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696
한자 尹秀
영어공식명칭 Yun S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270년 - 윤수 몽고로 감
활동 시기/일시 1279년 3월 - 윤수 전라도 응방사로 파견
출생지 칠원현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칠원
대표 관직 군부판서

[정의]

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개설]

윤수(尹秀)는 벼슬이 군부판서(軍簿判書)·응양군 상호군(鷹揚軍上護軍)에 이르렀다. 고려 후기 응방을 통하여 진출한 대표적 인물이며 권세가이다.

[가계]

본관은 칠원(漆原). 아버지는 무인 집권기 강도(江都)에서 처형된 윤양삼(尹養三)이다. 아들은 윤길손(尹吉孫)과 윤길보(尹吉甫)이다.

[활동 사항]

윤수칠원현[현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서 태어났다. 원종(元宗) 때 친종 장군(親從將軍)으로서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使) 조오(趙璈)로부터 권신 임연(林衍)의 제거 계획을 제의 받아 거짓 승낙한 다음 임연에게 이 사실을 고해 바쳤다. 1270년(원종 11) 무신 정권이 무너지면서 조오의 모해 사건에 대한 책임 추궁을 우려하여, 추밀원부사를 지낸 장인 송의(宋義)와 함께 가족을 이끌고 원나라 두련가(頭輦哥)에게 투항해 몽고로 들어갔다. 이때 충렬왕(忠烈王)이 세자로 몽고의 뚤루게[禿魯花])로 있을 때 사냥질로 총애를 받다 충렬왕이 즉위하자 선양[瀋陽]에서 가족을 이끌고 귀국하였다.

충렬왕 휘하에서 대장군에 오른 윤수는 이정(李貞)·원경(元卿) 등과 함께 응방(鷹坊)을 관장하며 권세를 부렸다. 1276년(충렬왕 2) 6월에는 원나라로 가서 매를 바쳤으며, 1278년(충렬왕 4) 5월에는 베이징[北京]으로 건너가 가서 말[馬]을 사 오는 일을 담당하였다. 다음 해 3월에는 전라도 응방사(全羅道鷹坊使)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윤수 등 응방 관계자들은 여러 도의 응방을 나누어 관리하면서 유망민을 불러 모아 ‘이리간(伊里干)’이라 일컫는 취락(聚落)을 만들었다. 이들에 의한 민폐가 발생해도 안찰사(按察使)나 지방의 수령들이 통제할 수 없었다고 전한다.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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