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정과 뜬늪」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297
한자 臥龍亭-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우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0년 - 「와룡정과 뜬늪」 함안군에서 자료 수집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와룡정과 뜬늪」『함안의 지명 유래』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 「와룡정과 뜬늪」『함안의 지명 유래(증보)』에 수록
관련 지명 와룡정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지도보기
관련 지명 뜬늪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지도보기
관련 지명 대산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관련 지명 함박산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관련 지명 어미 고개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관련 지명 스무 고개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채록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성격 설화|정자 유래담|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황기익|홍철태|어씨 가문
모티프 유형 정자 유래|지명 유래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에서 와룡정과 뜬늪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와룡정과 뜬늪」의 전반부는 헌종 때 스승과 함께 과거를 본 홍철태(洪哲泰)가 자신만이 급제하자 스승 황기익(黃基益)을 위해 와룡정(臥龍亭)를 지었다는 정자 유래담이고, 후반부는 남강의 긴 월촌 제방을 따라 굽어 흐르며 넓은 들판을 형성하였는데, 이를 뜬늪[부소(桴沼)]이라고 부른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함안군에 속한 월촌리(月村里)는 남강을 사이에 두고 의령군과 경계를 이룬다. 이곳은 반달의 형상을 하고 있어 월라촌(月羅村)이라 불리다가 지금은 월촌으로 명명된다. 반월(半月) 모양의 마을을 휘감아 유유히 흐르는 남강은 이 지역민에게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농업 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강이 굽이쳐 흐르면서 자연히 형성된 절벽[와룡정]은 뛰어난 풍광과 옛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어 지역민의 정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함안군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함안의 지명 유래』를 발간하였고, 이것을 2010년 함안 문화원에서 보완하여 『함안의 지명 유래(증보)』를 발행하였다. 여기에 「와룡정」, 「뜬늪」 등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와룡정과 뜬늪」의 채록과 수집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내용]

월촌 초등학교 뒤편으로 조그맣게 펼쳐진 들판을 따라가다 보면 남강 줄기를 따라 긴 제방이 이어진다. 그 제방의 시작점에는 깍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휘몰아쳐 오는 남강의 거센 소용돌이를 묵묵히 받아 내고 있다. 이 절벽을 따라 길게 뻗은 산세(山勢)가 마치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와룡(臥龍)이라 불리며,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지점에 자리한 정자를 와룡정이라 한다.

이곳은 조선현종 때 목조로 지어진 단층의 팔작지붕 양식을 하고 있다. 헌종 때 죽남(竹南)에 살던 황기익이라는 선비가 산수 좋은 강변에서 여러 문하생을 거느리고 과거 공부를 하였다. 그 후 그는 문하생과 과거에 응시했으나, 제자인 홍철태는 급제하고 스승인 황기익은 낙방하였다. 이에 스승인 황기익이 과거의 낙방을 비통해 하니 홍철태가 스승을 위하여 와룡정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월촌 초등학교 앞에 몇 가구 되지 않는 의봉 마을이 있으며, 황기익의 후손들이 명맥을 이어 오며 와룡정을 보존하고 있다.

한편, 남강이 긴 제방을 따라 굽어 흐르며 넓은 들판을 형성하였는데, 이를 뜬늪이라 부른다. 이것은 들판 안쪽에 자리한 작은 마을과 그 마을 앞에 있는 늪을 통틀어 칭하는 지명이다. 뜬늪이란 지명의 유래는 그물설과 잉어설이 전해진다.

반월 형상의 조그마한 구릉에 월촌이 있고, 이곳을 에워싼 구릉 지대를 대산(大山)이라고 부른다. 대산에서 지금의 월촌 정류장이 있는 어미(魚尾) 고개까지가 그물의 형상이고, 맞은편 함박산이 잉어의 형상이라고 전한다. 대산과 어미 고개 사이에 움푹하게 파여 물이 스며드는 듯한 고개가 스무 고개이다. 이 고개는 그물이 찢어진 곳으로 간주하여 잉어가 그 찢어진 그물을 뚫고 나가 뛰어놀 수 있는 곳이 바로 뜬늪에 해당된다고 한다. 풍수지리상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기에 조선 중엽에 어씨 가문(魚氏家門)에서 인위적으로 땅을 파서 이 늪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씨의 후손이 살고 있지 않으며, 어미 고개에는 어씨들의 묘가 남아 있을 뿐이다.

[모티프 분석]

「와룡정과 뜬늪」의 주요 모티프는 '정자 유래', '지명 유래' 등이다. 「와룡정과 뜬늪」은 월촌 마을의 지형 지세 및 풍수와 관련하여 형성된 명칭이다. '와룡정'은 누워 있는 용의 형상을 한 산세에 세워진 정자를 지칭한다. '뜬늪'은 월촌 마을의 지형과 풍수가 더해져 만들어진 늪이며, 그 주변 마을과 들판을 통칭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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