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802
한자 金祥集
영어공식명칭 Gim Sangjip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혜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8년 12월 22일연표보기 - 김상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김상집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16일 - 김상집 징역 6개월 형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39년 9월 19일연표보기 - 김상집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 - 김상집 건국 포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김상집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상집(金祥集)[1888~1939]은 1888년 12월 22일 함안군 여항면에서 태어났다. 한일 병합 당시 20대이던 김상집은 병들어 고통스러워하는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한의학을 배워 한의사가 되었다. 한의사로 활동하면서 1917년 변상태(卞相泰)·남형우(南亨祐) 등과 대동 청년당(大東靑年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대동 청년단은 자금을 모아 국외 독립운동 기지에 공급하여 무력 투쟁을 지원하였고, 백산 상회를 통해 국내·외에 연락 활동을 하던 단체이다.

김상집은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 당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비봉산 고천제와 태평루 독립 선언식에 참여하였다. 함안 읍내의 시위행진 때 선두에서 만세 운동을 이끌다가 체포되었다.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의 재판장은 "피고 김상집은 3월 19일 함안읍 소요에서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라고 판시하였다. 또한 순사보 최근호는 "함안 시장 소요 시에 김상집은 주재소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높이 외쳤다"라고 진술하였다. 그 일로 같은 해 5월 16일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으로부터 징역 6개월 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었다.

1920년에는 곽인협(郭寅協)·조계승(曺啓承)·강한순(姜翰淳)·윤창기(尹昌基) 등과 독립운동 단체인 아사 동맹회(餓死同盟會)를 조직하였고, 1923년 독립을 위해서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판단하여 학교를 세웠다. 약국 수입으로 학교를 운영하자 일본 경찰이 약국에 드나드는 사람을 탄압하여 경영이 악화되었다. 그 결과 학교는 폐쇄되고, 김상집은 피신하였다. 1939년 9월 19일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992년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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