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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785
한자 金谷里金谷洞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 금곡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여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서낭할배[서낭당]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 금곡 마을 뒷산지도보기
성격 민간 의례|동제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사흗날[음력 1월 13일] 아침 10시
신당/신체 당집|소나무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에서 해마다 정월 열사흗날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개설]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의 금곡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열사흗날[음력 1월 13일]이 되면 아침 10시 마을 당산에 있는 서낭당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올리고 있다.

[연원 및 변천]

금곡리 금곡 동제 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마을 주민들은 1600년 무렵 이곳에 평택 임씨(平澤林氏) 마을을 처음 세운 임계량(林啓良)이 터를 잡으면서 동제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고 추정하고 있으며, 당시에는 당집이 있던 자리에 인공적으로 만든 조산(造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돌을 세워 만든 조산은 밑면이 약 70㎝ 정도로, 원뿔 모양이다. 지금도 이 조산은 당집 바로 옆 담에 세워져 있지만 많이 허물어진 상태이다.

나중에 당집이 조성되었지만 그 시기 또한 정확한 연대를 알지 못한다. 당집 앞에는 별도의 ‘앞당’이 존재한다. 앞당은 마을 바로 옆 흐르는 냇물에 자리 잡고 있는 소나무 세 그루를 말한다. 앞당은 서낭당에서 제를 올리고 내려와서 별도로 제를 올리는 공간이다.

앞당 앞 냇물이 흐르는 곳에는 ‘금곡 돌다리’라 불리는 다리가 있다. 과거에 금곡리 금곡 마을비슬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 때문에 마을이 동서로 양분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동쪽과 서쪽을 무사히 오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금곡 돌다리 덕분이었다. 지금은 도로가 생기고 차가 다닐 수 있어 통행에 불편함이 없었지만, 과거에는 이 돌다리가 물에 휩쓸리거나 부서지게 되면 마을이 양분된 채 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돌다리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고마움을 기려 마을에서는 동제를 올릴 때에 ‘금곡 돌다리’에도 필히 금줄을 두른다. 2013년 현재 금곡 돌다리는 태풍 때문에 돌이 부서진 상태이지만 마을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자 쇠로 상판을 만들고 그곳에 돌다리를 얹어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금곡 마을의 서낭당은 마을의 뒤쪽 당산에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서낭당’ 또는 ‘서낭할배’라 부르며 그 형태는 단칸짜리 당집이다. 현판은 과거에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으며, 시멘트 벽돌로 만든 현대식 건물이다. 과거에는 기와지붕에 흙으로 만든 벽채였지만 허물어지고 2010년 무렵에 새로 건립하였다. 제당은 폭이 정면으로 220㎝, 측면으로 190㎝이고 높이는 310㎝ 정도이다.

정면에 한 짝의 여닫이문이 달려 있고, 당집 안에는 제상과 향로대가 있다. 뒤쪽으로 한지가 두툼하게 말려 있는데, 그 안쪽으로 천왕기(天王旗)가 감겨 있다. 당집 주변으로는 기와와 돌로 담이 둘러져 있고, 앞쪽에는 넓게 3단으로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천왕기는 직사각형으로 밑에는 꼬리가 달려 있다. 천왕기의 바깥 부분은 남색이고 안쪽은 홍색이며, 꼬리는 흰색으로 세 개가 달려 있다. 과거에 천왕기는 풍각면 일대의 각 마을이 앞장세우고 들고 나와서 기를 흔들며 씨름이나 줄다리기를 하며 놀았다고 전해진다.

