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804
한자 金成淑
영어공식명칭 Gim Seongsu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혜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0년 12월 4일연표보기 - 김성숙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김성숙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8월 20일 - 김성숙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 확정됨
몰년 시기/일시 1927년 9월연표보기 - 김성숙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3년 - 김성숙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1년 - 김성숙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김성숙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성숙(金成淑)[1870~1927]은 1870년 12월 4일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함안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는 데 앞장섰고, 함안읍 만세 운동 당시 시위행진을 할 때 선두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3,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행진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마산 경찰 서장과 현지 경찰들이 무력을 행사하려 하였다. 그러자 성난 시위 군중은 도끼·몽둥이·돌 등을 들고 경찰 주재소와 등기소·우편소·일본인 소학교로 시위행진하여 건물을 파괴하였다. 군청으로 들어가 군수 민인호(閔麟鎬)를 붙잡아 구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후 5시 40분경 출동한 병력과 현지 경찰이 주동자들을 검거하였다. 김성숙도 이때 함께 체포되었는데, 함안읍 만세 운동에서 구속 수감된 사람들 가운데 안지호(安知鎬) 다음으로 고령이었다.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에서 오하야시 순사 부장과 가네모리 등기 소장은 김성숙의 시위 참여와 무력 시위의 참여를 증언하였다. 이에 재판장은 "김성숙은 함안읍 독립 선언 시위에서 함안 등기소의 문과 함안 우체국 유리창에 돌을 던져 파괴하였다"라고 판시하며 징역 1년 형을 선고하였다. 같은 해 8월 20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형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하지만 일제의 고문으로 석방 5년 만인 1927년 9월 향년 58세로 서거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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