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3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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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定山集 |
영어공식명칭 | Jeongsanjip |
이칭/별칭 | 『정산 선생 문집(定山先生文集)』,『정산 문집(定山文集)』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구경아 |
[정의]
1935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배문창의 문집.
[저자]
배문창(裵文昶)[1864~1928]의 본관은 분성(盆城)이며, 자는 성화(性和), 호는 정산(定山)·정산(靜山)이다. 1898년에 안종창(安鍾彰)과 함께 성산(星山)의 서락(西洛)으로 가서 만구(晩求)이종기(李種杞)에게 수학하였다. 곽종석(郭鍾錫)·이승희(李承熙) 등을 종유하였고, 조정규(趙貞奎)·조병택(趙昺澤)·김상욱(金相頊)·황복성(黃復性)·안종두(安鍾斗) 등과 교유하였다. 1899년 안종창과 이이계(以以契)를 결성하여, 해마다 원근의 사우(士友)들과 모여 예를 강론하였다. 1907년 신학(新學)을 추종하는 무리들과의 충돌로 구금되기도 했었다. 1911년에 조병택과 압록강을 건너가 중국의 풍토를 살펴보았다. 돌아와 가을에 이상설(李相卨)·유인석(柳麟錫) 등과 만나 시사(時事)를 논의하였다. 겨울에는 조윤식(趙綸植)·조용돈(趙鏞惇) 등과 중국의 봉천(奉天)으로 가서 땅을 사서 피난할 계획을 세웠다. 1912년 함안의 자고산(紫皐山)에 있는 한천재(寒泉齋)에서 조병규(趙昺奎)·이준구(李準九)·이훈호(李熏浩) 등과 강학 활동을 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배문창의 아들 배진희(裵震熙)의 주도로 배문창의 3년상을 마치자마자 유고를 수집하여 안종화(安鍾和)에게 부탁해 행장(行狀)을 받아서, 김상욱에게 묘갈명(墓碣銘), 김병린(金柄璘)에게 묘지명(墓誌銘), 이기로(李基魯)에게 묘표(墓表)를 요청하였다. 1934년에 하겸진(河謙鎭)에게 서문(序文)을 받고, 1935년에 안종두와 조윤식에게 각각 발문(跋文)을 받아 『정산집(定山集)』을 간행하였다. 이를 저본으로 1994년 경인 문화사에서 영인 간행하였다. 『정산 선생 문집(定山先生文集)』, 『정산 문집(定山文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4권 2책의 석판본(石版本)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이며, 상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19.4㎝, 세로 28.7㎝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4.6㎝, 세로 19.0㎝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정산집(定山集)'으로 되어 있다. 경상 대학교 문천각, 성균관 대학교 존경각, 부산 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하겸진의 서문을 시작으로, 권1에는 부(賦) 1편, 시 79제(題)가 실려 있다. 시는 천연재(天淵齋), 한천재(寒泉齋) 등에서 교유 인물과 수창한 내용, 이이계의 활동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권2에는 서(書) 49편, 잡저(雜著) 1편, 잠명(箴銘) 2편, 축문(祝文) 2편, 제문(祭文) 9편, 묘표(墓表) 1편, 유사(遺事) 3편이 실려 있다. 편지는 스승 이종기 및 곽종석·이승희 등에게 유학의 원로로 앙모하는 마음과 더불어 기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안종창에게 보낸 편지 「답안치행(答安致行)」에는 ‘신(神)’에 대한 의미를 분석하면서 심리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 배문창의 학문과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권3 부록에는 89명이 쓴 만장(輓章)과 36편의 제문이 실려 있고, 권4 부록에는 배문창의 아들 배진희가 지은 가장(家狀), 사위 안종화가 지은 행장, 김상욱의 묘갈명, 김병린의 묘지명, 이기로의 묘표, 안종두와 조윤식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정산집』은 배문창의 학문과 사상은 물론 함안 지역에서의 활약과 위상을 연구할 수 있는 주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