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소년 동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330
한자 咸安 少年 同盟
영어공식명칭 Haman Boy Un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0년 4월 5일연표보기 - 함안 소년 동맹 창립
해체 시기/일시 1931년연표보기 - 함안 소년 동맹 해체
성격 소년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있었던 소년 단체 연합체.

[개설]

[변천]

국내에서 소년 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3·1 운동 이후의 일이다. 만세 운동에 참여한 보통학교 학생들이 소년 단체를 만들면서 소년회 운동이 시작되었다. 천도교는 1921년 4월 천도교 청년회 포덕부 안에 소년부를 설치했다가 5월에 천도교 소년회를 설립했다. 1922년 5월 1일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날 행사가 천도교를 중심으로 거행되었다. 전국적으로 소년 운동의 조직과 노선이 다양해지면서 소년 단체의 연합 운동이 추진되었다. 1923년 4월에는 조선 소년 운동 협회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1924년에는 소년 척후단 조선 총연맹도 만들어졌다. 주목할 점은 1925년 이후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 운동이 크게 성장하면서 소년 단체에도 사회주의의 영향이 나타났으며, 청년 단체의 지도를 받아 다양한 운동을 펼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1928년 7월 전국 최초로 도 단위의 소년 동맹 기관인 경남도 소년 동맹이 조직되었다. 이는 청년 운동과 사회 운동에서 사회주의의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1930년 4월 5일 함안 소년 동맹이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30년 8월 함안 소년 동맹이 주최하고 중외 일보 함안 지국이 후원하는, 풍수재를 입은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수해 구제 소인극(素人劇) 공연을 했고, 함안 소년 동맹 산하의 함안 소년 축구단이 진주 청년 동맹이 주최한 반성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로 보아 함안 청년 단체들처럼 계몽 운동 자금 마련을 위한 소인극 공연을 하고, 지역 소년들 간의 화합을 위한 축구단도 운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황]

설립 당시 함안 소년 동맹의 집행 위원장으로는 박승표가 선임되었다. 박승표는 1929년에 함안태산 야학을 주도한 인물이었고, 함안 소년 동맹 중앙 집행 위원장, 함안 소년 동맹 가야 지부 위원, 신간회 함안 지회 교육 출판 부원, 함안 청년 동맹 가야 지부 위원장, 함안 농민 조합 가야 지부 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즉, 함안 지역에서 민족 해방 운동에 앞장 선 인물이었다. 그 외에 함안 소년 동맹의 집행 위원으로는 김달구가 있었다.

[의의와 평가]

소년 운동은 청년 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함안 지역의 소년 운동은 1931년 신간회 해소, 그리고 일제에 의한 사회 운동 지도자 검거 등에 의해 청년 운동이 약화되자 그 영향을 받아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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