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584 |
---|---|
한자 | 西溪 遺稿 |
영어공식명칭 | Seogyeyugo |
이칭/별칭 | 『서계집(西溪集)』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경아 |
[정의]
1985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문재환의 문집.
[저자]
문재환(文在桓)[1853~1921]의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경숙(敬淑), 호는 서계(西溪)이다. 8대조 방은(防隱)문학용(文學庸)이 병자호란의 패배 소식을 듣고 함안의 방어산(防禦山) 속에 은거하면서부터 남평 문씨가 함안에 살기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문광환(文光煥)이고 어머니는 황유도(黃有都)의 딸인 창원 황씨(昌原黃氏)이다. 부인은 이용구(李容求)의 딸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기본이고 천성을 회복하는 권여(權輿)’라고 생각하여, 종신토록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 서문, 「사물잠(四勿箴)」, 「경재잠(敬齋箴)」을 읽었다. 고금의 예서(禮書)에서 일상생활에 절실한 것을 초록하였다. 자식 교육에 힘써 아들을 간재(艮齋)전우(田愚)에게 수학하도록 보냈다. 묘소는 함안군 고남곡(高楠谷) 간좌(艮坐)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문재환이 죽은 뒤 아들 문봉호(文鳳鎬)가 가장(家狀)을 짓고 조용극(趙鏞極)에게 행장(行狀)을, 조병규(趙昺奎)와 이준구(李準九)에게 묘지명과 묘포를 받아 문집을 편성하다가 1950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 문재환의 손자 문태관(文泰瓘)이 부친 문봉호의 뜻을 이어 권용현(權龍鉉)에게 서문을 받아 1985년에 『서계 유고(西溪遺稿)』를 간행하였다. 『서계집(西溪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필사 영인본(筆寫影印本)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상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20.6㎝, 세로 28.0㎝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18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서계 유고(西溪遺稿)'로 되어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조문규 가에 개인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용현의 서문을 시작으로, 권1에는 시(詩) 26제(題), 서(書) 2편, 잡저(雜著) 3편, 서(序) 1편, 기(記) 1편, 상량문(上樑文) 1편, 제문(祭文) 5편, 애사(哀辭) 1편이 실려 있다. 시 가운데 「경술 옥사일 통분음 일절(庚戌屋社日痛憤吟一絶)」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고 통분의 마음을 적은 것이다. 또 잡저의 「계자 오조(戒子五條)」는 아들 문봉호를 위해 학문과 몸가짐에 대해 3가지 끊어버려야 할 것과 10가지 생각해야 할 것을 적은 것이다. 또 「제의 약초(祭儀略抄)」는 제사·묘제(墓祭)·토지제(土地祭)의 절차와 진설도, 사돈 사이에 편지를 주고받는 서식 등을 기록한 것이다.
권2 부록에는 문재환이 지은 「경술 옥사일 통분음 일절」에 대해 조병규(趙昺奎)·안유상(安有商) 등 56인의 차운시가 실려 있고, 정은교(鄭誾敎)의 「서서계 경술 옥사 시후(書西溪庚戌屋社詩後)」가 이어져 있다. 다음에는 이도복(李道復)의 「서계 모옥기(西溪茅屋記)」와 문재환이 자신의 환갑이 되던 날 지은 시 「생조 술회(生朝述懷)」에 대해 14인이 차운한 시, 22인이 쓴 만시, 8편의 제문과 아들 문봉호가 찬한 가장, 행장[조용극], 묘지명[조병규], 묘표[이준구]가 수록되어 있고, 책 끝에는 손자 문태관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서계 유고』는 19세기 후반 함안 출신 유학자 문재환의 문집으로 당시 시대를 복원하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