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41 |
---|---|
한자 | 李尙斗 |
영어공식명칭 | I Sangdu |
이칭/별칭 | 공직(孔直),쌍봉(雙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 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동욱 |
[정의]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공직(孔直), 호는 쌍봉(雙峯).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 이허겸(李許謙)이다. 이허겸의 17세손인 경상 도사(慶尙都事) 이계운(李啓耘)이 함안 평광(平廣)[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 마을]에 터를 정해 입향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관(李慣)이고, 할아버지는 이호맹(李虎孟)이다. 아버지는 자우헌(自尤軒)이기(李夔)이며, 어머니는 강사문(姜思文)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로 부덕(婦德)이 있었다.
[활동 사항]
이상두(李尙斗)[1814~1882]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 마을에서 태어났다. 4~5세 때 100여 글자를 알았을 만큼 총명하였다. 약관의 나이에 함안 향교(咸安鄕校)에 나아가 많은 선배와 함께 학문을 익히면서 시문(詩文)에 두각을 나타내 고을 사람들이 크게 될 인물이라고 기대를 많이 하였다. 하지만 과거에 합격하는 것은 하늘의 명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과거를 포기하였다. 그 후 안동으로 당시 퇴계 학맥의 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정재(定齋)유치명(柳致明)[1777~1861]을 찾아가 『대학(大學)』, 『중용(中庸)』,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등을 중심으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주로 배웠다. 또한 당시 성재(性齋)허전(許傳)[1797∼1886]이 김해 도호부사로 내려오자 찾아가, 성리학의 요체를 전수받아 필생의 업으로 삼았다. 백이산과 숙제봉을 가리키는 쌍봉(雙峰) 아래에 정사를 짓고, 자신의 호로 삼아 평생 동안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상두의 학문은 자신을 수양하는 위기지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스스로 과거를 포기하고 당대 명유인 유치명과 허전에게 가르침을 구한 것이 주로 성리서였다. 허전은 이상두가 벼슬할 자질을 지녔는데도 포의(布衣)[벼슬이 없는 선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저서로 『쌍봉집(雙峯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뒷산 축좌(丑坐) 언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