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175
한자 長岩里[代山面]
영어공식명칭 Jangam-ri[Daesan-mye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개설
성격 법정리
가구수 234가구
인구[남/여] 485명[남 256명/여 229명]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장암(長岩)이라는 지명은 장포(長浦)와 대암(大岩)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대암 마을은 큰 바위들이 많아 붙여진 지명이며 산을 개간해 농경지로 활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바위가 많았다고 한다. 대암동(大岩洞)에 속하는 능골 마을[능곡 마을] 은 동네 뒷산에 300년 전에 축조된 순흥 안씨(順興安氏)의 커다란 묘가 하나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장암리(長岩里)의 북동쪽에 우뚝 솟은 용화산(龍華山)[193.2m]은 남강(南江)낙동강(洛東江)이 북쪽 산기슭에서 합쳐져 굽이쳐 흘러가고 있다. 낙동강의 공격 사면에 해당하는 곳에 침식 작용에 의한 기암절벽(奇巖絕壁)이 형성되어 있어 경관이 수려하여 옛날 선비들이 수업(修業)하던 합강정(合江亭)반구정(伴鷗亭)이 위치하고 있다. 남강은 남에서 동으로 흐르고 낙동강은 서에서 동으로 흘러 옛말에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에 서출동유수(西出東流水)하면 명당(名堂)이라’하는데 이곳이 그러하다고 한다. 옛날 7마리 용(龍)이 승천하였다고 하여 용화산이라 부른다고 하며 봉우리[谷]가 99봉(峯)을 이룬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 장암리는 부목·대사·평림·구혜와 함께 내대산면을 이루고 있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시 내대산면과 외대산면이 병합하여 대산면으로 개칭하면서 대산면의 북부에 위치하게 되었다. 장암리의 장포는 과거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용화산은 창녕과 함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郭再祐) 장군이 의병을 모아서 왜적을 물리칠 때 교두보로 사용되던 곳이다. 또 6·25 전쟁 때에도 미군이 용화산에 주둔하면서 “이렇게 좋은 지리적 여건에서 북괴군에게 진다면 모든 군사들이 전쟁에서 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할 만큼 전략적 요충지로서 지대한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지금도 용화산 산기슭에는 예비군 훈련장이 있다.

[자연환경]

장암리대산면의 북부에 위치하며 남강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남쪽에 있다. 남강이 북동쪽으로 흐르다가 남쪽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합류하고 이내 방향을 바꾸어 동쪽으로 흐르는 공격 사면에 용화산이 있다. 장암리의 서북부 지역은 남강의 보호 사면에 해당하여 범람원이 형성되어 있고 이를 개간하여 경작지로 이용하고 있다. 용화산에서 발원한 여러 지류들이 부목천을 이루고 장암 보건 진료소 부근에서 대사천과 합류하며 남강으로 흘러든다. 장암·장포·대암·연산·입사동 등의 자연 마을은 용화산의 계곡 입구에 형성되어 있으며, 여러 하천이 합류하므로 잦은 범람이 일어나 피수를 위해 곡구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현황]

2014년 12월 말 현재, 총 234가구에 485명[남 256명/여 22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장암리를 이루고 있는 행정리로는 대암동·연산동(燕山洞)·장포동(長浦洞)이 있으며, 이들 중 연산동의 규모가 가장 크다. 장암리의 입사동이 위치한 동부에는 함안 대산 장암 농공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지방도 제60호선이 용화산을 감싸듯 달리다가 북쪽에서 종착한다.

[참고문헌]
  • 『함안 군지』(함안 군지 편찬 위원회, 1997)
  • 『2013~2014 군정 백서』(함안군, 2015)
  • 함안 군청(http://www.haman.go.kr)
  • 함안군 대산면(http://www.haman.go.kr/town/Daesan)
  • 함안군 통계 연보(http://stat.ham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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