 지역 소작인의 권익 보호 및 계몽을 위해 설립하였다. 1926년 10월 22일 함안 지역에서 청년회 활동을 해왔던 조진규, 조문극 등 26명이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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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말과 1930년대에 함안 지역의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조합. 함안 농민 조합은 일제 강점기 농민의 권익 보호와 문맹 타파 및 농민 운동의 발전과 농민의 단결을 위해 설립되었다. 함안 농민 조합은 1926년 10월 26일 조진규, 조문극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함안 소작인 조합에서 비롯되었다. 함안 소작인 조합은 농민의 권익 보호와 문맹 퇴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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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결성되어 활동한 협동조합. 협동조합 운동은 1920년대 전반에 일본의 산업조합론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으로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했다. 이 운동에는 3·1 운동 이후 각 지역의 청년회와 구락부를 주도한 지역 유지들과 지식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1920년대 전반기에 국내에서 나타난 산업 조합의 유형은 일본처럼 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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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 지역에서 결성되어 활동한 협동조합. 함안 협동조합은 일제 강점기 농촌 지역의 현황을 파악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를 위해 활동한 함안 지역의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 운동은 1920년대 전반에 일본의 산업조합론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으로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했다. 이 운동에는 3·1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