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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 2리 상옥산 동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777
한자 玉山-里上玉山洞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 상옥산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여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장군 바위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 상옥산 마을 어귀지도보기
결계 장소 거리 천왕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 상옥산 마을 아래
성격 민간 의례|동제
의례 시기/일시 정월 초사흗날[음력 1월 3일] 0시
신당/신체 장군 바위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에서 해마다 정월 초사흗날에 올리는 마을 공동 제의.

[개설]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의 상옥산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음력 1월 3일]이 되면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어귀의 장군 바위에 동제를 올린다.

[연원 및 변천]

옥산 2리 상옥산 동제 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전해지는 말로는 마을의 입향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상옥산 마을에서는 마을 입구에 있는 장군 바위에서 동제를 올린다. 장군 바위는 상옥산 마을로 향하는 도로변 왼쪽에 위치한다. 높이 4m, 너비 7m 정도의 큰 바위는 마을길을 포장할 때 하단부가 일부 묻혔다고 알려진다. 장군 바위의 마을 방향 안쪽에는 신주를 모셔 두는 장롱인 감실이 높이 70㎝, 너비 1m, 깊이 40㎝ 정도로 조성되어 있다. 제는 이곳에서 올린다.

장군 바위에 대한 전설은 마을에 여러 가지가 전해진다. 이웃에 살던 장군 할매의 치마끈이 흘러서 내려가다가 그 끈이 흐른 곳이 바로 이곳 장군 바위라는 이야기가 있으며, 또는 과거에 어느 장군이 곡식을 가는 풀돌[일종의 갈돌]을 가지고 가다가 여기에 떨어뜨려 장군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경상남도의 밀양시와 창녕군, 청도군의 경계선이 되는 천왕산 꼭대기에 이 장군 바위와 동일한 모양의 선바위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바위를 가지고 내려오다가 중간에 멈춘 곳이 바로 이곳이고 그 바위가 장군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절차]

옥산 2리 상옥산 동제 는 정월 초사흗날 0시에 올린다. 2013년 올해는 제관을 담당한 집에서는 먼저 초사흗날 아침에 장군 바위에 금줄을 두르고 마을 아래쪽에 있는 입석[선돌]인 거리 천왕에도 금줄을 두른다. 거리 천왕은 마을로 들어오는 잡신을 막으려는 곳으로, 특별한 제의를 올리지는 않고 다만 금줄을 두르고 술을 뿌려 둔다. 장군 바위에 금줄을 두르는데 장군 바위가 워낙 커서 금줄을 옆으로 두르지 못하고 금줄을 던지듯이 하여 걸쳐 놓는다. 그리고 장군 바위 아래 제단인 감실에는 참기름으로 불을 밝혀 둔다.

금줄을 두른 후 제관은 풍각면에서 열리는 5일장인 풍각장에 제물을 사러 간다. 제물은 과거에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았지만 지금은 삼탕(三湯)과 돼지머리, 돼지고기, 막걸리, 백찜[백설기], 건해삼 셋, 그리고 밥 세 그릇을 준비한다. 세 그릇의 밥은 각각 산신과 장군 바위 내외를 위함이다. 제물은 흥정 없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며 준비할 때도 절대 간을 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제관이 또 행해야 할 것은 단계마다 몸을 정갈히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금줄을 두르기 전에 목욕재계를 한 번 하고, 장을 보러 갈 때, 다시 돌아와서, 그리고 제물을 가져갈 때 등 동제를 올리는 매 과정에서 제관은 목욕재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밤 11시쯤이 되면 준비된 제물을 장군 바위로 가져간다. 제물을 차린 후 제의를 올리는데, 유교식 기제사와 동일한 순서로 진행된다. 축문을 읽고 마지막으로 소지(燒紙)[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태우는 흰 종이]를 올린다. 소지는 산신당, 장군 바위 내외를 위하여 올리고 그다음으로 마을의 성씨별[강씨·박씨·최씨]로, 그리고 집주인의 벼슬 이름이나 고향, 성명 등을 말하면서 모두를 위한 소지를 올린다. 이때 소지가 잘 타서 올라가면 한 해가 안녕하고 무사하다고 믿기 때문에 소지를 올릴 때 정성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제를 마치면 제관은 돼지머리와 건해삼들을 흰 종이에 싸서 장군 바위 주변에 묻어 둔다. 그리고 나머지 제물을 가지고 돌아온다. 이튿날 아침 마을 사람들 모두 제관의 집으로 찾아가서 인사하고 음복한다.

[축문]

옥산 2리 상옥산 동제 에서 축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을 사람들의 말로는 왜 장군 바위에 제사를 올리게 되었는지, 왜 장군 바위라 불리게 되었는지 등의 내용이 모두 축문에 적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축문은 과거에 마을의 뛰어난 학자 두 사람이 상의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마을의 이장이 이것을 보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대 행사]

과거에는 제관의 집에서 인사와 함께 음복을 행하였지만, 현재는 마을 회관에서 음복하며 대동회를 개최한다. 이때 이장은 한 해를 결산하면서 마을의 대소사를 알린다. 대동회 개최 후 마을 사람들은 윷놀이와 기타 여러 놀이를 행하며 하루를 보내게 된다.

[현황]

과거에는 정월 대보름에 제를 올렸으며 제관을 정월 초사흗날에 선출하였다고 한다. 이때 제관은 천왕대를 잡아서 신대가 가는 집으로 선출하였다. 천왕대가 간 집에서는 거부할 수 없으며 약 12일 동안 몸을 깨끗이 하고 준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의 고령화와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천왕대를 잡을 사람도, 제관으로 선출될 사람도 없어 언제부터인가 아예 정월 초사흗날로 날을 정하고 제관을 집마다 돌아가며 담당하고 있다. 2012년에도 정월 초사흗날에 제를 올렸다.

45가구 정도가 거주하는 상옥산 마을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장군 바위가 도와주어 마을이 안녕하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을 만큼 장군 바위에 대한 믿음이 깊다.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로 동제를 행할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살아생전에는 자신들이 동제를 이어 나가야 한다는 의지가 굳건하다. 제관으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해야 할 때가 된다면 외지에 나간 자식들을 불러서라도 정성을 들이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이후에 동제의 준비와 진행을 맡을 사람이 정 없게 되면 마을 주민들이 모두 장군 바위에 모여서 더는 모실 수 없음을 잘 설명하고 장군 바위를 보내 줄 거라는 말에서도 장군 바위에 대한 주민들의 믿음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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