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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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虎振 |
영어공식명칭 | Jo Hojin |
이칭/별칭 | 조호진(趙鎬振)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은영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활동 사항]
함안 지역에서는 서울3·1 운동 이후 독립 시위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도하여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과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이 거행되었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오전 9시,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신창 야학교에서 시작되어 군북 장터로 퍼져 나갔다. 오후 1시경 3,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 운동을 전개하자, 현지 경찰과 마산 중포병 대대 병력들이 공포를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오후 5시경 군중은 5,000여 명으로 늘어나 경찰 주재소로 나아갔다. 사태의 급박함을 느낀 일본 경찰이 시위대에 공포를 발사하고, 나아가 조준 사격을 하였다. 이때 현장에서 21명이 순국하고 18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많은 군중이 무참히 구타당하고 체포되었다. 조호진(趙虎振)[?~1919]도 이때 총탄에 맞아 순절하였다. 이름은 조호진(趙鎬振)으로 표기하기도 하며, 유족은 알 수 없다.
[상훈과 추모]
조호진은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이 인정되어 1968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