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829
한자 李卿欽
영어공식명칭 I Gyeongheum
이칭/별칭 상진(尙眞)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고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4년 9월 19일연표보기 - 이경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이경흠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0일 - 이경흠 군북 시장 만세 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19년 3월 20일연표보기 - 이경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이경흠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1년 - 이경흠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이경흠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20일 - 이경흠 군북 시장 만세 운동 주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활동지 경상남도 함안군
묘소 이경흠 묘소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호는 상진(尙眞). 아들로 이영호(李永浩)·이봉호(李奉浩)가 있고, 손자로는 이병균(李秉均)·이병진(李秉進)·이병천(李秉天)이 있다.

[활동 사항]

이경흠(李卿欽)[1874~1919]은 1874년 9월 19일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이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을 때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와 가야면의 군중을 동원하는 책임을 맡았다. 또한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 사는 고종 동생 이원필(李元弼)·조성규(趙聖奎) 등과 협의하여 3월 20일 군북 장날을 기하여 독립 선언식을 열기로 결의하였다.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의 시위 행진에 적극 참여하여 주재소 등을 점령하였지만 진해 경중 포병 대대가 군중을 진압하기 시작하자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을 이끌기 위하여 피신하였다.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오전 9시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신창 야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군북 장터에 있던 군중이 일제히 궐기하며 일어났다. 오후 1시경 3,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 운동을 전개하고 오후 5시경 5,000여 명이 다시 궐기하여 경찰 주재소로 나아갔다. 일본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자 군중은 격노하여 투석으로 대항하여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시위를 주도하던 이경흠 등이 물러나지 않고 군중을 독려하자 일본 군경이 주모자인 이경흠에게 조준 사격하여 현장에서 21명이 순국하고 18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경흠은 41세의 나이에 총탄이 가슴을 관통하여 현장에서 순절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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