금곡리 당산의 서낭당은 인근 경상남도 창녕군 성산면 연당리의 서낭과 내외지간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왕래를 하지 않지만 과거 금곡리 서낭이 외서낭(外서낭)이고 성산면 연당리의 서낭이 내서낭(內서낭)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내서낭을 ‘연하각시’로 모셨다. 이 두 서낭은 사이가 좋아 한번 천왕대를 붙이면 서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정월 대보름 행사에 이 천왕이 서로 만났는데 떨어지지 않아서 천왕대를 힘으로 떼어 내는 과정에서 부러지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로는 양쪽 신의 힘이 너무 세기에 신의 힘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오가면서 서로 왕래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앞당은 마을을 동서로 가르는 계곡 건너에 있는 소나무 세 그루 중 가운데 나무이다. 마을에서는 이곳을 할매당 또는 서낭할매라고도 부른다. 마을의 서쪽 끝자락에 해당하며 창녕군과 경계선에 이르는 산을 바라보고 있다.

[절차]

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 마을에서는 마을 회의를 통해서 제관을 포함한 다섯 명을 선출한다. 이 다섯 명은 잔을 올리는 헌관(獻官) 한 명, 축문을 읽는 축관(祝官) 한 명, 허드렛일을 돕는 보조원인 조비(助裨) 세 명으로 구성된다. 제관과 축관은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고려하여 깨끗한 사람으로 선출하고, 조비는 허드렛일을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로 선출한다.

제물은 ‘원집’이라 불리는 집에서 장만한다. 제물을 준비하는 집은 제관보다도 더 엄격하게 금기를 수행해야 하는데, 과거에는 동제와 관련된 토지를 받아 이를 경작하는 집이 원집이 되었다. 그러나 2012년 현재 원집을 하고자 하는 집이 없어 제물은 주로 제관과 축관이 마련한다. 제물은 풍각면에서 1일과 6일에 열리는 풍각장을 이용하여 정월 열하룻날에 미리 준비해 둔다. 과거에는 소를 제물로 올렸지만 지금은 돼지를 올린다. 이때 돼지는 꼭 수퇘지를 사용한다.

제사를 지내는 날 아침 아홉 시 즈음이 되면 원집에서는 준비한 제물을 가지고 서낭할배로 향한다. 과거에 자정에 제사를 올릴 때는 열 시 무렵 제당 아래에서 음식을 준비하였지만 아침으로 시간을 옮긴 후에는 전날에 음식을 준비한다.

제당은 서낭할배를 중심으로, 우측 조산이 천제당이며 좌측이 산신당이다. 제는 먼저 천제당에 올린다. 과거 천제당에는 날것인 쇠머리, 삶은 소고기 살 한 덩이, 간 등을 올렸다. 금곡 마을의 가구 수가 200호가 넘을 당시에는 동제 때 소를 한 마리씩 잡았기 때문에 쇠머리를 올렸지만, 현재는 제물 또한 간소화되어 돼지고기로 대신한다. 천제당에서는 소원을 빌려고 태우는 흰 종이인 소지(燒紙)는 올리지 않고, 잔을 한 잔만 올리고 절하는 단잔 배례(單盞拜禮)로 제를 마친다.

그다음에는 산신당에 제를 올린다. 산신당 역시 돼지고기를 올리고 소지를 올리지 않고 축문을 읽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 다음에는 가운데 제당인 서낭할배에 제를 올린다. 서낭할배에 제를 올리기 전에는 같이 올라온 사람들이 풍물을 크게 울리며 마을 주민들에게 이제 서낭할배에게 제를 지낸다는 것을 알린다. 이때 제물은 준비한 돼지와 술, 삼탕(三湯)을 사용한다. 그리고 독축과 함께 세 번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고 소지를 올리면 제의가 마무리 된다.

서낭할배에 올리는 제를 마무리하면 참석했던 사람들은 아래로 내려와 간단히 음복하고 나서 앞당으로 이동한다. 앞당으로 이동하기 전에는 다시 한 번 풍물을 크게 울려 마을 사람들에게 이제 앞당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앞당까지는 걸어서 약 5분 내외의 거리이다. 앞당으로 이동하면 조비는 앞당 앞에 불을 피워서 잡귀들을 몰아내고 제물을 차려 놓는다. 제물은 서낭할배와는 다르게 밥을 두 그릇 올리고 조기, 탕과 나물 등을 올린다. 이곳에서 제물은 집에서 올리는 기제사와 같이 차리며, 단잔 배례와 함께 축문을 읽으며 소지는 올리지 않는다.

