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806
한자 金學坤
영어공식명칭 Gim Hakg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혜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9년연표보기 - 김학곤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김학곤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김학곤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1년 - 김학곤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김학곤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학곤(金學坤)[1889~?]은 함안군 함안면 북촌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병흠(趙丙欽), 조문국(趙文國), 한관렬(韓灌烈) 등을 통해 서울의 독립운동 소식을 접하고,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을 결의하였다. 김학곤은 비봉산 고천제(告天祭)와 태평루의 독립 선언식에 참석한 후 군중을 지휘하며 선두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 검거되었다.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에서 오하야시[大林] 순사 부장, 민인호(閔麟鎬) 함안 군수, 모리신칸[森信幹] 우체국장, 가네 모리[金森] 등기소장 등이 김학곤에 대해 '전화국 파괴, 주재소 난입 및 폭행, 우체국 난입 및 기물 파괴, 등기소 내의 폭행' 등을 증언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김학곤은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았다. 대구 복심 법원에 항소하였지만 전화법과 보안법의 위반 혐의로 기각되어[1919년 8월 20일] 대구 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가까운 친척도 없고 자손도 없어 언제 어떻게 사망하였는지 알 수 없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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