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정」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325
한자 三樹亭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집필자 전우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0년 - 「삼수정」 함안군에서 자료 수집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삼수정」『함안의 지명 유래』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 「삼수정」『함안의 지명 유래(증보)』에 수록
관련 지명 낙동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관련 지명 느티나무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관련 지명 돌무지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채록지 낙동 마을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성격 설화|전설|지명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조수천
모티프 유형 지명 유래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에서 삼수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삼수정(三樹亭)」은 낙동(樂洞) 입구 하천변에 느티나무 세 그루와 돌무지가 자리하고 있는 터를 삼수정이라 한다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4㎞쯤 들어가면 병풍처럼 웅장하게 펼쳐진 방어산(防禦山) 아래에 하림리가 자리 잡고 있다. 낙동, 하림동(下林洞), 우계(愚溪) 등은 행정 구역상 하림리에 속한다. 낙동은 방어산을 등에 업고 저수지 아래 자리 잡은 아담한 마을로, 옛 지명은 낙골이다. 조선 시대에는 신동이라 불렀다. 이는 동네 뒷산[방어산] 중턱에 있는 광산에서 납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납 신(申) 자를 써서 신동(申洞)이라 하였다. 그러다 해방 후 골짜기 물이 맑고 좋아서 낙골이라 고쳐 불렀으며, 낙동이라 표기된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함안군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함안의 지명 유래』를 발간하였고, 이것을 2010년 함안 문화원에서 보완하여 『함안의 지명 유래(증보)』를 발행하였다. 여기에 「삼수정」의 지명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으나 채록과 수집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내용]

낙동 입구 하천변에 느티나무 세 그루와 돌무지가 자리하고 있는 터를 삼수정이라 한다. 이곳은 조선중종 때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였던 북계(北溪)조수천(趙壽千)이 을사사화(乙巳士禍)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落鄕)하여 삼수정을 짓고 노년(老年)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옛날에는 세 그루의 나무가 교룡(蛟龍)의 형상에 비유되어 그 기세를 떨쳤으나, 두 그루의 나무가 고사되어 이후에 다시 심어졌다. 지금[2016년] 정자는 소실되었으며, 삼수[세 그루 나무]와 석뢰(石磊)[돌무더기]와 삼수정 유허비(三樹亭遺墟碑)가 남아 있다.

삼수정 유허비에는 "…… 정자(亭子)는 비록 황폐(荒廢)하게 되었지만 나무는 아직껏 남아 있다. …… 봄에 잎이 나오는 것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마음이며, 겨울에 뿌리를 감춤은 물러나서 쉬는 뜻이며, 굳고 단단하게 심어져 있는 것은 국가의 기둥이 됨이요, 가지마다 가득 찬 번창한 그늘은 자손들에게 물려주신 아름다운 음덕이리라……." 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모티프 분석]

「삼수정」의 주요 모티프는 '지명 유래'이다. 「삼수정」은 조선중종 때 병마절도사를 지낸 북계조수천이 을사사화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삼수정을 짓고 손수 세 그루의 나무를 심은 것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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