[축문]

금곡리 금곡 동제 에서 사용하는 축문은 다음과 같다.

1. 산신에게 올리는 축문

유세차 정월 삭 십삼일 유학 감소고우(維歲次 正月 朔 十三日 幼學 敢昭告于)/ 산신지전왈(山神之前曰)/ 신기령의 은위우로 수궐전적 방촉무강(神其靈矣 恩爲雨露 修厥典籍 旁燭無彊)/ 위칙풍상 복차진양 생주기결 청아민유(威則風霜 卜此辰良 牲酒旣潔 聽我民籲)/ 항유우마 가고사황 진아동방 야무조황(巷有牛馬 茄鼓斯皇 鎭我洞方 野無早蝗)/ 여귀가금 복아수아 폭객주강 낙세양양(厲鬼可噤 福我壽我 暴客走僵 樂歲穰穰)/ 복유존영 서기 향지(伏惟尊靈 庶幾 饗之).

2. 서낭신에게 올리는 축문

유세차 정월 삭 십삼일 유학 감소고우(維歲次 正月 朔十三日 幼學 敢昭告于)/ 당영지전왈(堂靈之前曰)/ 유동지초 수백년래 안민이후 세세자진 일동제명(有洞之初 數百年來 安民而後 歲歲玆辰 一洞齊明)/ 유영봉안 영유신안 신역의안 헌성도안 함원태안(有靈奉安 永類神安 神亦依安 獻誠禱安 咸願太安)/ 생폐정결 엄연강림 아두기순 노자소자 오곡기풍(牲幣精潔 儼然降臨 兒痘其順 老者少者 五穀旣豊)/ 준저배안 수사다안 부산기안 각득건안 육축역안(罇狙排安 受賜多安 婦産其安 各得建安 六蓄亦安)/ 경사천진 분침소진 여시여시 기특일시 신기보우(慶事荐臻 氛祲掃盡 如是如是 豈特一時 神其保佑)/ 관재자안 사특진안 일동일안 어천만안 하난치안(官災自安 邪慝鎭安 一洞一安 於千萬安 何難治安)/ 농기운용 무고정안(農機運用 無故定安)/ 복유존령서사운안(伏惟尊靈庶賜韻安).

3. 앞당에 올리는 축문

유세차 정월 삭 십삼일 유학 감소고우(維歲次 正月 朔十三日 幼學 敢昭告于)/ 황영지전왈(隍靈之前曰)/ 유령기당출입지문로혜자임개폐지호령가금려기지불상혜(惟靈蔇堂出入之門路兮自任開閉之號令呵噤厲氣之不祥兮)/ 환영선사지다경인의신기구복혜(歡迎善事之多慶人依神其求福兮)/ 만화정이승평양양여좌우혜세세불망제명오호(萬化定以昇平洋洋如佐佑兮歲歲不忘齊明嗚呼)/ 금고이호유혜설주과이헌성(金鼓而呼籲兮設酒果而獻誠)/ 척강소소은근혜(陟降昭昭慇懃兮)/ 복축서사운향(伏祝庶賜韻享).

[현황]

2009년까지는 금곡리 금곡 동제는 음력 정월 열사흗날 자정에 제를 올렸다. 하지만 마을에서 제관을 담당할 사람들도 줄어들고 마을 주민들의 관심도 멀어지는 것을 걱정하여 마을 회의를 통해 아침 10시로 제의 시간을 옮겼다. 동제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마을의 결속력을 다지고 함께 하루를 즐겁게 보내자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격식을 조금씩 줄이고 제의 시간 또한 참석률을 높일 수 있도록 바꾸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젊은 사람들의 참석과 마을 주민들의 관심을 어느 정도 이끌어 내었다며 이러한 시도에 대해 자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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